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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Dec 06. 2018

상장

"If somene comes to you for needed dental work and is too poor to pay for it, here is a gift to help you perform the work.   어느 누가 차과 치료가 필요해서 찾아왔는데,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면 여기 이 돈을 사용해 주기 바랍니다.    John S.


오랜 인연의 미국 할아버지가 주고 간 편지이다.  이 할아버지... 처음 환자로 만날 때부터 본인이 원하는 치료가 딱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분께 정말로 도움이 될 몇 방법을 추천하기도 하고 치료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분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 끝을 보곤 하였다.  하지만 그분이 요구하는 치료방법은 결코 무리수가 아니었고 충분히 전문가의 입장에서도 이해가 가는 것이었다. 치료비는 처음부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당신은 최소한의 치료만 필요한 것이 그분의 입장이었다.  확실히 느끼고 난 후부터는 그분의 입장을 충분히 존중했고, 서로가 충분히 만족을 느끼며 지금껏 환자/의사의 관계를 넘어 존경하는 어르신으로 잘 지내고 있다. 


간단한 치료를 몇 번 했는데 딱히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의 돈을 요구를 하지 않으니, 이렇게 편지 한 통을 주고 가셨다.  



사실 이 편지를 받은 날 오전에 6살짜리 Native Indian 꼬마의 치료를 끝난 날이었다. 몇 달 전 포카혼타스를 꼭 빼닮은 젊은 인디언 엄마가 그 첫째 아들을 오프스로 데리고 왔었다. 아직 다 여물지도 않은 어금니를 빼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엄마의 표정이 너무도 단호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그 결정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아이도 완전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다. 아프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잠시 진료를 멈추고 친화력 완전 최고인 우리 수간호사를 보내 그 사정을 알아보니 뜻밖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이 엄마는 아이가 벌써 3명이 있는데, 캐나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거의 탈출하다시피 나와 지금의 우리 동네에 정착한 가정이었다.  이 동네 어느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가난과 마약에 찌든 고향 생활에서 탈출하다시피 이 동네로 왔다고 한다. 어색하고 빈손으로 모든 것이 두려운데, 첫째 아이가 치통이 심해 어떻게 어떻게 우리 오피스로 온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따로 그 엄마를 상담실로 불러 이야기를 했다.  문제가 있는 치아는 젖니도 아니고 이제 겨우 잇몸을 뚫고 나온 영구치니까 이건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우리가 끝까지 책임을 져 줄테니까 어떻게든 살리는 방향으로 가자.  거의 통보식으로 말을 전하고 우린 바로 Phoenix (그 아이의 이름이다)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직 뿌리가 다 아물지 않아 몇 달의 시간을 두고 치료를 했다.  마무리 지을 무렵 그렇게 무뚝뚝한 아이가 웃기고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고 했다. 머리도 쓰다듬고 농담도 주고받을 사이가 되었다. 더 비장하고 무뚝뚝한 그 엄마도 이젠 웃기도 하고, 말도 다정하게 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 치료를 끝낸 날,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이 미국 할아버지가 와서 이 편지를 건네 준 것이다.  뭐랄까.. 수고했어... 라면서 손에 쥐어 주는 상장 같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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