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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n 18. 2022

보고서의 추억이 국향 속에 머물고…

부고


공기업이란 직장에서 차장, 부장 시절 주로 기획부서에 근무했다.

특히 차장 시절엔 보고서를 쓸 일이 많아 하루 종일 보고서 자료 준비와 작성에 시간을 할애했다. 자주 쓰다 보니 보고서 틀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상사는 보고서 양이 많은 것을 싫어하고, 또 어떤 상사는 양이 많아야 일을 제대로 한 것처럼 여기곤 했다. 문제는 상사가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 타깃을 잘 잡아야 했다. 예를 들면, 보고서를 작성하는 차장 위로 부장, 처장, 전무, 감사, 사장이 있었고 그들 각자가 취향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이 다 다르니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보고서를 쓸 때마다 그것 또한 신경이 쓰였다. 무난히 넘어가려면 라인 전체가 수긍할 만한 지상 최고의 보고서를 작성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라인 중 가장 까탈스러운 상사에 초점을 맞추고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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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상사인 부장의 의도를 반영하면 처장이 마음에 안 들어하고, 처장의 의견을 반영하면, 또 전무가 싫어했다. 정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다 고려해서 부장~전무까지 그들 취향의 장점을 살려 보고서를 수정해서 감사나 사장에게 가져간다 해도 또 어느 단계에서 딴지를 걸었다. 어디에다 장단을 맞춰야 할지 고민하다가 파워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즉, 최종 결재권자이자 승인권자인 사장에게 무조건 맞추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사장도 사장 나름이었다. 보고서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의사 결정한 분도 있었고, 너무 꼼꼼해서 아랫사람이 생각해도 저렇게 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는 사장도 있었다. 어떤 사장은 위치는 사장이지만 전혀 힘이 없는, 아니 뭔가를 잘 모르는 낙하산 사장도 있어서 오히려 그런 사장이 일하기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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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감사(監事)였다.

가끔 회의 석상에 아무 생각 없이 한자로 ‘감사(監査)’라는 팻말이 놓여 있는 보았다. 눈여겨 보지 않았다가 감사(監事)가 보고 그냥 나가버린 일도 있었다. 감사는 견제기구로 사장과 동급이라 사장 아래로 취급했다간 난리가 났다. 회사 조직도를 그릴  사장과 같은 수평 라인에 그려야 아무  없지, 조금이라도 아래로 내려가면 호통이 떨어졌다.  번은 프린트가 잘못되었는지 감사라는 박스가 0.1mm 정도 사장과 비교해서 수평라인 아래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표시도 나지 않는 조직도였는데, 그걸 어찌 찾아내 혼이  적이 있었다. 가만있었으면 되었는데 토를 달면서 사장님과 같은 라인이라고 주장하다 급기야 잣대()까지 동원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따지고 보면   아닌데 감사에겐 어쨌거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감사는 올라오는 보고서로 사장과 맞짱 뜨는 일이 잦았다. , 평소 감사를 무시하며 경영을 했다든지, 행정라인에서 제대로 대우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직접 말은 하지 못하고 서류로 응징을 하는 편이었다. 물론, 모든 감사가 그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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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든지 그렇게 특별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피곤해지는데 내용은 뒷전이고 그런 지엽적인 일에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이 바쁜 차장에게는 피곤한 일이었다. 거기에 업무 내용이 아닌 그런 일로 핀잔까지 듣게 되면, 아무리 아랫사람이지만 소위 뚜껑이 열리기 시작한다. 상사 앞만 아니라면 보고서를 낙엽처럼 날려버리고 싶은 때가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양이 많은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면 오탈자가 생기고, 맞춤법이 틀리는 경우가 있는데 - 솔직히 맞춤법은 지금도 글을 써놓고 보면 틀리는 경우가 한두 개가 아니다 - 그것까지 지적하며 내용은 보지도 않고 싸잡아 행정라인을 비판하던 감사님. 어찌 되었든 모두를 만족시켜야 했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사장, 감사 아래는 미안하지만 무시해야 했다.



출처 : Pixabay



어느 해, 경영분석 보고회 때였다.

상하반기 일 년에 두 번씩 열리는 그 보고회는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에 대한 아주 세부적인 분석을 전 간부가 공유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임원진은 물론 전국의 주요 부장들까지 모이면 거의 100여 명이 참석하는 자리였다. 인원이 많아서 코엑스 강당을 자주 빌리기도 했던, 회사에서는 대규모 행사였다. 주관은 우리 부서에서 하고 주로 임원들이 질문하면 답은 해당 부서에서 했다. 한참 잘 진행이 되고 있는 그때, 감사님이 작심하고 나섰다. 보고서는 회사 전 분야가 다 들어가서 거의 한 권의 책자 두께인데, 멀리서 보니 여러 부분을 접어 놓은 것으로 봐서 미리 보시고 뭔가 응징을 하려는 것 같았다. 몇 페이지, 위에서 몇 번째 줄, 맞춤법이 틀렸다. 박스의 표에 나와 있는 숫자를 더해 보니 합계가 0.2 정도 다르다. 다음 몇 페이지에... 그렇게 10분을 넘게 지적하셨다. 이런 게 보고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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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 감사님이 유명을 달리했다.

한 사람으로 와서 또 한 사람으로 가셨다. 국화 향기 가득한 빈소는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고, 그 추억은 하늘하늘 올라가는 분향단 연기와 함께 사라져 갔다. 그분은 그때 그렇게 하셨지만 솔직하고 잔잔한 정이 있었다. 늘 뒤끝에 미안하다, 자네들이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도 있다는 것 알아라, 늘 꼼꼼해야 한다, 내가 술을 살게... 그러면서 시간이 좀 지난 뒤 따로 부서 팀원 모두 불러 회식을 시켜주곤 했다. 그러면,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웃고 잊어버리곤 했다. 물론, 그 후에도 감사님의 소위 그 지적(질)은 여전했고 모든 직원들은 그것을 고려해 보고서를 잘 작성해야 했다. 맞춤법 오탈자 교정 공부는 그때 해놓은 것 같다. 그래도 지금 맞춤법 돌려보면 뭐 이렇게 많이 틀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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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이제는 그때 그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 꼰대 같은 상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못마땅했지만, 후천성 유전은 못 말린다고 그분들한테 배운 것들이 있어서인지 결국은 좋은 의미에서 어니스트의 '큰 바위 얼굴'이 되었고, 나쁜 의미에서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국화 속에서 너털웃음이 들려왔다. "여보, 미안하네, 그렇게 해도 여기 오고,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여기 앉아 있을 몸인데 혹시라도 마음에 걸린 것 있다면 툴툴 털고 남은 인생 멋지게들 살게. 인생은 참 별 것 아닌 것 같어, 허허허." 그분은 우리들에게 '여보'라고 불렀다. 죽음 앞에서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가. "엄마, 인생은 단순한 거였어요!" 어쩌면 인생은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실타래 꼬이듯 꼬인 인생들이 많다.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산 것이 맞는 것일까? 아, 그것은 복기해 봐야 안다. 어떻게 살았는가가 아닌,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았는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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