또랑이 - 사랑은 자리를 옮겨 앉는다.

제5화 : 노래하는 강아지

by 태산박

제5화 : 노래하는 강아지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는 서서히 봄의 징후가 찾아왔다.

네 번의 수술이 끝나자,

또랑이는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등의 검버섯과 얼굴의 시커먼 흔적도 사라지고,

엉겨 붙었던 핏자국으로 굳은 발가락 사이가

조심스레 풀려났다.


피가 돌기 시작했고,

숨결은 한층 고르고 부드러워졌다.


그는 이제 고통으로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조용히 세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회복의 계절


이불 위에 누운 또랑이는

햇살이 비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빛은 여전히 약했지만,

그 안엔 생명이 피어나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털이 부드러워졌고,

사료 냄새와

가끔씩 주는 닭고기 영양 간식에 반응해 코를

들이켜는 모습이 점점 더 익숙해졌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고통을 묵묵히 이겨내며

다시 ‘살아가는 일’을 배워가고 있었다.


여전히 치료중이지만 건강을 되찾아 가는 또랑이


그러던 어느 날,

집 전화기에서 수신음이 울렸다.

‘캐논’의 뒷부분인 힘찬 선율이 흘러나오자,

또랑이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는 구슬픈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닭이 새벽을 알리듯,

어둠 속의 늑대가 달을 보며 혼자 포효하듯,

그의 목소리는 높고 길었다.


‘꼭 꼬꼬….‘


한(恨)이 어린 진도아리랑 같은,

그랬다.

그것은 긴 고통과 슬픔의 터널을 통과한 생명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세상에 건네는 첫 번째 노래였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하지만 곧,

그 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슬픔이 아니라, 살아남은 생명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이었다.




그날 이후,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또랑이는 다시 노래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느새 그는 음악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래의 톤은

슬픔에서 점점 기쁨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웃으며 말을 걸었다.


“우리 또랑이, 노래 잘하네.

아빠가 먼저 해볼까? 또랑이도 할래?”


내가 “꼭꼭고—” 하고 선창하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꼭 꼬꼬—” 하고 화답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엔

둘만의 노래가 생겼다.

둘이 주고 받는 그 노래는 이젠 구슬프지 않았다.

함께 부르는 노래,

서로를 위로하는 노래가 되었다.


고개를 들고 고음의 목소리를 내는 또랑이 ‘꼭꼬꼬…‘ 아침 새벽을 여는 닭울음 같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내가 먼저 불렀다.

어느 날은 또랑이가 먼저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노래할 땐

세상 모든 슬픔이 잠시 멈추는 것 같았다.

둘의 소리는 길지 않았지만,

그 소리에는 생명에 대한 부활과 환희 그리고

기적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살아남은 존재들의 찬가였다.




지금은,

그 노래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전화기의 수신음은 변함없이 여전하지만,

그 뒤를 잇던 맑은 화음은 멈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소리를 듣는다.


밤이 깊어질 때,

바람이 창문을 스칠 때,

그때마다 또랑이가

가만히 고개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 우리 노래하자.”


그 부름에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뜨거워진 눈을 천천히 감는다.

그러면 내 마음 어딘가에서

또랑이가 천천히 목을 젖히며 노래하기 시작한다.


‘꼭 꼬꼬…꼭 꼬꼬…‘




※ 작가의 말

노래는 시간을 되돌린다
되돌아간 시간은 가슴 한켠에 시린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그리움을 낳는다.
그리고 그리움은 다시 자라서
가슴속에서 또 다른 노래를 만든다.
그렇게 또랑이는
내 안에서 아직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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