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에서 장동건으로
아침 일찍 "황씨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어눌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이 들어서 인지 스테프가 날 바꿔준다. "원장님.. 오늘 일이 없어 집에 있으니까 병원에 가도 되겠습니까?"
황씨아저씨는 지붕, 사이딩 보조를 하시는 그야말로 '노가다'로 매일을 사시는 분이시다. 얼마 전 우리 집을 수리하시며 인연이 되었다. 진찰을 해보니... 상태가 심상치 않다. 치아가 몇 개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그 남은 치아로 음식을 드시느라 아래턱이 완전히 삐뚤어져 있었다. 내가 남은 치아를 다 정리하고 틀리를 만들쟈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사실 그분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 후천적으로 비틀어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건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원래의 얼굴을 찾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동의를 얻고 남은 몇 개를 전부 정리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다시 오셨는데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이제 얼굴이 제대로 돌아온 것 같다고.." 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본인도 얼굴이 정상이 아니셨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생각했다. 몇 년 동안 근육 활동이 비정상적이었던 지라 그런 컨디션에서 틀리를 만들었다 해도 나중엔 안면근육의 움직임이 틀려질 것이 분명해다. 무슨 말이냐면, 몇 년 동안 아래턱의 활동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치아를 사용하느라 비대칭이 되어 버렸는데, 거기에 맞춰 틀리를 맞추게 되면 비교적 여유를 찾은 근육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면 새로이 만든 틀리는 점점 맞지 않게 되어 결국은 이 틀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설명을 드리니 황씨아저씨가 어렵지 않게 이해를 하신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근육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 치료를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규칙적인 스케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하루하루 노동의 무게가 큰지라. 그래서 이야기했다. 무조건 비가 오면 전화하시라고.. 스태프들은 미리 약속 없이 방문하시는 환자들을 끔찍이 싫어하지만 내가 설득을 하고 이 분은 전화하면 언제든 오시게 약속을 만들어 드리라고. 우리 스태프들도 황씨 아저씨의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이분이 전화를 하면 무조건 일 순위로 오시게 했다.
며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세워 놓은 치료 스케줄이 자꾸 늦어진다. 그래도 일이 계속 있으신 것 같아 맘은 좋다.
처음 뵈었을 때 그 일그러진 얼굴이 올 때마다 편해 보이신다. 지금은 치아가 전혀 없으니 하회탈 같으신데 언젠가 장동건처럼 변하실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비가 자꾸 와서 황씨아저씨를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