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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아껴 아껴 먹는 맛.
언젠가부터 곶감이 된 돈이었다.
아마 퇴직금으로 생활하게 되고부터였지 싶다. 딴 계획을 세우고 직장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퇴직을 하자마자 바로 퇴직금에 의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한 시간이 아주 길어질 줄은 더더욱 몰랐다. 덕분에 알게 된 건 꼬치에서 곶감 하나씩 빼먹을 때의 쫄깃쫄깃한 긴장감이었다.
지출에서 지출로만 계속 누적되는 잔고정리는 심장을 오그라들게 한다. 그렇게 오마조마할 때 문득 눈먼 돈이 얼마간 들어와 새로 꿰어지기라도 하면 이제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바꾼, 부벼대고 싶어지는 삶의 다정함.
낭비 자체를 모르는 생활 기조, 소소한 데서 감사가 우러나오는 겸허, ㅡ 가난을 전제해야 맛볼 수 있는 귀하게 담백한 맛이다. 겨울 햇살 아래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 끝을 따서 오도독 한 입 깨물면 온 몸에 가득해지는 청신하고 시린 느낌 같은.
하지만 지금은 곶감도 몇 개 없다. 길게 비어진 대나무 꼬치가 더 이상 아슬아슬하지도 않다. 오래 면역이 된 탓이다.
이제야 한 줄기 소망이 고인다. 곶감에서 샘물로 갈아타야 하는 이때, 제발 환승을 잘 해내야 할 텐데.
연초를 기회로 희망을 품자 눈앞은 벽이 막힌 골목길이다. 당황스럽다. 며칠이나 감기를 핑계로 몇 시간이고 누워있었다. 턱 없이 큰 꿈이나 꾼 것처럼 잔뜩 쫄아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