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마지막 밤, 마지막 숨
그날 밤,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숨과 숨 사이로, 또 하나의 우주가 빛을 잃어갔다.
본향을 찾아 그 왔던데로 다시 갔다.
병원은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의사는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연약한 생명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의사만 힘없이 쳐다봤다.
그것은 떠나는 날이 아주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날 밤, 숨은 돌처럼 무거웠다.
작은 가슴이 들썩이며 터져 나오는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공기가 순환을 멈추고 소리내어 끓는 듯했고,
숨 사이사이로 시간의 틈이 벌어졌다.
나는 주사기로 물을 떠, 마른 입술에 한 방울씩 흘려 넣었다. 진한 눈물과 맑은 물이 섞였다.
삼키지 못한 물은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불이 젖어갔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 아래에는 패드를 깔았다.
언제나 뒤끝이 깨끗하던 녀석은 이제는 스스로를 가누지 못했다.
나는 그 몸을 닦으며 속삭였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다 괜찮아.”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으나,
발끝부터 점점 식어갔고 차가운 다리 근육이 잡혔다.
피가 더는 돌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 왔다.
굳어 쭉 펴진 앞발을 주무르며,
내 손을 비벼 그 안의 남은 열기에 더하려고 애써 뜨거움을 만들어 냈다.
고개는 숨을 찾듯 뒤로 젖혀졌고, 눈동자는 좌우로 급하게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 눈에 비친 세계는,
내게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시공간 같았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내 품으로 끌어안았다.
녀석의 뜨거운 심장은 손이라도 대면 터져 버릴 것 같이 내 가슴에서 쿵쾅거렸다.
13년을 지켜온 작은 심장이 내게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것은 살고 싶다는 신호이자, 한편 떠날 준비의 리듬이었다. 입술을 녀석의 귀에 댔다.
“랑아… 괜찮아. 이제 손을 놓아도 돼.”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눈물로 되뇌었다.
그러나 그 손은 나를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세상이 희미해진다.
공기가 멀다.
아빠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흐르고,
내 몸은 점점 가벼워진다.
눈앞의 그림이 흔들리고,
아빠의 얼굴이 두 개로 갈라진다.
나는 숨을 찾는다.
그러나 숨은 나를 두고 자꾸 저만치 간다.
아빠의 손이 내 다리를 문지른다.
그 손끝의 떨림이 내 심장의 박동처럼 느껴진다.
그 손이 나를 붙잡고,
나는 그 손에 매달린 채 세상을 바라본다.
이제 아프지 않다.
이제 무섭지 않다.
나는 가볍게, 깃털처럼 아주 가볍게 날아
그 손 위에 남은 온기 속으로 스며든다.
저기, 어둠 속 빛이다.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노랫소리와 함께 다가온다.
아빠랑 같이 노래했던 노래다.
아빠 목소리다.
허공에 손을 내밀며 숨을 들이키고 눈을 떴다.
아빠가 갑자기 또렷이 보인다.
너무나 반가운데 아빠는 울고 있다.
‘울지 마. 아빠!’
무슨 말을 하려는데 향긋한 냄새가 계속 오라 한다.
하얀 빛이 나를 감싼다.
아빠가 점점 멀어져 간다.
‘아빠!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새벽 네 시. 운명의 시간,
호흡은 더 이상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지 못했다.
짧게, 길게, 다시 짧게.
숨결이 부서지는 소리가 방 안에 흩어졌다.
나는 두 손으로 그 몸을 안았다.
‘랑아, 가려거든, 꼭 가려거든… 그래 편히 가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불규칙하던 숨이 턱 멈췄다.
“또랑아!”
내 커다란 외침에 순간,
떨구어 있던 고개가 갑자기 들렸다.
그 눈을 크게 떠서 나를 본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 작은 몸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바라본다.
아니, 나를 바라보았다. 한 번, 또 한 번…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랑아! 또랑아, 아직 가지 마!’
그리고, 그 찰나, 빛이 푹 떨구어졌다.
나는 그대로 무너졌다.
축 늘어진 그 몸을 안고 하염없이 외쳤다.
“또랑아, 또랑아…우리 또랑이 불쌍해서 어떡해!!“
불쌍해서 어떡해!! 불쌍해서… 미안해 랑아!”
그렇게 무릎을 꿇었다.
범벅이 된 눈물로 그 얼굴을 닦고, 눈에 입맞추며 다리를 주무르면서 굳어가는 몸을 붙잡았다.
아내와 딸이 달려왔다.
방 안은 슬픔의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 작은 몸은 아직 따뜻했다.
세상을 바라보던 창인 눈은 열려 있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두 번 보고 감지 못한 눈이었다.
“눈이 안감겼어,”
나는 그 몸을 작은 이불로 감쌌다.
상처로 얼룩진 피부, 칼자국처럼 남은 수술의 흔적,
그 모든 것이 녀석에겐 전쟁같은 삶의 기록이었다.
나는 눈물로 그 몸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랑아, 내 사랑하는 또랑아 우리집에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너무 너무 미안하다.”
그날 새벽,
하늘은 잿빛이었다.
시간은 멈춰 있었고 세상은 더 이상 어제의 세상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사랑하는 그 이름,
그리고 내 안에서 아직도 숨 쉬는 그리움 뿐.
‘랑아, 아빠는 정말 누구보다 널 참 사랑했어,
그래, 우리 또 만나는 날이 있을거야., 내가 언젠가 머나먼 여행을 떠날 때 네가 먼저 마중 나올 거지?’
난, 사실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자꾸만 믿고 싶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나면 가장 먼저 사랑했던 반려동물이 마중나온다는 사실을…
| 작가의 말
그날 새벽, 세상은 멈췄고
나는 또랑이의 마지막 숨을 대신 쉬었다.
그 숨결이 내 안에 남아,
오늘도 나는 그 아이의 이름으로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