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장 속 작은 파랑새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과거의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는 것 같지만 다시 한번 더듬어 보니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내가 꽃시장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8년 전이었다. 꽃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방문했던 꽃시장은 나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는 공간 그 자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를 자극할만한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한 시 빨리 그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은 답답함뿐이었다. 색채가 없는 생화들, 향기가 나지 않는 공간, 아무런 표정 없이 분주한 상인들, 바닥에 나뒹구는 꽃잎과 간이영수증 조각들은 나에게 어서 떠나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나에게 꽃시장은 그저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그 틈새의 시간에 방문을 했을 때 꽃시장은 장 마감을 준비하느라 매우 분주한 상태였다. 사장이든 직원이든 할 것 없이 서둘러 소화되지 못한 꽃들을 정리하였고, 파란색 칸막이 사이에 진열해 둔 생화들을 락스 물이 가득한 플라스틱 통에 일일이 옮겨 담았다. 꽃을 락스 푼 물에 담그는 이유는 간단한데, 생화의 절화 수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박테리아 번식을 방지하는 일종의 예방책이자 특별하게 관리해 주기 위함이다. 물론 꽃시장에 있는 모든 매장에서 행하는 것은 아니고 꽃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여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하는 것 같다. 이는 실제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꽤나 유용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 굳이 락스물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그 매장을 탓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같은 꽃시장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고유한 방식으로 마감을 하고 난 뒤 상인들은 꽃시장을 떠나 집으로 향하고 불이 꺼진 꽃시장에 남은 생화들은 밤새 물 없이 보냈던 시간들을 시원한 물로 보상받는다. 대략 10시간 뒤에 다시 개장할 새벽 시장을 기다리며 쓸쓸히 남겨진 생화들은 그렇게 뒤늦은 휴식을 취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고 낮에 활동을 한다. 그러나 꽃 시장의 시간은 그와 반대로 흘러간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꽃시장에서 시간을 보낸 생화들과 상인들은 낮에 휴식을 취하고 잠을 청한다. 생체리듬과 반대로 흘러가는 그들의 하루 때문에 날이 갈수록 체력적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항상 상인들을 보면 밤을 새워서 그런지 피곤에 쩔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보며 마음 한편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장 사람들은 서둘러 마감을 하고 집으로 귀가하고 싶은 마음뿐이겠지. 꽃들이 진정 아름다워 보일까? 나 또한 꽃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 꽃시장으로부터 낯선 느낌을 받고 있는 나도 별 감정이 안 드는데 힘겨워 보이는 저분들은 오죽할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바깥사람의 눈을 가지고 꽃시장에 들어왔던 것 같다. 시장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꽃시장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온 시장 사람들에게는 꽃은 아름다운 쓰레기에 불과할 수 있다. 이는 꽃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친 표정을 뒤로한 채 도매시장 상인들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몇 년 전 고터꽃시장에 본격적으로 입성해 3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는 고모 밑에서 하나하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싶어서 간단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느낌으로 합의를 보고 꽃일을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나는 주변 사장님들에게 인사하라는 고모와 고모부의 압박에 마음에 없던 무미건조한 인사말을 건넸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었다. 인사를 하는 것뿐인데 왜 그러한 부담을 느꼈는지 물어볼 수 있다. 그 당시의 난 배려심 없는 바깥사람들에게 많이 지쳐있었던 상태여서 그런지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었다. 아마도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문을 닫아둔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함이 있었던 나는 고모 꽃집에서 일하는 조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많은 분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간 고모가 꽃시장에서 쌓아왔던 수많은 것들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를 포함한 많은 이점들은 나를 별 탈 없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게 만들었고 그 모든 것들을 파생시킨 꽃시장의 역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나를 천천히 품기 시작했다. 적응하는 동안 큰 어려움이라고 일컬을 것도 없었다.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렇게 꽃이 가득한 공간속으로 편안하게 물들어 갔다.
평범한 역사에 꽃시장이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굉장히 낯설 수 있다. 나 또한 처음에 이 꽃시장을 마주했을 때 굉장히 어색한 감정이 들었었다. 이른 새벽, 난생처음으로 꽃시장에 방문하기 위해서 역사에 방문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매우 색채가 짙은 편이다. 제대로 된 조명이 없어 어두컴컴하고 실내를 감도는 소름 끼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새벽의 역사는 잠에 빠진 노숙자들이 가득한 낙후된 공간에 불과했다. 실제로 악취도 굉장히 많이 났었고 왠지 모르게 나를 위협할만한 것들이 존재할 것 같은 매우 불쾌한 공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허상의 꿈을 꾸고 있는 고속터미널역 경부선 1층 상가 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꽃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어둠과 빛이 얇은 층 하나를 경계에 두고 고유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현실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평범한 역 건물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극단적 대비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역사(history) 속에 등장하는 꽃들이 희망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자꾸만 나를 고통의 굴레에 밀어 넣었다. 이 계기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치기 어린 내 바람은 꽃의 짧은 생명력처럼 금세 꺼져버렸다.
“안타깝지만 극단적인 대비가 현대 사회의 민낯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나의 첫 방문기는 이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