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계

운동학 노트: 골프공과 물방울 1-1

by 박하우주

나는 중요한 날을 앞두고, 어느 날 갑자기 골프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건 두 번째였고, 사실 펑펑 울었던 첫 번째는 따로 있다.

그날, 나는 끝까지 참았다.

하지만 레슨을 마치고 돌아와 정적이 흐르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돌산처럼 굳어진 감정이 터져 나와 버렸다.

이렇게 운동이란 것에 심각해져야 하다니, 이 속에서 처음 겪는 폭포수였다.

나에게 미친 듯이 화가 났었다. 바보 같았다.

웃긴 얘기지만, 나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운동에 약이 올라, 무릎이라도 꿇게 된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릎 위에 주먹을 올려 쥐었다.

하지만 지금 우린, 아주 조금 화해를 한 것 같긴 하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해야 할까.

나는 골프라는 운동에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이젠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까지 오고야 말았다.

하나의 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거창할 일인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분야든 자신의 삶 속에 깊게 베인 것들은,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와 같다.

마치 내 주변을 돌고 있는 작은 위성들 중에 하나일지도.

그렇게 함께 빙빙 돌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보다 먼저 골프 세계의 문을 열었던 친구로부터 클럽을 던져 받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맞춰보라는 듯 놓여있는 작은 하얀 공을 정확히 맞췄다.

이게 뭐란 말인가. 그저 이 공을 맞추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늦깎이 골프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점차 내 주변을 바꾸더니 급기야 모든 일상까지 변화시켰다.

그렇게 모험적인 골프 탐험의 여정이 펼쳐지게 되었다.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몸이 이해할 수 있게, 강박처럼 나 자신에게 설명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바로, 최면적 탐사가 아니었나 싶다.



의욕 넘치는 첫걸음은 순항의 돛을 올렸다.

교습가의 가르침을 하나씩 귀담으며 매일 빠짐없이 일지도 기록했다. 기본기부터 스윙의 흐름을.

하지만 그 매일이 도전이었고, 희망과 절망은 밤과 낮처럼 희번덕이며 반복되었다.

굴복하지 않는 시간은 구력을 쌓아 올려, 어느덧 몸이 먼저 알아차리게 되었다.

공을 타격하거나 던지는 종목은, 골프 정석의 참고서처럼 딸려 나온다.

나라고 여러 교습가에게 안 배웠겠냐마는. 모두 바라보는 시선도, 설명도 달랐다.

꽤 오래 전, 이런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놓고, 여전히 비전문가인 내가 뭐라고 써야 할지 망설여졌다.


내가 생각하는 골프란, '상대적이야.'라고 하고 싶다.

반면, 골프를 겪어 본 모든 사람들은 골프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한 타 한 타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게임처럼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고.

또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배움의 결과도 그리 멋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같은 동작을 그려보지만 여러 다른 해결법들이 난무한다.

이런 것들을, 뻔하지 않으면서 한 번에 들이대고 싶단 생각에서 떠오르는 말이다.

결국, 골프는 기술 보다 ‘해석의 운동’이며, 사람마다 다른 '운동 철학'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호쾌한 장타는 분명 유리하지만, 아무리 잘 날려도 긴 세월 노장의 클럽에서 묻어나는 예리한 터치감은 결국 겸손함을 부른다,

코스의 클럽 챔피언은 타이거 우즈 할아비가 와도 못 이긴단 얘기가 왜 나오겠는가.



이런 골프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나에게 수영이란.

수영은 그 복잡함을 가라앉혀 주는 '심리적 위안의 운동'이다.

이 두 가지 운동은 내 인생의 일부처럼 매우 진지하다.

느낌만으로는 두 운동의 연결고리라곤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수영도 골프처럼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분야에 최고를 찍은 골프나 수영 스타의 갖가지 기술과 동작들을 우리 모두가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찬양은 나만 몰랐던 특별한 비밀 병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부풀게 한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곧바로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려 버린다.

마이클 펠프스의 영법을 따라 했다가 프로 선수들조차 오히려 기록 단축에 실패했단 소문도 있는 걸 보면,

그래서 해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주변의 소음이 뭉그러져서 물방울들이 터지는 소리는, 나를 신비의 보물섬으로 데려가는 듯하다.

그 소리는 자신감의 파도를 몰고 오고, 그날의 컨디션도 체크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물의 압력이 귀 안쪽 어딘가까지 치고 들어오다 멈춰, 먹먹함이 느껴진다.

외계어를 실은 물속 파동이 둥둥 떠다니고,

이것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과 나를 분리시켜 주는 듯하다.

이내,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수영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몸의 움직임은 맑은 정신의 근본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실행하긴 어렵지만 정확히 맞는 말이라고, 체험으로 알게 됐다.


오래전 심신이 고단했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 속에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했던 것이 바로, 수영이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물과의 친분은 16년이 넘어가고 있다.

시작한 시간만 그렇지. 골프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던 수영을 잠시 접었다.

골프를 체득하는 시간은 수영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상으로부터 버텨내야 했던 여러 일들이 몰아쳤고, 최근엔 손목이 말썽을 부렸다.

평범한 일상도 이겨내지 못하는 수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다행히 회복기에 들어선 틈을 타, 나의 운동 신경들도 다시 스멀스멀 신호를 보냈다.

지금 가능한 운동을 찾으라고.


그래서 잠시 시동을 꺼두었던 몸속 장기들에게 적응의 시간을 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몸 안 어딘가에 전해진 신호는 바로, 수영이었다. 처음 수영을 시작했던 그때처럼.

운동중독자들에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곤욕인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도파민, 아드레날린도 사라졌다.

주머니에 물이 가득 찬 듯 몸은 무거웠고, 나는 그 무게에 파묻혔다.

무기력해진 매일을, 어쩌면 영화 속 '올드보이'만큼이나 탈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