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캘리박 Sep 04. 2024

첫 하이킹 중 거대 방울뱀과의 조우


미국에 온 후 살이 너무 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대학교 때 국토대장정을 통해 21일간 600키로를 걸었을 정도다.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사색을 하는 걸 좋아한다. 굳이 각을 잡고 걷지 않더라도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걷기를 통해 칼로리 소모가 됐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지하철에서 또 직장까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고 식사 후 커피를 들고 잠시 걷는 산책까지. 일과 종료 후에는 다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집으로 계속 걷기의 반복이다. 집에 온 후에도 집근처 둘레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미국에 오고 난 후에는 칼로리 소모량이 팍 줄었다. 이전 글에 썼던 것처럼 이곳의 점심시간은 11시55분 언저리에서부터 1시까지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갖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바로 점심시간이 종료다. 그리고는 퇴근이다. 퇴근을 하고 나면 나가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다. 특히 요새는 둘째 아이와 야구를 한다는 핑계로 격렬한 칼로리 소모를 하지 못했다. 아이와 놀아준 이후는 어두워져서 돌아다닐 수가 없다. 치안이 불안해 밤에 돌아다닐 수 없는 게 미국 생활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LA 근교 하이킹 코스를 검색해 보기로. 몇 군데가 나오기는 했는데 일단 집에서 거리가 가깝고 코스가 짧은 곳부터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집에서 차로 11분 거리로 웨스트 할리우드를 지나 위치한 '하퍼 몽키 트레일'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등산화와 폴대, 텀블러, 선글라스 등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출발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며칠 전에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다가 들렀던 공원과 붙어 있는 곳이란 걸 알게 됐다. '오~ 그나마 다행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구를 찾지 못해서 산책을 하기 위해 개를 끌고 저택에서 나오던 한 백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하퍼 몽키 트레일 입구 아시나요" "이쪽 방향인데 따라오세요" 노인을 따라 2분 정도 걷자 입구가 나왔다. 그는 "더 오래 걷고 싶으면 왼쪽 방향, 짧게 걷고 싶으면 오른쪽 방향으로 걸으세요. 하이킹 잘 즐겨요"라고 말했다. 

입구에 서자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걷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등산은 다른 차원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뭇대는 사이 앞에 3명이 올라갔다. 잠시 숨을 고르고 올라가려던 차에 입구 바로 오른쪽에 뭔가 검은 물체가 보였다. 뱀이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머리 모양을 보자 본능적으로 '저건 독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팔과 등에 계속해서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또아리를 튼 상태였지만 단순하게 봐도 1미터 안팎으로 보였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뭇거리던 중에 백인 청년 두 명이 올라왔다. "저기에 커다란 뱀이 있어. 조심해" 그들은 내게 "너무 고마워. 우리 일단 올라가지 말고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한 친구는 "나 여기서 자랐는데 저런 뱀은 처음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저 뱀 독사 맞아?"라고 물어보자 그들은 "꼬리를 한번 보자. 방울뱀 맞네"라고 말했다. 실제로 꼬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방울뱀 특유의 꼬리가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뱀은 등산로는 지나 반대편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뱀 전체의 길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미터가 넘은 길이였다. 굵기도 굵었다. '오 마이 갓' 소름이 계속 끼쳤다. 

뱀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땅에 있는 수풀과 나무가 온통 뱀으로 보였다. 1미터가 넘는 방울뱀을 봤으니 놀랄 만도 했다. 폴대로 수풀을 계속 때리며 올라갔다. 햇빛이 너무 강해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뒤를 힐끔힐끔 돌아봤다. LA 시내가 보였다. 계속 뱀을 의식하며, 올랐다. 몸에서 소름이 끼쳤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해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LA시내와 힐(hill)에 위치해 있는 부촌이 보였다. 저 멀리 할리우드 사인도 보였다. 굉장히 아름다웠다. 내려오는 길에 하늘을 나는 매도 봤다. 하이킹 코스를 다내려오고 나니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방울뱀 조심' 사진과 문구가 있었다. 다시 소름이 끼쳤다. 다른 사람들은 폴대도 물통도 하나 없이 올라가던데 이런 곳이 방울뱀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코스인데다 상대적으로 코스 난이도가 쉬워 자주 가고 싶은 곳이지만 이제는 다른 곳으로 하이킹 코스를 바꿔야겠다. 다음에는 어떤 어드벤처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이전 21화 미국에서 첫 파마 도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