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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

by 박카스

『8장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는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규범을 무시하고, 상대 정당을 적으로 규정하며,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묘사하는 등 권위주의적 리더의 특징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법치주의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경시하고,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 제도를 이용하려 했다. 특히, 공화당 내부의 묵인과 침묵은 그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는 민주주의가 정치 문화와 비공식적 규범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저자들은 트럼프의 등장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내에 누적된 구조적 약점과 정당 간의 분열이 만든 결과임을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유지에는 제도뿐 아니라,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비공식적 규범이 필수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판에 해당하는 법 집행, 정보, 윤리, 사법기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FBI, CIA,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등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불러 개인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명백하게도 그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러시아 연루 의록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정부 기관에 불이익을 주거나 인사 교체를 단행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트럼프는 행정부에 대한 보호 요청을 묵살하고 러시아 수사*를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마자 코미 국장을 해고했다. FBI 82년 역사상 10년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장을 해고한 사례는 그전까지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적인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법부를 공격한 것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까지 공격했다. (...)


2017년 8월 트럼프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전 애리조나 보안관 조 아르파이오를 사면함으로써 사법부를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 “대통령이 이러한 방식으로 측근들을 사면한다면 사법부는 행정부의 월권으로부터 헌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트럼프 행정부는 다음 수순으로 공직자윤리국(OGE)에 압박을 가했다. (...) 이렇게 백악관의 협박과 외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쇼브는 기자인 리안 리자의 표현대로 “망가진” 공직자 윤리국을 뒤로하고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


트럼프는 법무부와 FBI를 통해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하여 여러 민주당 인사를 조사할 것이라는 경고를 공공연하게 했다. 그리고 2017년 말 법무부는 실제로 힐러리를 수사하기 위해 특검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해임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심판을 매수하지 못했다. 그는 코미의 공석에 충성스러운 측근 인사를 앉히지 못했다. 그 주된 이유는 상원 내 주요 공화당 의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P.224~228)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까지 실행에 옮긴 가장 비민주적인 처사는 공정 선거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설립한 일일 것이다. (...)


그 핵심은 저임금 소수 민족 유권자들의 투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난한 소수민족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들 유권자 집단의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곧 운동장을 공화당에 유리하게 기울인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 유권자 신분확인법*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유권자가 투표장에서 운전면허증이나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유권자 신분확인법의 입법 근거는 미국에서 부정선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짓 주장이었다. 널리 인정받은 연구들 대부분 미국의 부정선거 사례는 대단히 드물다고 말하고 있다. (P.231~232)


트럼프의 남은 임기 동안 미국 민주주의의 운명은 여러 요인에 달렸다. 첫째, 공화당 지도부의 태도다. 민주주의 제도의 존속은 그들 자신의 대통령에게 맞서면서까지 이를 수호하려는 여당의 의지에 달렸다. (...)


민주주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여론을 꼽을 수 있다. 잠재적 독재자가 군사 쿠데타나 대규모 폭력 사태를 일으킬 수 없다면, 충성을 바칠 사람을 모으고 비판자를 처단하기 위해 또 다른 수단을 찾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론의 지지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


이제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트럼프의 위험성에 영향을 미치는 마지막 요인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전쟁이나 대규모 테러와 같은 안보 위기는 정치 게임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안보 위기는 언제나 국민의 지지율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 (...)


트럼프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 정적들을 공격하고, 오늘날 미국 국민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를 크게 제한할 것이다. 우리 두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시나리오는 미국 민주주의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험에 해당한다. (P.237~243)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 제도를 직접적으로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의 규범 파괴는 분명히 그러한 일을 했다. (...) 공화당은 이러한 규범 파괴 행위에 대해 오히려 그를 대선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보상을 안겨다 주었다. (...)


사회적 가치는 세월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행동 규범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만 트럼프 임기 1년 동안 이루어진 규범 파괴는 전임자들의 경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


친족을 공직에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역시 오랜 불문율에 해당한다. 현재 미국의 법은 대통령이 자신의 친족을 내각이나 정부 기관 요직에 임명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트럼프가 자신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고위급 자문으로 임명한 것은 엄밀히 말해서 합법이다. 그럼에도 이는 명백하게 법의 정신을 훼손한 행동이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도 있다. 대통령은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기업가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면 취임 전에 비즈니스 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법률은 뜻밖에도 대단히 허술하다. 대통령 당선자가 회사의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할 법적인 의무는 없다. 다만 개인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만 관여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에도 혹시라도 있을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취임 전에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전례 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경영권을 아들들에게 물려주었다. 이는 공직자 윤리 차원에서 대단히 경솔한 행동이었다. (...)


