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언제부터인가 손가락이 아팠다. 덩달아 손바닥도 아픈 느낌이다. 마치 땅바닥에 넘어지다 잘못 짚어 생긴 통증처럼 누르면 아릿하다. 그냥 손을 쓰지 않으면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검지를 뒤로 젖히면 통증이 온다. 손바닥도 가운데를 꾹 누르면 입에서 아~ 소리가 난다. 앉았다 일어나면서 왼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면 온몸이 철렁한다. 며칠을 역산해 본다. 내가 어디서 넘어졌거나 손을 헛짚은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해 봐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럼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나? 그러고 보니 검지손가락은 꽤 오래된 것 같다. 가끔 신발 신을 때 나도 몰래 발에 접힌 신발에 손가락이 갔는데 가만 보니 그게 왼쪽 검지였다. 순간적인 힘이 들어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며칠 지나면 정상으로 되돌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손바닥 뼈는 왜 아픈지 알 수가 없었다.
크게 아프지 않고 괜찮은 것 같은데 주위에서 자꾸 병원에 가보란다. 나이가 들면 아파도 그냥 아픈게 아니란다. 그래서 초기 개전박살을 해야 한단다. 이웃에 전쟁이 나서 생사가 경각간에 있고, 지금 세계3차대전 운운하고 있는데 손가락 하나 갖고 우리 말까지 전쟁에 감염되었다.
휴가를 하루 내고 병원에 갔다. 정형외과. 가면 금방 진료가 될 것 같아 예약을 안 했다. 그런데 아침 일찍 갔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요즘은 과별로 과거처럼 일일이 간호사한테 말을 하지 않고, 모니터에 도착 신고를 하는 모양이다. 병원을 온 지가 오래 되어서 조금 이런 변화들이 생소했다. 한번 더 물었더니 말귀를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목소리 톤이 약간 커진다.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가 되돌아왔다. 영상의학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난 후 예약을 하지 않아서인지 진료를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집이 가까워 도로 갔다가 올까 하다가 날씨가 더워 시원한 병원에 그냥 있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볼 만큼 보고 그래도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의자에 몸을 뒤로 젖히니 의자가 목에 착 감긴다. 딱 잠자기 좋은 의자다. 다음부턴 반드시 예약을 해야지. 그래 예약을 미리 안 하니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하고 있잖아. 준비성 없는 자신을 책망하고 눈을 감았다. 비몽사몽간… 오만 잡생각이 한꺼번에 시위하듯 올라와 둥지를 트는데 어디선가 꿈결처럼 소리가 들린다.
“김ㅇㅇ님, 5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조금 전까지 여러 번 들었었고 눈이 떠 있을 땐 한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던 소리였다. 몸이 움찔거렸다. 간호사 소린가? 텔레비전 소리인가? 참, 나는 김씨가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빨리 부를리 없다. 근데 왜 움찔했지? 느낌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보통 ‘몇 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라고 말한다. 좀 이상한 느낌이다. 여기가 어디지? 잠시 후 뒤에서 누군가 날 부른다고 일어나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아까와는 달리 대기실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일어나 안내 받아 간 곳이 제일 구석진 5번 방. 이상하게 읍습한 기운이 감돈다. 그런데 통로를 지나 한참을 가는 동안 사람들이 한쪽으로 의자에 죽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했다. 대기자들인가? 얼굴에 핏빛이 없는 무표정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을 지나 5번 방을 노크했다. 그런데 분명히 5번 방이었는데 N이라고 붙어 있었다. 이상했다. N? 문이 스르르 열리고 누군가 나를 보더니 얼른 안쪽으로 잡아 채고 표정 없이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갖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소리치지 말라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반 강제로 구급 침대에 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입에 재갈이 물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팔을 허공에 저으며 말은 하는데 말이 입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좌우로 몸을 뒤틀어봤지만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흰 가운들이 여럿 보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수술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잘못 들어온 것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고 흰 가운들은 환자가 바뀐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봐요! 나 지금 수술하러 온 것이 아냐, 난 손가락 보러 왔다고!’
무표정한 그들은 뭐라고 하면서 수술 도구를 각자에게 배분하기 시작했다. 나와 그들의 위치는 차원이 다른 세계 같았다. 부딪치는 수술 도구들의 쇳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놀라 가까이 있는 흰 가운에게 손을 뻗쳐 ‘내가 아니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그는 희죽 웃으면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다른 가운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주사기 약물을 제대로 인젝션하기 위해 허공에 약물을 분수처럼 분사했다. 아마도 마취 직전인 것 같았다. 소리칠 겨를이 없었다. 그때 문 앞에서 소리가 났다.
“박ㅇㅇ님, 2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화들짝 놀랐다. 벌떡 일어나 다시 안내 목소리를 따라 통로로 들어갔다. 한쪽으로 서로 연결된 흰 의자들이 보였다. 아까 보였던 사람들이 벌써 진료를 다 마쳤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쳐다보았다.
N? 구부러진 N번 방이었다. 움찔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흰 가운이 두 명 있었다. 앞에 있는 가운이 엑스레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손을 내밀고는 주위를 쳐다보았다. 아까보다는 가운이 적었다. PC앞에 있는 흰 가운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인턴인 모양이다. 키보드 소리가 부딪치는 쇳소리로 들렸다. 앞의 가운이 나를 한번 보더니 희죽 웃는다.
“별거 아닌데요. 퇴행성 관절염은 나이가 들어가면 다 찾아와요. 그런데 환자분은 거의 정상과 다름 없고 앞으로 관리만 잘해 주시면 돼요.”
2주치 약을 무더기로 처방을 해줬다. 뭔가 뒤끝이 개운치 못했다. 나오면서 다시 문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2번 방이었다. 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N번 방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눈을 돌려 통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까 들어올 때처럼 하얀 대기의자에 무표정한 사람들이 죽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꼭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만 같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튕겨나오듯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