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규범의 해제가 부른 정치적 비극』에서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비공식적 규범, 특히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미국 정치에서 이 두 규범이 점점 약화되면서 정당 간의 경쟁이 적대적인 투쟁으로 변질되고, 결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공화당의 극단화와 의회 규칙의 악용, 대법원 인준 절차의 정치화 등을 사례로 들어, 규범이 무너질 때 제도가 어떻게 오용되고 민주주의가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핵심적으로, 규범이 해제되면 합법이지만 비민주적인 수단이 남용되며, 이는 민주적 제도의 껍데기만 남긴 채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오바마 임기에 벌어졌던 세 가지 극적인 사건을 통해 자제 규범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연방정부의 채무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2011년 위기였다. 채무한도를 상향조정하지 못하면 미 연방정부는 채무불이행과 국가 신용도 하락, 그리고 급격한 경기 침체와 같은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 채무한도 조정은 양당의 합의 하에 오랫동안 관행처럼 진행되었다. (...) 양당 지도부는 그러한 다툼이 정치 타협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티파티*를 등에 업은 공화당의 새 세대 정치인들이 2011년 공화당 하원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들은 채무한도를 인질로 삼았을 뿐 아니라, 대규모 지출 삭감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조정을 원천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즉 “시스템 전체를 허물어뜨리고자 했다. (...) 다행히 막판 협상으로 채무불이행 사태는 피했지만, 피해는 적지 않았다. 시장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특히 스탠더드 앤 푸어스는 미국신용등급을 역사상 처음으로 하향 조정했다.
두 번째는 2015년 3월에 벌어진 또 하나의 전례 없는 사건이다. (...) 이란과의 핵 협정에 반대하고, 정식 조약이 아닌 오바마의 행정협정 결정에 분노한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오랫동안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었던 외교 협상에 끼어들었다. (...)
마지막으로 규범 위반을 보여준 세 번째 사건은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의 메릭 갈런드 대법관 임명을 거부했을 때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연방대법원 공석을 메우기 위한 대통령의 임명이 거부된 것은 재건 시대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가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을 때 테드 크루즈, 존 매케인, 리처드 버를 포함한 많은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앞으로 4년 동안 힐러리의 대법관 임명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연방대법원 대법관 수를 실질적으로 여덟 명으로 줄이겠다고 결의했다. (...) 미국 헌법은 대법관 수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아홉 명의 대법관 체제가 이어져 내려왔다. 1937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맞서기 위해 공화당과 민주당은 힘을 모아 대법원의 독립성을 옹호했다. (...) 이러한 점에서 크루즈의 행동은 147년간 이어져 내려온 규범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러한 전술을 바탕으로 마치 반체제 집단처럼 움직였다. 오바마 임기가 끝나갈 무렵, 민주주의 연성 가드레일은 점차 흔들리고 있었다. (P.208~210)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허물어지는 과정 이면에는 당파적 양극화가 있었다. 비록 시작은 공화당의 급진화였지만, 지금의 양극화는 미국 정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 의회의 인질극, 10년 중반의 선거구 조종,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에 대한 논의 거부는 단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민주당과 공화당은 경쟁 관계를 넘어서 진보 진영과 보수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또한 각 정당의 지지자들은 인종, 종교, 지역은 물론 심지어 “삶의 방식”을 기준으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
정당의 내부적 다양성은 서로 간의 갈등을 완화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은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으로 정점을 이루었던 시민권 운동은 이러한 정당 구도를 깨버렸다. 시민권 운동은 흑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일당 지배를 종식시킴으로써 마침내 남부 지역을 민주화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정당 재편을 장기적으로 가속화했다. 민주당 대통령인 린든 존슨이 받아들였고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반대했던 시민권법은 민주당을 시민권을 지지하는 정당으로, 그리고 공화당을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규정해 버렸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남부 백인 집단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1965년 이후로 시작된 정당 재편과 함께 유권자 집단 역시 이념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거의 한 세기 만에 처음으로 이념이 곧 정당의 정체성이 되었다. 즉, 전반적으로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그리고 민주당은 진보주의를 상징하게 되었다. (...)
정당 지지자 집단의 사회적, 민족적, 문화적 특성이 크게 바뀌면서 정당은 이제 단지 서로 다른 정책적 접근방식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 문화와 가치를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다. (...)