트럼프는 또한 선거 결과의 정당성에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핵심 규범을 파괴했다. (...) 부정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짓밟는다.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


트럼프는 또한 정치 예의라고 하는 기본적인 규범도 저버렸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힐러리를 공격함으로써 선거 후 화해의 규범을 깨트렸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이 전임자를 공격하지 않는 불문율도 어겼다. (...)


그래도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은 규범 파괴는 아마도 그의 거짓말일 것이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 정치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 정치인들은 이러한 규범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거나 까다로운 질문을 받을 때 논의의 프레임을 바꾸고 혹은 부분적인 대답만 함으로써 어떻게든 거짓말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


트럼프는 자신이 했던 거짓말에 대해 많은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점차 개인의 당파적 입장을 기준으로 정보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정치와 언론 환경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임기 1년 동안 그를 거짓말쟁이로 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거짓말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에게는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선출된 지도자의 행동에 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다면 미국 시민은 선거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 신뢰할 만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위협받게 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한다(당연한 사실 아니겠는가?). 국민이 선출된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을 때 대의 민주주의 근간이 허물어진다. 그들이 신택 한 지도자를 믿지 못할 때 선거제도의 가치는 사라진다.


트럼프가 언론에 대한 존경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규범을 저버리면서 신뢰의 상실은 더욱 심각해졌다. 언론의 독립은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는 방어막이다. 어떤 민주주의도 언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 미국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언론을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으로 인정했고, 정치 시스템 안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위상을 존중했다. (...)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트럼프의 공식적인 모욕은 미국 현대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언론을 “지구상에서 가장 가식적인 인간의 집단”이라며 싸잡아 매도했다. (...)


지구상에서 트럼프와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으려면 아마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나 니콜라스 마두로, 혹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


트럼프 행정부는 또한 기자회견장에 일부 기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식으로도 규범을 파괴했다. (P.243~251)


예의, 언론에 대한 존경, ‘거짓말하지 않기’와 같은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비록 트럼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일탈의 속도는 트럼프 임기에 가속화되고 있다.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사회는 정치적 일탈을 정의하는 기준을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의 일상적인 모욕과 괴롭힘, 거짓말, 속임수는 이러한 행동을 일반적인 행동의 범주로 넣어버렸다. (...)


대통령의 파괴 행동으로 정치적 대가를 치르기 두려워하는 공화당 인사들은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기준을 끊임없이 옮기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규범이 무너질 때 용인 가능한 정치 행동 범위는 넓어지고,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갈 주장과 행동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미국 정치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동이 이제 고려해 볼 만한 전술이 되고 있다. 물론 트럼프 자신이 헌법적 민주주의라는 강성 가드레일을 파괴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대통령이 언젠가 그러한 일을 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P.252~255)




*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가 트럼프를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2017년 1월, 미국 정보기관인 CIA, FBI, NSA는 “러시아 정부가 푸틴의 지시에 따라 트럼프 당선에 유리하도록 선거에 개입했다”고 "높은 확신(high confidence)"을 표명했다.


2020년 상원 정보위원회의 초당적 보고서도 러시아의 이러한 개입이 "트럼프를 돕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재확인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로버트 뮬러 특검 조사에서는 러시아의 조직적인 개입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트럼프 캠프가 적극적으로 공모했다는 증거는 불충분하며, 특검은 트럼프를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 미국의 유권자 신분확인법은 2005년 인디애나주에서 처음으로 엄격한 형태로 도입되었으며, 이후 여러 주로 확산되었다. 이 법의 도입 이유는 공식적으로는 선거 부정, 특히 부정 투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권자 사기가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아, 법 제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계층, 특히 저소득층, 노년층, 소수 인종, 장애인 등의 투표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정부 발급 사진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거나 발급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권자 신분확인법은 투표권을 제한하고, 민주주의 참여의 형평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이 법은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많다. 대체로 공화당 주도 하에 추진되는 반면, 민주당은 이를 유권자 억압 수단으로 간주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법이 특정 정당 지지층의 투표를 어렵게 만들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2025년 현재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 형태는 다르지만 유권자 신분확인법을 시행하고 있다. 일부 주는 사진이 부착된 정부 발급 신분증을 반드시 요구하는 엄격한 방식을 채택(조지아, 텍사스, 위스콘신 등)하고 있고, 다른 주들은 비사진 신분증이나 기타 대체 수단을 허용하는 보다 완화된 방식(캘리포니아, 뉴욕 등)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유권자 신분확인법은 미국 내에서 여전히 큰 논쟁거리이며, 민주주의와 투표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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