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병과 함께 걷는 길
1.
그 아이는 처음부터 상처였다.
부서진 몸으로 내게 왔고, 네 번의 수술을 견뎠다.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 아니라, 생의 의지였다.
긴 시간 동안 녀석은 묵묵했다.
뒤뚱뒤뚱 절룩거리는 걸음으로도 잘 걸었다.
공원의 바람을 맞으며, 우린 나란히 걸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고통을 이기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숨의 길이라는 것을.
미미가 떠나자 녀석은 자주 그 자리에 앉았다.
빈 자리의 냄새를 맡고, 텅 빈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말을 대신했다.
‘아빠, 언니는?’
나는 또랑이를 안고 변해가는 회색빛 눈동자를 쳐다보며 속삭였다.
‘랑아, 언니는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단다’
병은 조용히 그리고 급히 찾아왔다.
폐에 물이 차고, 신장과 심장은 자꾸만 호소했다.
분당 60회 이상의 맥박은 잠시의 휴식도 방해했다.
정상의 숨은 스무번 남짓이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고 매일 피하수액을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의사는 말했다.
“이건 고친다고 나아지는 병이 아닙니다. 암 쪽엔 몸이 약해서 아예 손도 대지 못했어요.“
그건 절망의 끝에서 들을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상처로 굳어졌다.
그날 이후, 매일이 기도였다.
과연 우리 또랑이 언제까지 함께 살 수 있으려나.
그래, 산다는 게 전쟁같지만,
하루만 더, 오늘만 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우리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2.
아빠는 어느 날 나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가을 냄새가 골목 끝까지 흘렀다.
공원엔 바람이 불고, 색바랜 잎들이 천천히 떨어졌다.
나는 느리게 숨을 쉬었다.
폐 안에 공기가 다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숨이 세상의 냄새를 데리고 들어왔으니까.
아빠가 말했다.
“랑아, 저걸 봐. 저 나무들, 저 푸른 하늘, 그리고
바람에 떨어지는 잎사귀들, 나뭇가지 위 지저귀는 새들, 다 네 눈에 넣어두렴.
저 햇빛도, 오가는 사람들도, 네가 좋아하는 냄새도.
이건 네 세상이야. 기억해 둬.
저 밝은 햇살, 그것은 네가 어느 해 겨울, 죽음 앞에서 간절히 바라던 생명의 빛이었어.
그런데 오늘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햇살이 강하게 눈을 찔렀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응, 아빠. 나 다 보고 있어.’
내 안쪽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저 나무의 색도, 풀잎의 냄새도, 바람 속 먼지의 따뜻함도 다 기억할게. 혹시 내가 멀리 가더라도,
그 냄새로 아빠를 찾을 거야.’
나는 바람을 향해 코를 들이밀었다.
그 냄새는 오래전 우리가 함께 걸었던 시간 같았다.
봄의 분홍빛 공원, 여름의 뜨거운 바다, 가을 어느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미미언니의 발소리의 화음,
초코의 바스락거리는 가을빛 숨결.
겨울 하얀 눈 속 나와 미미언니의 눈과 코만 까만…
그리고 엄마 아빠의 웃음.
‘하하, 세상이 모두가 미미와 또랑이 색이야!’
바람이 데려온, 시린 추억이 그 안에 있었다.
숨이 막혔지만 나는 계속 냄새를 맡았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느끼고 싶어서였다.
세상이 아직 이렇게 살아 있고, 나는 아직 그 안에 있었으니까.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랑아,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요. 아직 햇볕이 따뜻해요.’
아빠는 들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숨은 찼지만 나는 하늘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흰색 뭉게구름이 천천히 언니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3.
그날 나는 알았다.
세상은 떠나는 자의 눈으로 보면 더 선명하다는 것을.
그 아이는 숨이 가빠 오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바람이 전하는 소식을 듣는 듯,
풀잎의 미세한 흔들림에 더 오래 입맞춤하려는 듯,
거리에 뒹구는 낙엽, 새들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비록 눈동자는 희미해져 갔지만, 순간 모든 걸 읽고 가슴에 쓰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소곤거렸다.
“랑아, 이제 됐니? 충분히 봤니?“
그 아이는 고개를 들더니 내 얼굴을 오래 보았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 작은 몸이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그 눈은 평온했고, 이미 어딘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너머의 세계를 봤던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가만히 멈춘다.
그가 마지막으로 멈췄던 자리에서.
거기엔 여전히 바람이 있고, 풀잎이 있고,
그 아이가 남겨둔 냄새가 있다.
그 작은 생명이 뒤뚱뒤뚱 절룩거리며 걷는 아련한 발걸음이 있다.
작가의 말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느끼고 싶어서 숨을 쉰다.
그 한숨 한숨이, 우리에게 남은 생의 빛이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