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9장 민주주의 구하기』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적 장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정치적 규범과 시민의 자세, 특히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회복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은 상대를 적이 아닌 경쟁자로 인식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유혹을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또한, 저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했던 시기는 일부 배제된 집단(흑인, 여성 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이제는 포용적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종적·사회적 포용을 확대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이 장은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도적 개혁보다 정치문화의 변화와 포용의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시민과 지도자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헌법과 문화 속에는 민주주의 붕괴를 막아낼 특별한 장치가 없다. 과거에 미국 사회는 지역적, 당파적 적대감으로 분열되었고, 결국 내전으로 이어진 정치 재앙을 경험했다. 그래도 미국의 헌법 체계는 회복되었고,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새롭게 개발한 규범과 불문율은 한 세기 넘게 정치적 안정성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안정은 인종차별과 남부 지역의 일당 지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가능했다.
미국 사회가 완전히 민주화된 것은 1965년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민주화 과정이 미국 유권자 집단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재편했고, 이러한 변화는 다시 정당정치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재건 시대 이후로 가장 골이 깊어진 양극화 현상은 오늘날 규범 파괴라고 하는 전염병을 창궐시킴으로써 미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은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민주주의에서 역할을 저벼렸다. 닉슨 행정부 이후로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멀어져 있다. 또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다. 대통령이 언론을 공격하고, 상대 후보를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지킬 여력이 없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잠재적 독재자들은 더 많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P.259~261)
우리는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미래에 대해 세 가지 가능한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낙관적인 형태로 민주주의가 신속하게 회복되는 경우다. (...)
둘째, 보다 어두운 전망으로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백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승리를 이어나가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친트럼프 공화당은 대통령과 상원 및 하원, 그리고 주 의회를 장악하고 결국에는 연방대법원까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공화당은 헌법적 강경 태도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과반을 차지하는 백인 선거인단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규모 추방과 이민 제한, 투표 억제, 그리고 엄격한 유권자 신분확인법을 함께 실시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선거인단 재편과 더불어 필리버스터를 비롯하여 상원 소수당을 보호하는 여러 규칙을 없애버릴 것이며, 공화당은 다수의 지위를 통해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다. 이들 방안 모두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실질적인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셋째는 우리의 입장이자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여기서 트럼프 이후 미국이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성문화 되지 않은 정치 관습에서 더 멀어지고, 제도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민주주의의 강성 가드레일마저 사라질 것이다. (P.261~264)
미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종종 당연하게 여기는 두 가지 규범, 즉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특권을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규범은 미국 헌법에 적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규범이 무너질 때 미국 헌법의 견제와 균형은 우리의 기대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민주주의 제도는 공식적인 규칙 이상의 것으로, 법률에 더하여 무엇이 바람직한 행동인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 1세대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위대한 점은 완벽한 제도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설계에 더하여 그 제도가 실질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공통된 믿음과 관습을 치밀하게 구축했다는 사실이다. (...)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적 기반이다. 두 규범은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법의 한계를 넘어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치인들에게 말해준다. 우리는 이러한 절차적 기반을 미국적 신조의 핵심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출 것이다. (...)
2016년 선거 이후로 진보 진영의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민주당도 “공화당처럼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른다면 공화당이 규칙을 어기면 민주당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
트럼프 당선 직후에 일부 진보주의 인사는 그의 취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일부 민주당 인사는 조기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
그러나 우리 두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당이 ‘공화당처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첫째, 외국 사례들은 이러한 대응 전략이 오히려 전제주의가 등장할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전면적인 전략은 중도 진영을 위협함으로써 야당의 지지도를 떨어뜨린다. 반면 여당 내 반대파조차 야당의 강경한 태도에 맞서 단결하게 함으로써 친정부 세력을 집결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야당이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 때 정부는 이들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 정당성을 확보한다. (...)
설령 민주당이 강경 전술을 통해 트럼프를 무력화하거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그러한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그 이유는 다음 정권이 가드레일이 사라진 민주주의를 물려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트럼프 행정부의 전제주의 행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저항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제도를 기반으로 트럼프가 실패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국 민주주의 토양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는 저항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하지만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 노선이 비슷한 집단 간의 연합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연합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가장 효과적인 형태는 서로 이질적인, 그리고 여러 사안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집단이 하나로 뭉치는 연합이다. 이러한 연합은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
이들은 위법 행위를 일삼는 불안정한 행정부에 맞서야 한다는 공통 명분을 갖고 있다. (...)
