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랑이 - 사랑은 자리를 옮겨 앉는다

제6화. 함께 걸었던 계절들

by 태산박

제6화. 함께 걸었던 계절들


집 안에는 세 개의 발소리가 있었다.

미미의 단단한 발자국, 초코의 평온한 숨결,

그리고 나의 조금 비뚤어진 걸음.


나는 천천히 걷는 법을 배웠다.

서두르지 않으면

세상의 냄새가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알았다.




아침마다 문틈으로 냄새가 들어왔다.

따뜻한 먼지 냄새, 밥 냄새, 사람의 체온 냄새.

나는 그 냄새들로 하루를 짐작했다.


아빠의 발소리가 들리면, 세상은 다시 움직였다.

문이 열리면 바람이 쏟아지고,

나는 맨 먼저 그 냄새를 맡았다.


길 위에는 나무의 숨이 있었고,

풀잎은 밤새 젖어 있었다.

흙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햇살이 닿는 곳에서는 냄새가 달콤했다.




길가의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들의 신발은 냄새가 없었다.

서두르는 발에는 냄새가 남지 않는다.


나는 대신 땅을 맡고, 바람을 맡고,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을 맡았다.


가끔 바람 속에 다른 친구들의 냄새가 섞였다.

짧고 강한 냄새였다.

누군가는 흙을, 누군가는 사람의 손을,

누군가는 어둠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냄새들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


자주 가는 공원에서 한 때…


공원에는 나무가 많았다.

낮은 나무는 내 눈높이와 비슷해서

마치 서로의 숨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크게 흔들렸고,

그 안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비둘기들은 너무 가까워서

나는 그들의 깃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 비둘기에게는 지친 냄새가 났다.

세상을 오래 본 냄새였다.


아빠는 걸음을 멈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나는 오래 기억한다.

그 안엔 “괜찮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다리를 절었지만, 더 이상 숨지 않았다.

절뚝이는 발밑으로 풀잎이 스쳤다.

그 감촉은 내 몸을 다시 살아 있게 했다.




여름엔 바다가 우리를 불렀다.

차 안에서 나는 바람의 냄새로 먼저 알았다.


문이 열리자 햇빛이 쏟아졌다.

뜨거운 공기 속에 짠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하얀 모래톱엔 갈매기가 보였고,

푸른 바다 위로 뭉게구름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바다 끝 수평선, 작은 배 하나—

나처럼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그것은

분명 신선한 바람과 향긋한 냄새를 실었을 테다.


멀리서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는

화난 사자처럼 포효했고,

하얀 모래 알갱이는

간지럽게 내 발가락 틈새로 비집고 들어왔다.


멀리서 아빠의 웃음이 들렸다.


바람은 가슴 속으로 들어와 등 뒤로 나갔다.

그 바람에 숨을 들이키며 넋을 놓은 동안,

엄마가 나를 불렀다.


“또랑아, 거기서 혼자 뭐해?”


엄마는 모를 거다.

짠 바람을 타고 내게 전해지는 소식들을…

저 많은 소리들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들을…


부서지는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물고기들이 뛰노는 소리,

저 해변 끝 아이들의 시끄러운 웃음들과

가까이 나무들 위에 숨어 우는 소리들을…


살아 있다는 건,

그런 냄새들과 소리들 속에서 숨 쉬는 일이었다.


강원도 맹방 해수욕장에서…
또랑이와 미미, 해수욕장에서의 한 때


집으로 돌아오면 공기는 달라졌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냄새가 바다보다 조용했다.


식탁 아래의 그림자, 사람의 손끝,

잠든 초코의 숨소리.

나는 그 안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


소파 옆, 창가 아래, 아빠의 발끝 근처.

그곳은 내 세상이었다.


아무도 나를 쫓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작아지고,

대신 따뜻해졌다.




가끔 전화기가 울리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음이 공기를 흔들었다.

나는 그 소리에 대답하듯 입을 열었다.


그건 노래라기보다 숨이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짧은 신호.


아빠는 웃었고, 그 웃음이 나를 감쌌다.

우리는 그렇게 말 대신 숨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흘렀다.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방 안 전체가 그 냄새로 가득 찼다.




봄이면 흙냄새가 짙어지고,

여름이면 그늘이 길어졌다.

가을엔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나를 따라 걸었고,

겨울엔 눈이 내리면 공기는 깨끗해졌다.


나는 그 계절들을 전부 걸었다.

아빠와 함께.


멈추면 같이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바람도 따라왔다.


우리의 속도는 느렸지만,

세상은 그 속도에 맞춰 변했다.


사랑은 늘 거기 있었다.

조금씩 자리를 옮겨 앉았을 뿐이었다.


아빠 팔베개를 한 또랑이,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


밤이면 나는 아빠의 옆에 누웠다.

그의 숨이 내 머리 위로 내려왔다.

그 숨은 따뜻했고, 부드럽고 규칙적이었다.


그 리듬에 맞춰 나는 눈을 감았다.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서로의 숨을 듣고, 냄새를 기억하고,

그 옆에서 잠드는 일.


세상은 넓었지만,

사랑은 작고 분명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을 다르게 걸었다.

다리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어디에도 아프거나 절지 않았다.


길 위의 냄새와 바람,

그리고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모든 걸 충분하게 만들었다.


나는 알았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저, 함께 걷는 동안

서로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그 자리에 있었다.




* 작가의 말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계절의 빛으로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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