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라디오

깻잎꽃

by 새벽종 종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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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인데 우리생활에 지금의 TV나 스마트 이상으로 라디오가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누군가가 빚담보로 맡겨둔 작은 일본제라디오에 상당히 만족해하셨다. 틀림없이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꾸어간 액수가 라디오보다 몇 배로 컸을 것이지만,

아예 떼어먹힐 수도 있는데 이나마 남았으니 어찌 위안이 아닐손가, ㅡ 소심한 내 아버지의 결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산보다 일제, 미제 등의 외국산 제품을 좋아하던 시절이었으니, 젊었던 아버지로선 일생에 처음 갖게 된 이 전자제품에 이유를 막론한 기쁨도 없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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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힌 상자에서 손바닥 만한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나왔다. 새삼 신기하여 주파수를 맞추는데 이상하게 잡음이 낀다.

이 방송국에서 저 방송국으로 다이얼이 돌려지는 동안 거쳐야 하는 크고 작은 잡음들, 의미로 닿지도 못하지만 시끄럽다.


어딘가에서 던져진 소리, 그것들 중 필요한 소리만 내 귀에 닿게 고정시키고 싶은 다이얼 조작 간단할 것 같았는데 끝내 쉽지 않다.

여전히 남는 기대.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 같다.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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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꾸며낸 대로 속아넘겼다고 그 자신감에 오늘 또 한 단계 레벨을 높이고자 생명을 소모하는 사람.

모래밭처럼 널려 있다.

그 모래밭에서 사금沙金을 걸러내자는 사람처럼 나의 꿈은 밤새 사락사락 사라락.


트랜지스터는 다시 상자로 던져지고

낮에 빛났던 모래들은 다시 강하구로 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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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꽃이 희고 자잘한 꽃이 깻잎줄기에 맺힌 걸 보았다.

한 대궁 꺾을 때 녹색의 진한 향이 마지막까지 깻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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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의 어선 삼천 척이 함대를 이루어 갈라파고스라던가 먼 해양에 가서 오징어잡이를 한다고. 그런 식으로 원양어업을 하면서 어족의 씨를 말릴까봐 환경생태운동가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그렇잖아도 그나라 영세 어선들은 그물코가 작다는 둥 예전에 들은 바 있다.


아아, 오징어.

오징어라고 하니 갑자기 군침이 돈다. 잇몸이 상해서 2년도 넘게 참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금식의 어종이 되었지만, 대 함대로 연합해서까지 고기잡이를 떠나야했던 어부 선장들의 비장함은 또 뭘까? 이 의문에 가슴이 터억, 하고 막힌다.


더는 헤아릴 수 없으매 뇌리 속에 저장된 다른 장면으로 이동.

수족관의 오징어, 내 눈으로 지켜봤던 ㅡ 한 마리의 오징어가 다른 한 마리에게 다리를 걸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사이가 좋아서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다리를 건 놈이 점점 지쳐 죽어갈 것 같으니까 죽기살기로 팔팔하게 유영하는 다른 동료를 포착하여 그 다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였다.


자신의 고통으로 타자를 옭아매는 오징어의 맘까지 다이얼 너머에 있다. 소리들의 파장은 끝이 없다. 주파수를 맞추는 일은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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