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기다림이 주는 약간의 설레임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시즌2

by 박나비

탁탁 탁탁

덜그럭 덜그럭

우드득 우드득

치이익….


아침부터 몹시 분주하다.

대파와 무를 썰고, 소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마늘도 몇 알 으깬다.

이렇게 재료 준비가 끝나면,

먼저 큰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작은 조각으로

자른 소고기를 볶는다.

소고기를 넣자마자 치이익 하고 연기가 올라오면서

고소한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고소한 고기 볶는 냄새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고기가 냄비 바닥에 눌어 붙기 전에 계속

고기를 휘저어준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것 같으면 국간장을 약간

투입한다. 그렇게 조금 더 볶다가 투박하게 대충

썬 무를 추가로 넣어준다.

잠시 후 물을 붓고 끓이다 으깬 마늘을 넣어 주고

한소끔 끓으면 불을 줄여 은근히 좀 더 끓인다.

끓이면서 참치액을 한 번 둘러주고,

간을 보다 싱거우면 국간장을 조금 더 넣어준다.

마지막에 다 썰어 놓은 대파를 털어 넣고

조금 더 끓인 뒤 주방 베란다에 내놓고 식히면

완벽하다. 정말?


저녁에 먹을 ‘맑은소고기뭇국’이다.

‘맑은’이 포인트다. ‘빨간’소고기뭇국이 아니라

담백하고 은은한 ‘맑은’소고기뭇국이다.

태어나서 처음 끓여보는 ‘맑은’소고기뭇국은

절반의 성공이다.

(절반의 실패라는 말이고, 요리에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그냥 실패라는 뜻이다. 간이 반 정도

성공하면 뭐하겠는가. 나머지 반은 어떡하라고…)


저녁이 되어 내 첫 맑은소고기뭇국을 잔뜩 기대하고

있던 동거인들에게 간이 좀 싱거울 거라고 미리

고백했더니, 동거인 한 분이 어차피 데우려면 한 번

더 끓여야 될 텐데 그러면 간이 딱 맞을 거라고

위로해 준다.

그런데 요리에 실패한 나를 위로하는 말인 줄

알았던 이 말이, 그저 위로의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끓여낸

내 맑은소고기뭇국은 간이 적당히 맞았는지 다들

한 그릇씩 깨끗하게 비운다.

물론 배가 고픈 게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어쨌든 다행이다.


아침에 끓인 싱거운 맑은소고기뭇국이

저녁에 한 번 더 끓이니 먹을만해진대서 시작된

수다가 너무 길어졌다. 뭐 매 화 늘 그렇지만.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라고 쓰고,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라고 읽는 일상와인 스토리 시즌2,

적절한 기다림을 수다의 소재로 13화 시작.




제13화. 적절한 기다림이 주는 약간의 설레임


나는 음식을 할 때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다.

레시피를 찾아서 한 번 스윽 읽어 보고는 기억나는

굵직한 과정들 위주로 따라가되, 세부적인 부분들은

대충 알아서 한다.

조리 시작 전 한 번 살펴본 레시피를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 한 번 더 본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건만 괴상한 고집이다.


1분간 볶으라고 하면 대충 마음속으로 느긋하게

열을 세는 동안만 볶으며 ‘뭐 이 정도면 됐겠지’하고

그만 볶는다.

10분간 끓이라고 하면 5분도 지나기 전에

20분은 족히 넘은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후다닥

불을 끄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음식을 하니 내가 하는 음식은

매번 새롭다. 이럴꺼면 애초에 레시피를 왜 보는지

나도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다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 탄생해도

다음번에 똑같이 맛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삶거나 볶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양념은 얼마만큼 넣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오늘은 꼭 레시피 대로

시간도 맞추고. 양념도 한 번 제대로 계량해서

넣어보자고 다짐을 해보지만,

막상 조리가 시작되고 나면 그 다짐은

다른 재료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냄비나 프라이팬

속으로 뛰쳐 들어가 한 줌 수증기로 날아가버린다.

