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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감자 Feb 25. 2022

반품 불가

가장의 무게를 아내에게 가볍게 토스!  /  2


흥미진진한 백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나에 대한 변명을 해야지 속이 풀리겠다.


내가 자발적 백수가 된 이유는 그동안의 고된 노동의 결과로써, 몸과 마음의 이상신호를 감지하고 더 이상의 일은 안 되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 대책도 없이 다 때려치우면 어떡하냐?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심신 미약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해서는 말이 아닐 것이다. 내 얘기 좀 들어보면 그래 너 좀 쉬어라.라는 마음이 분명히 들 거다.



환절기 때마다 걸리는 감기 이외에는 딱히 아픈 적이 별로 없는 나였는데 최근에는 아픈 데가 참 많았다. 이미 3년 정도가 훌쩍 지났으니 최근이라고 하기엔 긴 편인가?


3년 전, 부비동염.

고상한 말로 부비동염이지만 축농증이다. 비염으로 늘 고생하긴 했었는데 코로나 발생하기 전 해의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때문인지  축농증으로 인한 두통으로 수술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하지만 아직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두통이 수반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두통은 스트레스와도 연관이 있으니 스트레스받지 말라 하셨다.


2년 전, 피부병.

갑자기 손가락, 귀, 배 등이 가려워지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되었다. 수많은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원인은 찾기 힘들었고 약을 아무리 먹고 발라도 낫지를 않는다. 새벽에 문득 깨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온몸을 긁고 있는 데 이건 정말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다. 반년 정도를 고생하다 우연히 엄마가 인터넷에서 사준 오가닉 로션이 피부에 잘 맞았는지 거짓말처럼 나아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에는 아직도 가려움이 올라오지만 이때에도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가 병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조심하라 하셨다.


2년 전,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병증.

이름도 거창한 이 병은 망막에 물이 차서 시야의 한 부분이 노랗고 흐리게 보이는 병인데, 피부과를 여러 군데 다니면서 스테로이드 과다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해 발병했다. 다른 병들도 겁이 났지만, 눈은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 여기서도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니 맘 편히 가지라 하셨다.


작년, 고혈압.

손이 저리고 뒷 목이 불편하는 등의 이상한 증상들이 느껴져 병원을 가보니 최고혈압이 184까지 치솟아 버려 있는 상태. 이날부터 매일 혈압약을 먹고 있는데, 아직도 약 먹을 때마다 내 나이에 이걸 먹어야 한단 말이냐 라며 현타가 온다. 스트레스는 독이라 하신다.


작년에 발병한 척추관 협착증.

지금 내가 편안히 집에서 글을 쓰고 있게 만들어준 결정타. 다리가 아파 매일 맥주를 마셔서 통풍이 온건가 했는데, 허리 문제였다. 허리통증과 방사통(이런 단어도 아프면서 처음 알았다.)때문에 걷지를 못해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잠시 일을 쉬게 되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도 수술을 해야 하나 보존치료를 해야 하나를 아직도 고민 중이다. 역시나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받지 말라 하신다.


자, 이제 나를 좀 불쌍히 여겨줄 텐가? 진짜 불행한 사실은 이 병들 중에 완치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


그럼 나는 어쩌다가 주변 지인들에게 대표 환자, 아픔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만나면 야, 몸은 괜찮냐? 소리부터 듣는다.



이렇게 아프게 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다.

미세먼지, 생활습관,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그리 강조하시는 스트레스.


지금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갑자기 코가 막히고 두통이 오며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아이들도 코가 막혀있다. 몸이 뉴스보다 빨라, 아침에 일어나면 아,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당시에는 미세먼지가 아니라 우리가족이 살고 있던 신축 아파트에서 나오는 나쁜 물질들 탓을 했기에 2년 만에 이사 해버 릴 정도로 온 가족이 힘들어했다. 우리 가족은 이러한 이유로 늘 미세먼지가 없는 더운 남쪽나라에서의 생활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건강을 심히 고려하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진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만, 남들처럼 술을 죽어라 마시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매일 밤 퇴근하고 샤워 후에 마신 맥주 한 캔은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샤워 후의 맥주가 나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신성한 의식 같은 행위라서 정신건강에 더 좋았을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누워만 있지는 않는다. 나 나름대로 크로스핏도 해보고, 주짓수도 해보고, 테니스도 해보고, 러닝도 하고.. 길게는 못하지만 꾸준히 운동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문제는 이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약이 없는 듯하다.

평소의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다음날로 미루며, 심각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빠르게 결정해 버리는 등 의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3년 간의 각 종 병원에서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으며 스트레스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받았다.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딨어? 괜히 원인을 잘 모르겠으니 스트레스 탓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리는 이것들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몸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가?


아니면 이런 후천적 원인이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탓일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 어릴 때부터 자주 해주신 말씀이 있다. "꿈과 희망을 가져라."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멋진 말들이 아니고, "넌 계획에 없던 아이이니 알아서 잘 크거라."였다. 아마 아버지께서 건강한 아이를 만들 준비를 미처 못했을 때 내가 생긴 탓일지 모르겠다.



어느 날, 나의 이 듣기만 해도 괴로운 모든 과정들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본 아내가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한다. 아내의 친구가 시어머니에게 했던 것을 고대로 써먹어 보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 단단히 결심을 한 듯 묻는고, 아내의 시어머니는 담담히 대답한다.


제가 십 년 전에 불량품을 받았는데 반품되나요?


유효기간이 지나서 반품이 안되니 고쳐서 쓰세요. 못 고치면 갖다 버리시던가.



다행히 아직까지 버려지지 않았으니, 그래도 한 번 고쳐 써보려는 심산인 거 같다.


* 아내의 친구도 매우 비슷한 답변을 들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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