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시즌2

by 박나비

너무 덥지도 또 너무 춥지도 않은 날씨가

연일 이어진다.

이런 날씨가 이어지는 주말이면 집 근처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고 있기도

하고, 평일 낮 별다방 창가에 앉아 별 주제도 없이

메모를 끄적여 보기도 한다.


이어폰을 끼고 세팅해 둔 플레이리스트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무작정 걸어 보기도 하고,

구립도서관에 가서 제목만 보고 흥미로운 책을

한 권 골라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책장을 넘겨

보기도 한다.

제목만 보고 골라온 책이 취향에 맞을 때면

화창한 가을 날씨만큼이나 기분 좋은 즐거움을

선사해주기도 하는 꽤 재밌는 독서법이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 끼어, 해가 갈수록 점점 자신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가을을 즐기는

나만의 방식들이다.

야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땀 흘리지 않고

상쾌하게 한 시간을 넘게 산책을 한다든지 혹은

에어컨도 온풍기도 틀어 놓지 않은 선선한 카페

창가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 건

이 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들이다.


이처럼 매년 짧아져만 가서 아쉬운 가을을

최대한 열심히 즐기기를 실천 중인 내게

요즘 새로운 가을 활동이 하나 생겼다.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12화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라고 쓰고,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라고 읽는 일상와인 스토리 시즌2.

이 가을, 새롭게 맞이한 취미 생활을 수다의 소재로

제12화, 시작.




제12화. 와인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날씨가 좋아지니 같이 사는 초딩 동거인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한다.

일 년 중 거의 10개월 이상을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우리 집 베란다에 얌전히 파킹되어 있는

초딩의 자전거를(가끔 세탁기에 빨래 넣으러

갈 때나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 올 때, 빨래 바구니나

다리에 부딪혀 조금 움직일 때가 있긴 하다.)

낑낑거리며 아파트 1층으로 끌고 내려온다.

핑크색 프레임에 갈색 안장이 잘 어울리는

이 귀여운 자전거는 재작년 초딩의 생일에 사준

생일 선물이다.


이전까진 아파트 단지 중앙공원에서 초딩 혼자

자전거를 탔었는데(아직 삐뚤빼뚤 위태롭게 탈 때가

많아, 타는 동거인 보다 지켜보며 뛰어다니는 내가

더 힘이 든, 가을 자전거 타기 대잔치다.)

올해는 같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초딩의 말에

개인 자전거 미 보유자인 나는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 앱으로 난생처음 공유 자전거를 대여해

본다.


사실 아파트 주변에 따릉이 보관장소가 많이 생겨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타볼까 생각은 했었는데,

괜히 대여 방법도 복잡할 것 같고 반납하기도

귀찮을 것 같아 여우가 신포도를 쳐다보듯

단념하곤 했었다.


그런데 웬걸, 카톡페이로 결제하고 자전거 뒷부분의

QR코드를 찍으니 뒷바퀴에 설치되어 있던

잠김 고리가 찰칵하고 바로 풀린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세상 참...

어쩐지 요즘 따릉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보이더라니.


자전거를 잠시 세워 두고, 동거인이 자전거를 탈

준비를 하는 동안 붓으로 칠한 듯한 파란 하늘과

초록과 노랑, 빨강이 어우러진 색색깔의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입으로 한 번, 그리고 코로 한 번 숨을 크게

들여 마셔본다. 때마침 살랑 지나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고 지나간다.


좋다. 이렇게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가을을 맞이한다.


그렇게 처음 따릉이를 타 본 뒤로,

아예 따릉이 일 년치 사용권을 결제해 버렸다.

매일 한 시간 365일 이용 가능한 사용권이

단 돈 3만 원! (뭔가 약장수 같은 느낌인데..쓰읍.)

열심히 세금 내온 보람을 여기서 느낀다.

더구나 매일 한 시간 이라고는 하지만,

한 시간 이내에 보관장소에 반납을 하면,

다시 1시간을 새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잘만 활용하면 한 시간이 아니라 사용하고 싶은

만큼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지금의 내 상황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진작 타고 다닐껄 하는 아쉬움이 절로 들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냐며

매일 신나게 따릉이의 잠금장치를 풀고 다닌다.