(RIP 내 다짐들…)


고기를 구울 때 나의 이런 조급함은 정점을 달린다.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리자마자,

프라이팬이 채 달궈지기도 전에 준비한 고기를

전부 올린다. 고기의 양이 얼마가 됐든 간에 한 번에

다 구워야 한다는 이상한 신념이 있어, 준비된 모든

고기를 그 한판에 기어이 다 올리고야 만다.

고기의 양이 많을 때면 프라이팬에 이쑤시개 하나

꽂을 자리 없이 기기묘묘하게 고기를 배치한다.

이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고기를 올리고 나면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바로 집게를 들어 고기들을

뒤집는다.

마치 프라이팬 위에 놓인 고기들이 너무 뜨겁진

않을까 안쓰러운 사람처럼 열심히 열 번도 넘게

고기를 뒤집는다. 온전히 한쪽 면이 다 익기를

기다리기가 너무 힘든 탓이다.


이처럼 참을성이 없고 조급함이 앞서니 애초에

대단한 맛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어찌어찌 다른 요소들이 잘 맞아 먹을 만해

지는 요행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밀키트 또는 배달음식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가끔은 요리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아주 가끔 굉장히 맛있는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매주 5천 원 치 로또를 사보는 것과

매우 유사한 심리다.


음식을 할 때는 반드시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

면을 삶거나 쌀을 익히는 간단한 조리에도

몇 분부터 몇십 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김치를 익히거나 청어를 말리는 것처럼

꽤 긴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런 적절한 시간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음식은

실패다.


훌륭하신 우리의 조상님들은 이런 적절한 기다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타박하기 위해 속담까지

만들어 주셨다.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고.

그리고 우물을 찾기 어려워진 현대의 자식들을 위해

우리 엄마를 포함한 전국의 엄마들은 이 속담을

이렇게 변형해서 사용한다.

쌀이 익어야 밥이 되지 보챈다고 밥이 되냐고.


적절한 시간이 필요한 건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적절한 시간은 필요하다.

학기 초 처음 본 친구가 내 마음에 쏙 든다고 당장

한날 한시에 같이 죽자고 도원결의를 맺자 달려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졸업할 때까지 밥은 혼자 먹게 될 거라는 거.


마찬가지로 처음 만나자마자 한눈에 반했다고,

세상에 다시없을 절절한 사랑을 지금부터 당장

시작하자며 달려드는 당신에게

‘지금까지 이런 당신만을 기다렸어요!’ 라며

달려와 안기는 상대방이 있을까.

아… 이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경우라면 당신이 더 위험하다.얼른 도망쳐!.


상대방에게 뭔가 잘못을 해서 사과를 할 경우에도

적절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당장 풀고 싶은 가해자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상처가

아물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

실컷 마음을 후벼 파 놓고는 바로 사과를 했으니

즉시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자고 하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다.


그리 쉽게 마음이 풀린다면 애초에 사과할 상황도

아닌 것이다. 사과를 받아 줄 사람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도 계속 되풀이되는 사과는

또 다른 형태의 가해일 뿐 진정한 사과는 될 수 없다.

설령 그 계속되는 사과에 지쳐(혹은 두려워)

받아준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상대방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 때까지,

그래서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살짝 열 준비가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예의 바르게 기다리자.

그리고 그런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바른 태도로

용서를 구해보도록 하자.

물론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피해자의 몫이니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난리 부르스를 추는 우를 범하지는 말 일이다.


말(言)도 마찬가지다.

이 말을 해야 될까 망설여진다면 하루만 참고

기다려보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다음날에도 이 말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조리있게 다듬어 흥분하지

말고 담담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도록 하자.

상황과 분위기에 휩싸여 그 당시 내 기분대로

말을 뱉고 나면 당장은 후련하더라도 돌아서자마자

후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시간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조금만 시간을 두고 보면 해결되는

일이 의외로 많다.

마음 한켠에 새겨 두고, 행동이나 말이 성급하게

앞서가려고 할 때 한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아, 그전에 요리할 때 타이머라도 먼저 좀 준비해

둬야 할 텐데…


와인도 그럴 경우가 있다.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던

와인의 마음이 약간의 시간을 통해 조금 느슨하게

그리고 조금 부드럽게 풀어질 때가 있다.

