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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감자 Feb 21. 2022

산책하는 남자

가장의 무게를 아내에게 가볍게 토스! / 1 




여기 한낮에 한가하게 산책을 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형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누나에게 대들다가 두들겨 맞는 등의 평범한 막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합니다.

평범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주변 친구들이 쌈박질로 자신의 세를 확장해 나가는 것을 보며, 모나지 않은 둥근 돌멩이의 삶이 편하겠다고 어렴풋이 생각을 합니다. 

또 그는 평범한 중학교 생활을 보내면서, 튀지 않고 평범하게 지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고,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평생 가져가야 할 평범한 키와 얼굴이 세팅되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보다는 살짝 뒤에서 따라가 주는 것이 평범함의 미덕이라 생각했는지 재수를 하게 되었고, 평범한 4년제 대학을 나와 평범한 연애를 하면서 평범한 회사에 취직을 하고 평범하게 결혼하여 평범하게 아들을 낳고 그렇게 평범하고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평범함을 무기 삼아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며 평범하게 삶을 마무리할 것 같던 그 남자에게 어째선지 심경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여기서부터가 뭔가 평범하지 않습니다.


둘째가 아내의 뱃속에 있는 와중에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친구와 사업을 시작해버립니다. 얼렁뚱땅 뚝딱뚝딱 사업을 잘 유지합니다만, 평범하게 살아야 할 사람이 평범함을 거부하고 살아온 탓이었을까요?

그는 몇 년 전부터 이비인후과, 피부과, 내과, 안과, 신경외과 등을 골고루 다니며 심신이 지쳐만 갑니다. 


결국 만세를 외쳐버리고 쉬어가기로 결정을 한 그 남자는 당분간 백수라는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바쁜 이 시간에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는 이 남자는 과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 남들 바쁠 때 여유 부릴 수 있는 이게 행복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 인생은 진정 꼬일 데로 꼬여버린 건가? 하며 불안해하고 있을까요?


정답은 '오늘 애들 저녁으로 무얼 먹이지?'라고 합니다.


평범하지 않게 된 한 남자는 오늘도 산책을 합니다. (반찬가게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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