흰색과 초록색으로 컬러 조화까지 완벽한 따릉이를

타고 20km 가 넘는 거리의 안국역으로 가서

커피 한잔을 하고 오기도 하고,

한강변의 완연한 가을 경치를 즐기며 한강대교가

몇 개인지 세어보다 오기도 하면서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한강에 다리가 이렇게 많다는 걸 따릉이를 타고

다니며 새삼 실감한다.)

나름 라이딩의 맛을 느낀다.


탄천이나 한강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다 보면

사이클 선수들처럼 쫄쫄이 복장 상하의 세트에

멋진 고글을 착용하고 말 그대로 바람처럼 달리는

라이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자전거를 타고,

내 기준 마하의 속도로 지나가는 이 분들이

희미하게라도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라 최대한 도로 끝으로 자전거를 옮기며

멈춰선다.

그리고 아련한 선망의 눈빛으로 그분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정말 멋지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그분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래! 자전거는 저렇게 타는 거지! 나도 저렇게

타 봐야겠다’ 굳게 다짐하며 마치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처럼 진지한 자세로

페달에 발을 올린다.

그렇게 발끝에 힘을 주며 멋지게 이륙하려는 순간!

덜컹 거리는 진동에 따릉~ 하는 앙증맞은 벨 소리가

주위로 울려 퍼진다. 동시에 앞에 달려 있는 흰색의

귀여운 바구니에 담아 놓은 500ml 생수병이

나도 좀 봐 달라며 출렁 출렁 좁은 바구니 속에서

뒹굴 대고 있다.


‘……흐음….’

역시 나에겐 초록과 하양의 컬러 조합이 상큼한

따릉이 아저씨가 제일 잘 어울리나 보다. 젠장.


그렇게 한참을 타고 달리고 있으면

친절하게 알림 톡이 온다.


[ 따릉이 반납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ABC-12345)번 (15:18)까지 미반납시 추가 요금

발생되니 반납 후 재대여 하세요. ]


이 톡을 보고 나면 잽싸게 길 옆으로 나와서

자전거를 세운다. 핸드폰을 꺼내어 따릉이 앱을

켠 뒤 근처 가장 가까운 따릉이 보관장소를

찾아본다. 그리고 지금 위치에서 거기까지 가는

최단거리 루트를 머릿속에 입력한다.

그렇게 10분 안에 앱에서 찾은 장소로 가서,

타고 온 따릉이를 반납처리 한 뒤 재대여한다.

그럼 이제부터 다시 새롭게 한 시간이 카운팅 된다.


처음엔 한 시간 안에 반납하고 재대여를 못할 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제는 중간에 어느 보관장소를

들를지 출발 전 미리 마음속으로 정해두고

라이딩 루트를 세울 정도로 익숙해졌다.

따릉이 대여 방법조차 몰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던 이전에 비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다.

멋지다 나비야! 브라보 박나비!


자기 전 따릉이 앱을 켜서 지금까지 내가 달린

거리와 루트, 소모한 칼로리를 확인해 본다.

정말이지 내가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을 만큼

뿌듯하다.

거기다 탄소저감량까지 수치로 보여주니

뭔가 내 이름 앞에 ‘에코’ 두 글자를 붙여도

괜찮을 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자전거 몇 번 타고 이 난리를 부리는 걸 보면

전국일주라도 하면 자비로 위인전을 출판할지도

모를 일이다…자중하자.


목적지를 정해 둔 길이든,

정하지 않고 바퀴 닿는 대로 가는 길이든,

가을 햇볕을 즐기며 타는 따릉이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좋다.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한 없이 높고 푸른 하늘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기 딱 적당한 날씨 속에서

따릉이가 주는 자유로움과 상쾌함이 더해지니

행복이란 놈이 따릉이 바구니에서 쏙 나와

나 여기 있다고 손을 흔든다.


따릉이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면 의도치 않게?

와인가게들을 발견할때가 있다.

