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랑이 - 사랑은 자리를 옮겨 앉는다.

제10화. 그를 떠나보낸 날, 남은 자리들

by 태산박

제10화. 그를 떠나보낸 날, 남은 자리들


비워진 자리가 슬픔이라면,
그 슬픔 또한 사랑의 한 이름이다.


사랑과 그리움을 남긴 마지막 편지들


작가의 일기(Monologue)

— 풍장(風葬) —


차창 밖엔 바람이 분다.
소슬바람이다.
중년의 가을은 유리처럼 식어가고,
바람은 길 위의 사연들을 모은다.

잎들은 제 그림자를 덮으며
서로의 이름을 잊어간다.
하늘거리며 노래 부르듯 춤추는 그들의 의식,
고결한 풍장(風葬)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답다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슬프다.
본류에서 떨어진 것들은
다시 제 자리를 찾지 못하니까.

푸르렀던 플라타너스.
그 녹음의 시간들이 쓰여진 사연들이
갈색 수의를 입은 채
본향을 휘감고 먼 여행을 시작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탈춤을 춘다.

내 사랑 또랑이도
이 스산한 가을 바람을 타고 멀리 떠났다.
그 작은 몸의 온기는 식었으나
그의 혼숨은 살아
따뜻한 내 마음의 방에서 쉬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바람 속에서
그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를 기억한다.
함께 했던 노래를 추억한다.
이제는 다시 못 부를 세상 노래를….

“꼭 꼬꼬… 꼭 꼬꼬…”




몸이 차가워진 아이.

아직 눈을 감지 못한 연약한 사랑.

전쟁과도 같았던 격정의 새벽은 지나고,

진한 슬픔이 드리워진 아침이 왔다.

상실과 혼돈의 시간은 여전히 계속되고

우린 그를 떠나보내야 했다.


누워 있는 아이를 이불에 싸서 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살아왔던 삶의 공간에는 같은 이름의 산 자와

떠난 자가 함께 있었다.


떠난 자는 내 품에서 말이 없었고,

산 자는 내 시선 너머에서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잠자는 모습, 밥을 먹는 모습,

화장실과 현관 앞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눈망울.

함께 장난치고 노래하던 작은 방,

그리고, 숨이 다한 질고와 격정 속 울림의 방에서.


“또랑아, 잘 가. 여기 네 흔적들, 우리가 기억할게.

너무 너무 고마웠어.”


밖으로 나서자,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늘 다니던 아파트 길,

가을빛이 차갑게 내려오는 나무들 사이로 걸었다.

그가 걷던 길. 그의 흔적이 남은 길.

낙엽은 이별 인사라도 하듯

그의 머리를 지나가고, 연하고 갈라진 잎새 하나가

그의 곁에 나비처럼 앉았다.

그의 혼을 위로하는 하늘에서 보낸 정령인가.


한 생명은 먼 길을 갔는데

높은 가을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맑았다.

며칠만 더,

아니 아프지 않고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더라면

이 푸른 하늘과 맑고 신선한 공기를

가슴 깊숙히 느끼게 해주었을 텐데—




멀리, 도시 외곽에 자리한 S동물장례식장.

그곳으로 가는 동안

지난 추억들이 필름처럼 되감겼다.

운전석 옆에서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미미가 떠났을 때도 왔던 그 길.

벌써 3년, 그리고 또 와야 할, 언제 올지 모를 길.

차를 타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온 우리도 때가 오면 가야 하는 길.


장례식장 안,

벽면에는 수많은 이별의 사연들이 빼곡히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조각, 아쉬움의 낙엽들, 그리고

그리움으로 승화된 편지들이었다.

저 많은 사랑받던 이름들,

이젠 사랑이 떠나가고 남아 있는 그리움들.

그 틈에 우리 또랑이의 그리움을 더한다.


또랑아! 잘가. 넘 사랑했고 고마웠고 미안하고…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작은 몸 위로 하얀 천이 덮이고,

직원이 조심스레 향을 피웠다.

향 냄새가 하늘로 오르고 조용히 퍼지는 동안,

나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참으며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또랑아, 아빠 왔어.”


작은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잠이 든 듯,

그 눈매에는 고통의 그림자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정성스레 싸여 가는 천 아래로

다시 못볼 늘 쓰다듬던 하얀 배가 살짝 비쳤다.

몸을 하늘 향하여 뒤집어도 자신을 그대로 맡긴 녀석,

그것은 주인에 대한 전적인 신뢰였다.

나는 다시 목이 메였다.


직원이 자리를 비켜주며

마지막 인사를 청한다.

색동옷 같은 오색빛 수의를 입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이마를 쓸고, 먼 길 떠나는 그를 바라본다.

차가워진 피부가 손끝을 타고 가슴 속으로 전해온다.

그 온기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듯하다.


“랑아, 우리 또랑이 이쁜 오색 수의 입었네.

이제 정말 가는 거야?

한 많은 세상 길, 우리랑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많이 힘들었지? 그래, 아프지 말고,

그곳에선 아빠랑 함께 부르던 노래 목청껏 부르고,

향긋한 꽃냄새 깊게 맡으며,

부드러운 숨을 쉬면서 마음껏 뛰어다녀.

잘 가라, 잘 가라 우리 랑아! 많이 많이 사랑해!“


오색 수의를 입은 또랑이. 다시 왔던대로 가는 길 앞에서…


아내의 흐느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슬픔의 크기를 사람의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관이 서서히 밀려들어갔다.


그렇게 세상에 왔다가

온갖 시련과 슬픔을 당했던 그 작고도 하얀 몸은

다시 산화되어 먼 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장장 안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난 조용히, 아주 작게 노래를 불렀다.


“꼭 꼬꼬… 꼭 꼬꼬.”

“잘가. 사랑해 랑아”


불빛과 침묵, 조용한 흐느낌…


한 시간이 지난 후,

또랑이는 다른 모습으로 내게로 왔다.

나는 두 손으로 함을 들고 가슴에 안았다.




돌아오는 길,

아무 말도 없는 차 안.

창밖으로 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차창을 스쳤다.

그것은 마치 또랑이 먼 길 떠나는 안내자 같았고,

그 소리는 또랑이의 그간 살아낸 몸짓 같았다.

십 수년의 타임랩스가 차창에 걸려있었다.


다시 창밖을 보니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가을빛은 눈부시게 맑았다.

그날의 세상 속 공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온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고요가 나를 삼켰다.

밥그릇이 식탁 아래에 놓여 있었고,

목줄은 여전히 현관 옆에 걸려 있었다.

그가 앉았던 자리, 누웠던 이불, 노래했던 공간은 그대로인데 허전한 공기만이 그곳에 있었다.

상실감이란 이런 것일까.

이렇게 잃어버리고 떠나 보내고 꼭 가야만 하는 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함을 조심스레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작게 중얼거렸다.

“또랑아, 이제 정말 편안하게 쉬어. 아빠는 항상 너랑 함께 여기 있을게.”


멀리서 아주 작게 또랑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숨과 노래 그리고 몸짓의 실루엣이 만들어 낸

천상의 소리 같았다.

눈을 감고 위를 올려다 봤다.

하얀 불빛이 눈 속에서 명멸하는 우주 같이 반짝였고

그 속에 그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빠, 우리 다시 만나요. 안녕‘






※ 작가의 말
죽음은 생의 반대가 아니다.
그저 사랑이 머무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그 사랑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
가장 조용한 자리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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