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먼 나라 다리 위에서

by 새벽종 종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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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는 어딘지 꿈속의 도시 같다.

더구나 그 도시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 그 위의 다리들, 그 중 눈 아홉 개란 이름의 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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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내게 들어와 합체하고,

나 그 여자 대신 감상에 젖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아홉 개의 눈이 있는 다리를 건너 다녔다.


저만치서 여자가 걸어온다고

어쩌면 환각일 터인데

나와 반대쪽에서 걸어오니 이제 곧 나와 마주치는 형국이라고, 흐릿하나마 내겐 분명한 느낌이었던 형체. 유연한 동작으로 여자의 걸음은 내 발등 위에서 아무 무게도 없이 멈추었다.

내안으로 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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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눈이 아홉 개라고요?

지금도 아홉 개 눈이 달렸나요?


이름은 천년 전과 같은데, 이제 아홉 개 눈은 없다고 했다.

아마 돌을 쌓아 다리의 중심을 잡는 한편, 강물 또한 막힘 없이 흘러야 하니까, 아래로 '아ㅡ치형'을 연속 아홉 개 만들고, 그것을 '눈眼'으로 보아서 그 수가 아홉이라 했던 것이리라.


바로 그 다리 위에서였다. 밤의 어둠 속, 투명도가 49퍼센트쯤인 환영을 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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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라면, 가능하지. 더구나 그 다리 위에서라면, 여인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어쩌면 귀신의 일이라도 실현 가능할 거야.


나중에 내게 그런 확신을 심어 준 것, 기이한 뉴스.

ㅡ여자 하나가 힘 좋게 남자 하나를 눕히더니

일을 다 치르고 유유히 가 버렸다는.


밤의 그 다리 위에서,

생생하게, 그러나 어안이 벙벙하게.

말도 안 되는 풍기문란 사건임에도, 지나치게 당당했던 여자의 동작에, 다리 위 허공 중에 짧게나마 모종의 혼돈이 용납되었던 것일까, 경찰도 누구도 그 뒤를 추궁하지 않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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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물러서고 있었다.

괜찮다는데 기어코 다리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준다는 K.


조금도 가슴이 두근대지 않아.

사 계절이 다 지나기 전에, 자신이 푸르고 싱싱한 거목에서 시들시들 볼품없는 풀잎으로 말라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K, 내 보폭을 맞추며 옆에서 걷고 있었다. 서로 나누는 말도 없이.


그런데 문득 내 등 뒤로 여자가 빠져나갔다. ㅡ혹은, 그렇다고 확연히 감지된 순간이었다.

아홉개 눈이라는 이름의 다리 한 가운데쯤의 지점에서였다.


분리되는 순간에도 나는 걷고 있었으니, 나와 그녀는 다리의 양극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뒤돌아 보지 않아도 걸어가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밤의 나는.


생각해보니 그녀가 걸어와 내 몸에 겹쳐지며 합체를 이룬 때에도, 내 옆에 K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다. 그때도 다리 중간쯤이었고....

아아 너무나 같은 조건.


K의 여자일까, 그녀는?

몰.라.

실체 없이도 실감이 강했던 실루엣의 그녀.

그러기에 의문도 답도 흐릿하니 담담하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더 이상 K곁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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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가 1억도 넘는 고급 자가용을 1년도 넘게 호텔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주가 있다.

뉴스의 맥락은, 차주는 술을 먹고 친구가 귀가시켜 준 뒤로, 자신의 차를 찾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업에 바빠 주차한 사실뿐만 아니라 차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고 전한다.


해외토픽. 다 듣고 보니, 차주는 바로 그 도시의 여자였다.


그 도시라면, 그곳 여인이라면, 다 있을 수 있는 일 같아...


이런 맥락 없는 이해심을 설명할 도리 없이, 내 뇌리 속 그 도시엔 언제나 1,2할쯤의 몽환이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