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겁이 많고 소심하다. 그런데 갑자기 전사가 될 때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때, 네 살 어린 남동생은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어느 날, 집에 어른이 없는데 남동생이 울고 들어왔다.
유리구슬 같이 예쁘게도 생겼던 내 동생이 꺼이꺼이 서럽게 울며 놀이터에서 엉아들에게 맞았다고 했다. 그때 분기탱천하여 스프링처럼 현관문을 튕겨 나가던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복도식 아파트 2층에서 동생 손을 잡고 구르듯이 계단을 내려가 그 못된 엉아들 앞에 섰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몸무게가 18kg였으니, 3-4학년쯤 되어봤자 거기서 몇 킬로 더 안 나갔을 거다.
훌쩍이는 동생 손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누가 내 동생 울렸어, 너야? 너야? 빨리 나와 누구야!!!"
엉아들은 주춤거렸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모두 주춤거렸던 것 같다. 나는 완벽히 승리한 누나였다.
그러고 난 후, 나는 또 기본에 충실하게 겁이 많고 소심한 일상을 살았다.
남편과 앉아 이야기를 하다, 꼬리를 물던 이야기가 갑자기 이 기억까지 이어졌다.
"내가 그래 요보. 내가 소심해 보여도, 만약 당신이 속상한 일을 당했다 싶으면 바로 전사가 될 수 있어. 그러니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만 해. 내가 나가서 다 때려눕혀줄 테니까"
남편은 나의 어릴 적 얘기를 들을 때는 엄청 웃었지만, 나의 듬직한 마지막 말에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이 기분.
"요보, 니가 나를 제일 괴롭혀"를 듣지 않아도 들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