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미미를 떠나보내며
1.
미미
그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저린다.
모조 뼈에 붙은 덴탈 껌을 좋아해 ‘껌순이’라 불리던 아이.
딸아이 품에서 우리 곁으로 왔다.
그날의 눈빛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낯선 방에서도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작은 고개가 내 손끝에 닿았을 때,
맑은 눈동자 속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또랑이가 오기 전까지 미미는 집 안의 공주였다.
가족의 사랑이 모두 그에게 쏠려 있었다.
하얗고 가는 분수머리가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그 작고 단아한 모습에 푹 빠졌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자궁축농증.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원장은 자궁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멀쩡한 오른쪽 다리까지
“휘어질 수도 있다”는 말 한마디로 칼을 댔다.
나는 그날 이후, 병원의 불빛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 빛 아래선 언제나 누군가의 체온이 식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눈빛은 젖어 있었고,
사랑은 고통의 값으로만 계산되었다.
이름도 낯선 쿠싱증후군.
이 병 이름도 처음 들어본 병명이었다.
미미의 몸은 천천히 무너져 갔다.
호흡은 얇아지고, 다리는 굽어 갔다.
복부는 부풀어 올랐고, 물 마시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밤이면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다.
살아 있으려는 몸부림이 그렇게 들렸다.
이별 전날, 나는 미미를 꼭 안았다.
숨이 가빴고, 눈동자는 빛을 잃어갔다.
그 눈 속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귀한 한 생명이 저물어가는 일을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그날이 이별 전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 날, 미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 엄마를 찾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방저방을 헤맸다고 한다.
엄마는 급한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집 안의 냄새를, 사랑의 원천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급한 숨이 그를 붙들지 못했다.
그 마지막 몸부림이 우리를 오래 슬프게 했다.
그날 밤, 또랑이는 미미 곁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울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조용히 숨을 낮췄다.
그 방 안의 공기가 가라앉고,
세상은 한순간 멈춘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눈을 감은 또랑이의 얼굴에 작은 떨림이 있었다.
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이해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천천히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걸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별의 시작이라는 것을.
2.
언니의 냄새가 달라졌다.
아침마다 사람의 손길과 이불의 온기가 묻어 있었다.
예전엔 햇빛 냄새와 분홍빛 향기가 났었다.
요즘은 약 냄새가 난다.
차갑고, 무거운 냄새다.
그 냄새는 내 코끝을 타고 가슴 어딘가로 내려앉았다.
언니는 자주 누웠다.
가늘게 신음 소리를 냈고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옆에 누워 숨을 맞추었다.
언니의 숨이 얇아지면 내 숨도 저절로 작아졌다.
숨과 숨이 닿는 그 지점에서
나는 무언가를 배웠다.
사랑은 소리 없이 이어지는 것임을.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아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얀 대기실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했고,
언니의 몸은 자꾸 작아졌다.
나는 병원 문턱에 아빠랑 같이 앉아 있었다.
유리문 안쪽의 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감았다.
그 빛 속엔 따뜻함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말했다.
“병원비가…”
나는 돈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 속에서 딱딱한 벽 같은 냄새가 났다.
아빠는 종종 ‘또랑아, 사랑은 계산을 하지않아‘
그랬는데,
병원은 언니의 아픔을
그 아픔보다 더 큰 돈으로 계산하는 것 같았다.
사랑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을 나는 냄새로 알았다.
세상은 냄새로 말하니까.
언니는 바람을 좋아했다.
봄날의 바다 냄새,
젖은 모래 냄새,
사람의 손에서 나는 짠내를 좋아했다.
그날 동해의 파도는 부서지듯 반짝였고,
언니는 나보다 먼저 달렸다.
모래가 발에 묻었다.
언니가 내 귀를 핥았다.
그건 약속이었다.
겁내지 말라는, 함께 걷자는 약속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언니의 발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다.
발이 땅을 누르는 소리,
그게 나의 안심이었다.
그 소리가 멈췄을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이 조용하다는 걸 알았다.
그날 저녁,
언니가 오래 누워 있었다.
몸이 식어 가는 냄새가 났다.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코끝을 언니의 얼굴에 댔다.
깊고, 오래 숨을 들이켰다.
그건 깨우는 냄새가 아니라 기억하는 냄새였다.
살아 있는 냄새를
내 안에 옮겨 심는 냄새였다.
나는 언니 곁에 누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은 고요했고, 시간은 멈춰 있었다.
그건 작별이 아니라
동행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3.
또랑이는 그날 이후 밥을 먹지 않았다.
그릇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슬픔이 아니라 기다림이 있었다.
언니가 다시 올 것 같다는 믿음,
아니, 이미 곁에 있다는 확신 같은 것.
문이 열릴 때마다 또랑이는 달려갔다.
아무도 없을 때엔 조용히 돌아왔다.
언니가 있던 자리에 몸을 말았다.
천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지만 어딘가 따뜻했다.
밤이면 내 곁으로 와
아무 말 없이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몸의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는 미미의 체온과 닮아 있었다.
사랑은 그렇게 옮겨왔다.
언니의 자리에서, 또랑이의 몸으로.
그리고 내 품으로.
나는 그날을 오래 생각했다.
병원의 불빛,
미미의 마지막 숨,
그리고 또랑이의 침묵.
세상은 그 세 가지를 한 줄로 엮어
나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고 있었다.
사랑은 때로 고통의 얼굴을 하고 온다.
그러나 그 고통이야말로
사랑이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증거다.
또랑이는 그것을 울음 없이 가르쳤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일,
그게 진짜 이별의 언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미미의 자리를 치우지 못했다.
바닥에 남은 털 한 올,
그 위에 또랑이의 발이 겹쳐 있었다.
살아 있는 생명과 떠난 생명이
한자리에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낯익은 냄새가 흘러왔다.
그건 미미의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자리를 옮겨 앉는다.
미미에서 또랑이로, 또랑이에서 우리에게로,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옮겨갈 것이다.
※ 작가의 말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자리를 옮겨 앉을 뿐이다. 떠난 자의 체온은
남은 자의 품에서 다시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