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가족을 뛰어넘지 못하면
전혀 안 보이는 성장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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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황무지에 수십 년간 혼자서 나무를 심는 노인의 일을 기록하는 나, 그 " 나"의 나래이션 중,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단이 있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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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타산이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자애로운 혹은 신뢰와 애정으로 화답하는 부모, 형제, 일가친척 ㅡ 이러한 가족이 있어서 아이가 세상을 안심하고 좋아할 수 있다면, 그래서 훗날 또 그러한 가족을 만들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베풀 수 있다면, 이 가족주의는 폄훼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
보통 말하는 가족주의란 자기본위가 그나마 좀 넓혀졌다는 것이 고작 부부와 내 자녀들만으로 담을 세운 그런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강박에 가까운 "주의"를 가리킨다. 즉, 밖으로 열린 게 아니라 안으로 닫힌 관념이자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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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스스로 구획한 담장 안 만큼은 소위 "스위트홈"을 일구어 내었는가.
그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켜야할 것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정의와 공정에서 유래한 게 아니고, 두려움 혹은 소심함 등에서 만들어진 감정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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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부모.
부모로서 자녀에게 베푼 부모의 노고와 은혜는 실로 위대하다.
한편, 부모 노릇한다고 섣부른 가족주의의 항해를 하노라 지은 과실은 실로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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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자신이 삶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했던 정글의 법칙, 한때 자신이 이익을 취했다면 이제 착취를 당한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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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할 수 있을 만큼의 깊이도 만들지 못했으면서...
물론,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가족에게처럼 헌신을 다할 순 없다. 그러나 하나 같이 소중한 존재다. 그 일점에서
후세를 대신해 어른들에게 물어주고 싶다.
이제까지 살아 가족 모두를 평등하게 존중했느냐고, 또, 인권에 관한 한, 가족이 아닌 사람까지 평등하게 존중했냐고 . 이제도 절대 침해하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느냐고.
여기에 공정의식이 무너진 상태라면, 어쩌면 그로 인해 그 인격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인지도...
더 엄하게 말해, 자신 자신이 만든 공과(功过, 잘한것과 못한것)의 셈법으로 그냥 제로 지점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