이와 같은 연합을 통해 우리는 상호 관용 규범을 구축하고 강화할 수 있다. 정치인이 일부 사안에 경쟁자와 뜻을 같이할 때 그들은 상대를 위험한 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P.268~277)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는 두 가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분열을 인정하면서 엘리트 집단 간의 협력과 타협을 도모하는 것이다. (...)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공화당은 전면적인 재건까지는 아니더라도 개혁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공화당의 기존 체제를 회복해야 한다. 이 말은 네 가지 핵심 영역에서 즉 재정, 풀뿌리 조직, 메시지 전달, 후보 공천에서 당 지도부가 권한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도부가 후원 단체와 우파 언론에서 자유로워질 때 공화당은 비로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그 개혁은 주요한 변화를 포함한다. 우선 극단주의자를 주류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지지자 집단의 구성을 다각화함으로써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백인 개신교 집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그리고 백인 민족주의에 호소하지 않고서도, 혹은 공화당 애리조나 상원 의원 제프 플레이크가 언급한 “포퓰리즘, 민족주의, 선동에 대한 도취”에서 벗어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
비록 민주당은 심각한 양극화의 주범은 아니지만 양극화 해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부 민주당 인사는 백인 노동자 계층과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민주당이 정치 지평을 다시 넓힐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 미국 사회의 뚜렷한 당파적 적대감은 최근 민족 다양성의 증가는 물론 경기 침체, 하위 계층의 임금 정체, 그리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 불평등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물이다. (...)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은 민족을 떠나서 오랫동안 소외받았던 하위 계층의 생활고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
미국 사회정책은 소득이나 생활수준이 특정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자산 조사 방식에 크게 의존해왔다. (...)
게다가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민족과 빈곤이 상당 부분 중첩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 정책은 특정 인종을 하위 계층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복지 정책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일반적으로 인종차별과 관련된 표현들을 사용한다. 가령 로널드 레이건이 언급한 ‘복지 여왕 welfare queens’이나 영벅스‘young bucks’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복지’는 경멸적인 표현이 되었다. 그것은 복지 수혜자들이 그러한 혜택을 받을 만한 정당한 자격이 없다는 사회 인식 때문이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엄격한 자산 조사를 기반으로 한 제한적인 복지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모델을 추구한다. 이러한 방식의 복지 정책은 정치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 사회보장제도나 메디케어 Medicare처럼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혜택을 주는 복지 정책은 사회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미국의 다양한 유권자 집단을 연결하는 다리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인종 갈등에 따른 역풍은 일으키지 않으면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대표 사례로 포괄적 의료보험제도를 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사례로 최저임금 상승이나 보편적 기본소득이 있다. (...)
또 다른 사례로는 ‘가족 정책’이 있다. 가족 정책이란 부모에게 유급 휴가를 주고, 맞벌이 부부에게 탁아소 이용을 지원하고, 혹은 대다수 유아를 대상으로 어린이집 교육을 제공하는 정부 프로그램을 말한다. (...)
마지막 방안으로 민주당은 포괄적인 노동시장 정책도 고려할 수 있다. 여기에는 광범위한 직업훈련, 근로자를 교육하고 채용하는 기업에 대한 임금 보조금, 고등학교나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무 경험 프로그램, 해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통비 지원 등이 있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 적대감과 양극화를 자극하는 경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정치를 재편하게 될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연합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P.277~287)
미국 민주주의 미래는 미국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어떤 정당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끝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고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
미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이제 미국 국민은 지금껏 그들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던 기본 규범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규범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규범이 포괄하는 범주를 넓혀가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 규범의 핵심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역사의 많은 시간 동안 인종차별과 함께했고, 또한 그것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다. 이제 그 규범이 인종 평등과 전례 없는 민족 다양성 시대에서도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다민족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없었다. 그것은 이제 미국 사회의 도전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동시에 기회로 남았다. 미국 국민이 그 과제를 완수한다면 미국은 역사상 진정으로 특별한 나라가 될 것이다. (P.288~289)
에필로그
10회에 걸쳐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에서는 버트런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1950년에 출간한 철학 에세이 모음집으로, 현대 사회가 이성을 잃고 감정과 선동에 휘둘리는 현실을 비판하며,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입니다.
꼭 함께 읽고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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