1950년만 해도 미국 전체 인구에서 유색인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4년에 이르러 38퍼센트로 증가했다. 미국 통계국은 2044년이면 유색인종이 미국 인구의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민은 흑인 선거권 부여와 더불어 미국의 정당 체제를 바꾸어놓았다. 이민으로 새롭게 유입된 유권자 집단 중 많은 이들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 민주당이 점차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던 반면, 공화당은 백인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남았다.
또한 공화당은 개신교의 정당이 되었다. 개신교 집단은 특히 1970년대 말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요한 계기는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이었다. (...) 1960년대만 해도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백인 개신교 집단은 서서히 공화당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백인 개신교 집단의 76퍼센트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점차 비종교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교회에 성실히 나가는 백인 개신교 신자들의 비중은 1960년대 50퍼센트에서 2000년대에 3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
미국의 두 정당은 이제 인종과 종교를 기준으로 확연히 분열되었다. 세금이나 정부 지출과 같은 일반적인 정책 사안에 비해, 인종과 종교는 더욱 극단적인 적대감을 낳는 양극화 동인이다. (P.211~216)
규범 파괴가 대부분 공화당에 의해 이뤄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언론의 변화가 공화당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에 비해 당파 성향이 강한 매체에 더 많이 의존한다. (...)
우파 언론의 성장 또한 공화당 선출직 인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폭스 뉴스 평론가들과 라디오 방송의 유명 우파 인사들은 한결같이 “타협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정당 노선에 충실히 따르지 않는 공화당 정치인들을 거칠게 공격했다. (...)
자금이 풍부한 보수주의 이익단체들은 이러한 강경 입장을 더욱 강화했다. (...)
그러나 공화당을 극단주의로 내몬 것은 단지 언론과 외부 이익단체만은 아니다. 사회적, 문화적 변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다양성이 꾸준히 높아졌던 민주당과는 달리 공화당은 문화적 차원에서 오랫동안 동질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개신교 집단은 그냥 일반적인 유권자가 아니다. 그들은 200년 가까이 미국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했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누렸다. 그러나 이제 백인 개신교 집단은 다수의 지위를 잃었고 그 규모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1964년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지위 불안’이라고 하는 개념을 통해서 집단의 사회 지위, 정체성, 소속감이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될 때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성향”이 나타나고, 이는 결국 “과열되고, 상대를 지나치게 의심하고, 과도하게 공격적이고, 극단적이고, 종말론적인” 정치 접근방식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
설문조사 결과는 많은 티파티 공화당 지지자들이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그들이 자라난 ‘진정한’ 미국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미국이 사라지고 있다는 많은 티파티 공화당 지지자들의 인식을 고려할 때 “미국을 되찾자 Take Our Country Back” 혹은 “위대한 미국을 다시 한번 Make America Great Again”과 같은 슬로건이 어떻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현상의 위험성은 민주당 지지자를 진정한 미국인이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써 상호 관용의 규범을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는 사실에 있다.
뉴트 깅리치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양극화된 사회에서 경쟁자를 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쓸모가 있으며, 정치를 전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 많은 걸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그 가드레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 한 세기에 비해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그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P.216~219)
* 티파티(Tea Party)는 2009년경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는 강경 보수주의 운동으로 등장해 공화당 내부를 우경화시켰고, 반워싱턴(anti-establishment) 정서*와 반이민, 반세금, 반정부 개입 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와 이념적 토양은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승리로 이어지는 정치 환경을 형성했다. 트럼프는 티파티가 만들어낸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 강경 보수주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흡수하고 확장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공화당을 사실상 장악했다.
* 반워싱턴 정서는 미국 정치에서 기존 정치 엘리트, 관료제, 정당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의미한다. 여기서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일 뿐 아니라, 기성 정치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 미국의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은 인종 차별을 종식시키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핵심적인 민권법이다.
1964년 시민권법은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차별을 금지하고, 고용과 교육 등에서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이 법은 특히 남부 지역의 분리 정책(예: 흑인과 백인의 학교나 식당 분리)을 철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법 통과 당시에는 남부 출신 상원의원들의 강력한 필리버스터가 있었으나, 결국 이를 돌파하고 제정되었다.
1965년 선거권법은 투표권 행사에서의 인종 차별을 금지한 법으로, 특히 남부에서 흑인의 투표를 방해하던 문해력 시험, 투표세 등의 장벽을 철폐했다. 또한, 연방 정부가 차별 가능성이 있는 주의 선거 제도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법 모두 미국 내 인종 평등과 민주주의 확대에 있어 역사적으로 큰 전환점을 이룬 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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