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의사 선생님
번데기와 빠진(巴金) 선생의 추억
병은 소문낼수록 좋다던가.
어지간한 병에는 병원 갈 생각을 안 하고, 버틸만하면 약도 사기 싫어하는, 그러다 병이 나으면 돈 굳었다고 좋아하는 내가, 올 들어 두 번째로 한약을 지으러 갔다.
나의 지인이 운영히는 가게에서 기념으로 가져온 나무젓가락8월 말에 한 차례
엊그제 한 차례.
왜 한약이냐고 물으면 딱 한 군데 한 증상이 아니고 여기저기가 아프니 양의를 찾자면 그 증세의 분류부터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러느니 한약이 답일 것 같아서였다.
굳이 양의와 한의를 구별했다기보다, 내가 천성이 복잡한 걸 싫어하는 까닭이다.
8월에 갔던 곳은 안과를 찾다가 한의원이 보이길레 들어가 진료한 곳. 젊고 건장한 한의사에게, 여름인데도 으스스 한기를 느끼는, 옅은 감기를 달고 사는 듯한 조심스러운 내 신체상태를 설명하니,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재로 약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약을 먹으니 정말 한기를 안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증세인가? 다만 28,9도의 기온이 5,6도로 떨어진 겨울이라 심해진 건가.
감기라고 넘기다 보니 머리통이 찬바람에 얼얼하고 온몸이 얼음판에 두세 번은 넘어진 것처럼 뼈들이 동통(冻痛)을 호소한다. 오늘 여긴가 하면 내일은 더 많이 모레는 진땀까지... 방문 밖의 찬바람까지 두렵고 싫은 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낫고 싶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물어 건강원을 찾아갔다. 그곳은, 상주하는 한의사는 아니어도, 약을 짓기 전에 한의사가 와서 진맥을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병증을 참고 거기까지 간 나는 한 마디로 표현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는 의사와의 마음 교류가 필요했을 수 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의 고통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안심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달려와 급하게 의자에 앉는 의사와 그런 식의 진료 환경에 실망하는 나. 거기다 나는, 그가 진맥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것보다, (예방의학 차원에서 한가하게 보약 지으러 간 게 아니고 아픈 게 불편해서 간 나였던지라) 내 현재의 병증을 설명하는 일이 급하게 여겨진 환자로서의 초조감이 앞서고 있었으니... 적절한 교류가 이루어질 기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목적한 대로 약을 짓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경동시장길을 걸었다.
모처럼 경동시장인데, 뭐라도 사가야 하지 않을까ㅡ주부의 의욕은 피로감에 눌려 발휘를 못하고, 그래도 하나쯤 가벼운 거라면 괜찮지, 내심 귀찮아하는 맘과 타협하며 겨우 사왔다는 게 번데기였다.
잘 사온 것 같아. 나한테 알맞은 영양간식이잖아.
봉지에서 한 줌 덜어내어 삶으며, 스스로 칭찬을 하다가 중국 작가 빠진의 수필 한 편이 생각났다.
빠진이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다.
어머니가 뽕잎을 따 먹이며 누에를 키워 나중에 고치에서 실을 내는 과정을 본 일인데, 재밌는 것은 그 누에치기의 발단이 번데기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빠진 작가에게 큰형이 있는데, 폐가 약한 큰형의 건강을 걱정한 어머니가 어디서 들은 바, 번데기를 많이 먹이면 좋아질 거라고. 그래서 생각 끝에 직접 누에를 키워서 누에고치 속의 번데기를 얻게 되면, 그것으로 아들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출처 빠진 수필집"추억(忆)". 아마 당시 공업화가 되기 전이라 번데기를 자급자족해야 했던 모양. 빠진은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 백수(百壽)를 누린 작가다.)
모처럼 제기동까지 다녀온 게 힘들었는지 다음날은 혼곤하여서 천하의 '밥순이'가 끼니도 거르고 비질거리는데...전화 한 통.
전화를 걸어온 지인을 통해 족집게 같은 신기한 한의사 선생님에 대해서 얘기를 듣게 된다.
어디 아프다고 증세도 말하지 않는데, 아픈 부위는 물론 병의 근본 원인까지 다 짚어내더라고. 이 분 무당이야 뭐야, 속으로 놀라니까 그 맘을 어찌 알았는지 나 무당 아니고, 전문의야.라고 바로 대답해 주더라고.
요즘 세상에 드문 분이네요.
감탄을 하면서,
진즉 알았으면 좋았을 걸, 이젠 돌아가시고 안 계실 거 아녜요?
아니에요. 아직도 진찰하고 계세요.
자신은 30 년째 단골이라고 했다.
아, 그럼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아직도 우리 한의업계에 진맥의 명인들이 있긴 있나 보구나.
옛이야기 속에는 전설적인 명의가 있다지만, 전통 동양의학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요즘은 손으로 진맥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의사가 거의 없다고. 있어도 노령 의사 중에 한둘 남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드문 존재를 나는 청두의 중의병원에서 직접 만난 적 있다. 그에겐 다른 일체 기구가 필요 없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정보가 없어 소문으로조차도 들은 적 없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한 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역시 병은 소문내고 볼 일이다.
아, 참.
내게 전화해 준 그 지인이 처음 이 명의를 찾아가 진찰 받았을 때ㅡ당시 지인은 어깨 한쪽이 아파 1년 정도를 한 팔만 썼다고 한다.ㅡ명의가 내려준
첫 처방이, 밖에 나가 애인을 사귀든지 남편을 당장 불러오든지 둘 중 하나를 하라.ㅡ였다고.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