(정말이다. 절대로 의도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눈에 띈 것일뿐..)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 번씩 들어가 보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와인을 이렇게 비싸게 팔다니!

이 가격에 팔리긴 할까?

이건 처음 보는 와인인데 맛은 괜찮을까와 같은

주인도 하지 않을 쓸데없는 생각들을 마음속으로

하며 한 바퀴 주욱 둘러보고 다시 가게를 나와

따릉이 페달을 밟는다.

간혹 좋아하는 와인이 보이면 한 병 사서

따릉이의 귀여운 흰 바구니에 담아 두고

신나게 집으로 페달을 밟기도 한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와인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좋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다음번 찾아올 나의 가을엔 어떤 새로운

내용이 더해질런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가을 아침이다.



*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쉽게 볼 수

있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가성비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을 소개해드립니다.


- 페데리코 파테니나 까바 브뤼

(Federico Paternina Cava Brut)

7화를 정독한 당신이기에 중간의 ‘까바’라는

단어에서 이미 눈치채셨으리라 믿습니다.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제7화. 굿바이 SUMMER’

를 다시 한번 읽고 오시길 조용히 권유 드립니다.)

페데리코 파테니나는 와이너리의 이름인데

이 와이너리는 세계적인 소설가 헤밍웨이가 방문한

와이너리로도 유명합니다.


‘브뤼’기 때문에 당도는 낮지만 마시다 보면

은은한 향이 올라와 기분이 상쾌합니다.

어떤 향이 나는지는 마시면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개인마다 느끼는 향들이 다 다르니까요.

과일향이 난다는 분도 있고,

허브향이 난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일향들도 얘기하는 과일들이 다 다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내가 느끼는 향이 바로 이 와인의 향입니다.


산도도 적당해서 데일리 스파클링 와인으로 아주

좋습니다. 와인이 처음인 분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적당한 와인입니다.


여기서 잠깐! 고품격 수다살롱의

성실한 수다 참여자라면 지금 머릿속에 질문이

하나 떠오를 텐데요? 아니라구요?

이런, 그만큼 성실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좀 더 성실히 수다에 참여해 주시길...


‘브뤼’라서 당도가 낮다는 말이 좀 낯섭니다.

많이 어려운 건 우리의 즐거운 와인생활에 해가

되지만 시즌2까지 성실히 수다에 임한 당신이기에

이 정도는 살짝 알아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브뤼’는 와인의(주로 스파클링) 당도를 의미하는

용어 중 하나입니다.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에서

약간의 당분을 투입하는데, 이때 당분을 어느 정도

넣느냐에 따라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눠집니다.

(당분을 넣는 과정을 ‘도사쥬’라고 하고,

당도에 따라 6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각 등급의

당분 정도가…스탑!

여기서부터는 당신과 나, 우리들의 행복한

와인 생활에 명백하게 해롭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딱 하나.

‘브뤼’라고 붙어 있으면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것.

이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이상은 해롭습니다.


그러니 이 와인 라벨에 쓰여진

‘페데리코 파테니나 까바 브뤼’를 보고 우리는,

‘음 까바라고 하는 걸 보니 스페인 스파클링이고,

브뤼라고 쓰여 있으니 달지 않고 드라이하겠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뭐, 괜찮습니다.

그런 거 몰라도 와인은 맛있고,

세상엔 우리가 배워야 할 거 투성이니까요.


상시가 만원 초중반, 행사가 만원 언더(칠천 원대

까지 행사가로 푼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입니다.

상시가로 구매하더라도 괜찮은 가성비 와인입니다.


아무리 청량한 가을 날씨라도 한 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몸에선 열기가 오르고,

본능적으로 시원한 탄산이 떠오릅니다.

집에 도착해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구입해 온 ‘페데리코 파테니나 까바 브뤼’를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켜보시길.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실

겁니다. 배달 앱을 열어 치킨을 시키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늘 그러거든요.

빠진 칼로리 보충해야죠!

그럼 오늘도 당신의 즐거운 와인 생활을 기원드리며

이만.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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