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파인다이닝일 수는 없다

지속성에 대한 고백 - 최강록 [요리를 한다는 것]

by Rain

2026년의 뜨거운 시작을 <흑백요리사 시즌2>

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경연을 보며, 대중은 그 화려한 맛을

궁금해하는 동시에 별명 뒤에 숨겨진 요리사의

인생 서사에 환호를 보낸다. 특히 경연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미션, "나를 위한 요리"에서 보여준

최강록 셰프의 모습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요리의

길을 걸어왔는지 깊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절정의 맛을 낸 조림 요리를 선보일 것이라는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식당에서 남은

재료들로 오늘 하루 수고한 자신을 위해 따뜻한

국물 요리와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그 모습은

화려한 스타 셰프의 모습이 아닌,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모든 요리사와 자영업자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한 편의 만화 같은 감동이었다.


이 여운을 따라 펼쳐 든 그의 책 속에서,

나는 솔직한 기쁨과 슬픔, 희망과 걱정에 공감하며

묵직한 위안을 얻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음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요리를 한다는 것, 식당을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요리사로 산다는 것 이렇게 4가지 챕터로 나뉜다.

주제별로 짧게는 5페이지에서 길게는 1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한번에 읽어 내려가는 것도 좋지만

쉬엄쉬엄 읽으며 여운을 곱씹어도 좋을 그런 책이다.


"먹는다는 것은 입안에 맛있는 음식을 넣는
것에 그치지는 않고, 우리의 삶에 만족스러운 시간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인 것 같다."


미식가들은 최고의 맛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 음식은 '맛'보다는

'기억'으로 남는다. 누구와 함께였는지, 그때의 공기는

어떠했는지와 같은 환경적 결이 기억의 농도를

결정하곤 한다. 추운 날 부모님과 먹던 큼직한

감자가 든 수제비, 비 오는 날의 부침개,

졸업식 날의 짜장면처럼 말이다.


음식은 결국 단순한 미각의 경험을 넘어,

우리 삶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시간의 조각'이다.


"텅 빈 테이블이 제일 무섭다.
나는 날씨가 궂을 때면 길바닥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길이 깨끗해야 손님이 온다."


"길이 깨끗해야 손님이 온다"며 날씨가 궂을 때면

길바닥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대목에서는 요즘

이슈가 되었던 노쇼가 생각나며 서늘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지만

손님이없는 텅 빈 테이블이 주는 무서움을 아는

사람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길을 쓸며

손님을 기다리는 '성실함'의 가치를 안다.

이는 비단 요리사로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삶에

가져다줄 기회와 행운으로 보이지만 끝내 성실함으로

얻은 '노력의 결실'을 기대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삶의 겸허한 태도 것이다.


"돌아보면 짜임새 있는 삶은 아니었다.
보통의 계단은 일정한데 내 삶의 계단은
높낮이가 좀 들쭉날쭉했던 것 같다.
어떤 계단은 너무 낮아서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르기 쉬웠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의 계단은
한없이 높아 보였다. 다리를 아무리 올려도
닿지 않아서 기어올라가야 할 때도 있었다.
나에게 요리는 쉽게 지치긴 하지만 지금 여기까지
계단을 오르게 해 준 두 다리다.
그래도 이 끝없어 보이는 계단이 내리막길은
아니었다는 믿음이 있다.
남들보다 빨리 오르진 못했어도."


가장 큰 감동을 준 부분은 그의 일상을 진지하게

마주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지속성'에 대한 고백이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여겨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았지만, 세월을 견디며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한 후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지속하느냐라는 것을

말이다. "그만두지 않고 지속하면 반드시 쌓이는

가치가 있다"는 그의 고백은 그 자체로 증명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높낮이가 불규칙한 계단과 같다.

어떤 때는 가볍게 뛰어오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너무 높아 숨을 헐떡이며 기어올라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 끝없는 계단들이 결코 내리막은

아니었다는 그의 고백은, 읽는 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묵직한 맛의 깊은 국물 요리처럼 따뜻한

기쁨을 선사한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요리가 파인 다이닝일 수는

없으며, 우리 모두가 화려한 주인공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던 최강록 셰프의

마지막 국물 요리처럼, 우리도 묵묵히 오늘을 살아낸

자신을 위로해 보면 어떨까. 수고한 나에게

작은 사치를 허락하며 "참 잘했다"라고 토닥여 주는

밤이 되길 바란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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