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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Nov 28. 2024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

말 그대로 펑펑 쏟아져 내렸다.

얼마나 펑펑 쏟아져 내렸으면,

아침에 거실에 앉아 있는데 처음 듣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폭설로 인해
부러지거나 쓰러지는 나무가 많습니다.
나무 아래 보행 시 주의 바랍니다.


눈이 겹겹으로 쌓이다 보니

결국 뿌리가 얕은 나무나

줄기가 가는 나뭇가지는

쓰러지거나 부러져버렸나 보다.


하긴,

아파트 조경수가 아무리 깊이 뿌리를 내려봤자지.

깊은 산속도 아닌, 아파트를 짓기 위해 지반공사를

한 땅에 뿌리를 내려봐야 얼마나 깊이 내릴 수 있을까.

짓누르고 흔들어대면 결국 쓰러질 수밖에.


하긴,

휘어져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지.

어느 정도로 쌓여야 휘어져 버티다

낭창낭창 털어버리고 다시 버티지.

휘어질 대로 휘어져서

버틸 대로 버티고 있는 그 위로

또다시 쌓이면 결국 부러질 수밖에.


어째 예년보다 추위가 늦더라니.

이리 빠르게 첫눈이 올 줄이야.

그게 이렇게 폭설로 올 줄이야.



어제는 하루종일 거의 집에만 있었다.

며칠 전 이중주차 해 놓은 차를 주차구역으로 옮겨 놓기 위해 나간 것과

밤 아홉 시가 넘어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 나간 것과

와인샵에 와인을 사러 나간 것과

마트에 올리브를 사러 나간 것이

어제 밖으로 나간 전부다.  

생각해 보니 네 번이나 나갔으니

하루종일 거의 집에만 있었다는 위의 문장을 고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횟수가 아니라 머문 시간을 생각해 보니

그대로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외의 시간엔 눈멍을 했다.

그냥 멍도 아니고

불멍도 아니고

물멍도 아닌,

눈멍.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며 눈멍

나무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 폭포를 보며 눈멍

그런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눈멍


뜻밖의 첫눈이

의외의 폭설이

가져다준 행복한 눈멍의 시간이었다.


눈멍을 하며 노래도 들었는데,

이젠 정말 옛날사람이 되어버렸음을

노래를 선택하며 확연히 느꼈다.


팝송도 틀어보고

요즘 노래들도 틀어보았지만

나의 눈멍타임과는 정말 맞지가 않더라.


결국,

나의 눈멍타임과 가장 어울리는 노래는..


전부를 공개하기는 조금 부끄러우니까

두 곡만 공개해야지.

비웃지들 마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I1cnpxdREuQ

모두가 이효리, 성유리에 열광하던 짐승시절, 나는 오직 이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7WfNJ5ks0

겨울, 특히 눈이 오는 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간질간질하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눈이 그쳤다.

햇빛이 거실창안으로 들어와 노트북 화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창밖 커다란 나무들도 가지와 잎에 쌓여있던 눈들을 거의 다 털어버렸다.  

나도 마지막 남은 차 한 모금을 마저 털어버려야겠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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