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기(氣)를 보내고 있어서 현재 트럼프 지지율이 잘 나오고 있거든요. 트럼프가 절 초청했는데, 비행기 티켓 가격을 모금할 방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유부남이랑 내연관계였는데 그 사람이 저를 버렸거든요. 그 사람을 혼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누구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한인 신문사에 근무를 하다보면 하루에 몇 번씩 제보전화가 온다. 전화를 하는 분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60대 이상 한인들이다.
어느 직종이 안 그러겠냐만은 신문기자라는 직업은 순간 순간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매일 매일 '데드라인'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주변이 조용하지 않으면 집중을 못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기자를 넘어 직장인인 이상 회사로 오는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다.
한인 신문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독특한 전화를 받게 된다. 그분들께 할 수 있는 대답은 "선생님,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죄송합니다."이다. 가장 최근에 회사 동료들과 내가 받았던 전화는 위의 사례와 같다.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언론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거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언론사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 대해 환상(또는 편견)을 갖고 있다. 1세대 한인들은 세탁소와 식당 등을 창업해 대부분 성공했을 거라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온지 3개월차를 맞이한 지금 그동안 갖고 있던 환상 또는 편견이 깨졌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 자금 대주고 빈곤층으로 전락한 한인들이 굉장히 많아요. 노인 빈곤율이 상당합니다."라고 한 교포는 말했다.
고향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땅에서 40년 넘게 열심히 살았는데 자식들은 외면하고 남은 자산은 없고 몸이 아파 고생하는 노인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식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고 하는 교포들도 여럿 봤다. 언어는 생각과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교감을 할 수 없다. 이들은 자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한단계 가림막이 쳐져 있는 셈이다.
한인들의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통계는 금세 찾아볼 수 있다. 올해 9월 기준 LA에서만 한인 16명이 자살했다. 몇개월 전에는 LA에 살며 조현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던 40대 남성이 출동한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뉴저지에서 조울증을 앓던 20대 한인 여성이 똑같은 일을 당했다. 안타까운 점은 가족들이 이들을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911에 신고했는데,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두 분 모두 경찰에 의해 가족들 앞에서 사망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되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얘기하고 싶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압박하는 요인은 대체 무엇일까. LA 현지 언론들은 경제적 빈곤, 고립감,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 고국을 향한 그리움, 자녀와의 불화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문제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찾았더라도 치료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교포는 "언어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클 거예요. 한인타운에 한인 정신과는 매우 드물거든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LA 한인타운에서 한의원이나 소아과, 내과, 성형외과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정신과는 보지를 못한 것 같다. 한국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까지 미국에서는 정신과를 가는 것을 터부시하고 꺼리는 분위기도 작용한다고 한 교포는 귀띔했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미국인 의사에게 자신의 상황과 증상을 설명하고 꾸준히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병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정신과 질환은 계속해서 약을 먹고 상담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6.25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룩했다. 국민들의 근면과 성실이 고도성장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빠른 성장만큼 그늘도 상당했다. 성장궤도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빈민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구조의 최극단인 나라가 미국이지만 말이다. 한국인들은 남들과 비교를 너무 많이 한다. 그 비교가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정신건강을 갉아먹는 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다른 자식이 뭐가 됐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 사람들은 정작 본인은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 남들과 비교를 하고 환경을 탓한다.
분명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본인들을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샌드위치로 느끼는 이민자들이 많은 것은 정말 슬픈 현실이다. 그들이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은 분명 이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시스템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