와인 ‘브리딩(breathing)’에 관한 이야기다.


산미가 유독 강하거나 알코올 향이 너무 튈 경우,

또는 첫 잔을 마셨는데 뭔가 이유 없이

전에 마셨을 때 보다 맛이 덜한 날이면

마시던 와인 잔을 살며시 내려놓고 아무 책이나

가져와 몇 장 읽거나 플레이리스트에서 랜덤으로

몇 곡의 노래를 재생해서 들어본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와인에게 잠시 조금 더

숨을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바로 이 시간이다.

적절한 기다림이 주는 약간의 설레임을 느끼는 시간.


하지만 오늘도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눈앞에 빤히 보이는 시계를 애써 외면하며

‘아 이 정도면 30분은 훨씬 지났겠는걸’ 하고

마음속에 설정해 둔 타이머를 꺼버리고

와인 병을 집어 드는 내 모습을 보니,

이번 생에 요리용 타이머는 물 건너간 듯하다.



* 와인을 오픈하고 산소와 접촉할 시간을 갖게

해주는 ‘브리딩(breathing)’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브리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과,

어느 정도는 브리딩이 효과가 있다는 의견, 그리고

아예 브리딩 무용설까지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그런 까닭에 브리딩에 관해 더 들어가게 되면

‘즐거운 와인 생활, 성실한 수다’를 모토로 하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필요한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들이 많아 더 이상 깊게 들어가진 않겠습니다.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점은 ‘브리딩’으로

와인의 맛과 향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거라

잔뜩 기대하진않으셨으면 합니다.

본문의 경우처럼 몇몇 상황에서 약간의 설레임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플라시보 효과가 큰 영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와인에 따라 제각기 다른 브리딩의 시간을

다 지켜가며 마시기엔 우리에게 그럴 재력도 시간도

아깝습니다.

(전문적인 브리딩이 꼭 필요한 와인들은 대부분

고가의 와인들이고, 그중에서도 영 빈티지의

어린 와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합니다.)


합리적인 와인 구매로 오래오래 지속 가능한,

그래서 행복한 와인 생활을 지향하는 우리에게는

잔을 몇 번 돌려주는 행위만으로도

기능적 요소로서의 ‘브리딩’은 충분합니다.

(이걸 ‘스월링(swirling)’이라고 합니다. 굳이

이런 용어들을 일부러 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당신과 저,

우리들의 행복한 와인생활에 해롭습니다.

그저 즐겁게 와인 생활을 즐기시다 보면 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용어들입니다.)

물론 심리적 요소로서 브리딩을 하는 경우는

언제나 대환영이며

(그렇게 해서 나에게 만족할 만한 맛을 준다면

하루 종일 브리딩을 한들 뭐가 문제겠습니까!),

모든 와인에 매번 한 시간의 브리딩을 와인을

마시는 나만의 루틴으로 만들겠다 하시는 분들도

대환영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와인에 정답은 없습니다.

내가 마시는 방법이, 곧 와인을 마시는 방법입니다.


다만 일부러 브리딩을 하지 않더라도

한 잔씩 병을 비우다 보면 온도의 변화에 따라

아주 약간씩 다른 맛을 보여주기도 하니,

‘브리딩’을 하면 와인이 아주 환골탈태를

한다더라며 와인을 장시간 외롭게 방치하진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래도 ‘브리딩’이 너무 궁금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더 깊게 파헤쳐 들어가시면 재미도 없거니와

학술 논문의 영역으로 들어가도 괜찮다는

각오 정도는 가지셔야 합니다.

물론 그 정도의 깊이로 들어가셔도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데 제 손목을…

아니, 결론이 나오지 않을 거라 장담합니다.

(오랜만에 출연하는 제 손목이네요.

손목 거는 버릇…네, 아직 완전히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아…)


그럼 오늘도 당신의 행복한 와인 생활을 기원하며, 이만.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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