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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원래 갈 뻔했던 자리로 이제야 되돌아간 건가. 그 봄부터 지금까지 삼촌에게 다시 주어졌던 삶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향냄새에 알코올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감돌았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장례가 끝나면 고모들은 작은고모의 집으로 함께 돌아가 몇 안 되는 삼촌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핏자국을 지울 것이다. 술, 굳은 간, 그래서 파열된 정맥, 다량의 출혈과 그로 인한 쇼크. 의사로부터 들었던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형제의 몸 안을 여전히 돌고 있었어야 할 피들을 지우게 될 것이다. 지우면서 그 흔적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게 될까. 나는 옆 테이블에서 잔을 주고받고 있는 고모들을 멀거니 바라봤다. 고모들이 상복 입은 모습을 본 기억은 없는데도 어쩐지 이 풍경이 생경하지 않았다. 반면에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아버지는 낯설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필요할 것 같아서 최근에 드라이해놨던 양복이었다.
술로 죽은 녀석 초상에서도 기어코 술판이다.
아버지가 혀를 찼다. 아버지는 배곯던 어린 시절에도 길에서 주운 과자를 남동생에게 먼저 건네는 사람이었지만, 술로 망치는 삶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삼촌 소식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어쩌면 삼촌으로부터 무언가가 함께 환기되기 때문에 삼촌을 그렇게까지 못마땅해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술로 죽은 자신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삼촌이 우리 집에서 잔뜩 취한 적이 있었다. 평소처럼 취해서 왔거나 찾아온 뒤에 술에 취했거나. 출소하고 그렇게 오래 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와 삼촌은 거실에 있고 나와 언니는 방 안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꽤 화가 난 삼촌은 이렇게 말했다.
지은 죄도 없는데 형 대신 감옥살이를 했소, 내가.
그리고 언니와 내 이름을 대면서, 막말로 첫째가 사람 죽였는데 둘째가 징역 산 거 아니냐고 했다. 갑자기 나와 언니의 이름이 언급이 된 것도, 죄를 짓지 않았는데 징역살이했다는 말도, 삼촌의 자리에 정확히 내가 대입된 것에도 나는 놀랐다. 그리고 그때까지 겪어본 적 없는 강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버지는 아주 크게 화를 냈고 엄마도 삼촌을 얼른 돌려보내려고 했다. 삼촌은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삼촌은 꽤 오래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날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수치스러움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가 죄를 지었나? 삼촌이 그 죗값을 대신 치르느라 삶이 다 망가져 버렸나. 하지만 삼촌이 말도 안 되는 어깃장을 놓는 걸 수도 있었다.
구태여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삼촌을 싫어하게 된 걸지도 몰랐다.
상복 입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지금 아버지에게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고모들은 먼 친척 얘기를 두서없이 하다가 다시 삼촌으로 돌아와 있었다.
막내 고모가 불콰한 얼굴로 말했다.
작은오빠가 핸드폰을 새카만 것만 쓰잖어. 언제였지, 작은오빠가 우리 집에 왔는데 이어폰이 한쪽만 나온다드라고. 내가 남는 거 있응께 쓰라고 하나 줬다, 까만 걸로. 근데 안 받아. 그건 멋이 안 난대. 까만 핸드폰에는 뽀얀 걸 써야 한다나.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린 첨 듣네, 그라믄 엥간히 꼬질꼬질한 그 운동화는 멋있어 불고? 했더니, 씩 웃드라.
큰고모와 작은고모는 그 신발을 아는 눈치였다. 막내 고모가 이쪽을 향해 말했다.
주황색 있어야, 오빠가 죽어라 신는 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집에 왔던 날 현관에서 낯선 신발을 본 기억은 나는데 색깔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던 막내 고모가 고모들에게 말했다.
언니야 있잖아, 얘가 쪼까날 때 오른쪽으론 윙크를 하는데 왼쪽으론 못하드라고. 그래서 볼 적마다 작은오빠가 죽어라 윙크를 시키는 거 있지? 과자 사준다고, 양쪽으로 하믄. 니는 기억 안 나지?
열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상상했다. 어린 내가 안 되는 윙크를 하려고 찡긋거리는 표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을 것이다. 삼촌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었을 거다.
고모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삼촌은 어려서부터 손으로 하는 걸 무엇이든 좋아하고 또 잘했다. 열 살쯤 되었을까, 삼촌이 하도 집에 오지 않아서 막내 고모가 찾으러 간 적이 있었다. 어린 삼촌은 철봉 아래 앉아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모래판에서 뭘 하나 했더니 자기 이름을 계속 쓰는 중이었다. 글씨 예쁘게 쓰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제야 조금씩 다른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걔는 다 커서도 노트에 그랬당께, 최근까지도.
큰고모였다.
그라고 밖에 있어도 피부가 뽀얬어. 지 혼자만.
작은아빠 까만 편이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트럭 몰면서 장사할 때도, 안 타드라고.
큰고모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출소한 뒤로 하루가 멀다고 직업을 바꾸던 삼촌은 한때 트럭에서 채소를 팔기도 했다. 우리 집에도 낡은 파란색 트럭을 끌고 종종 왔었다. 삼촌은 대파며 배추 따위를 가져다주고는 큰 시동 소리를 내면서 금방 돌아갔다. 내 오랜 기억 속에서부터 삼촌은 언제나 까무잡잡한 얼굴이었다.
언니가 중얼거리듯이 얘기했다.
작은아빠 목포에 누워계실 때도, 되게 하얬는데.
어쩌면 누군가는 기억을 조금씩 재정립해야 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침이 됐다. 발인하고, 화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검은 넥타이를 풀어 양복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삼촌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네.
삼 일 내내 매고 있던 넥타이가 사라진 목덜미는 허전해 보였다. 아버지는 동생이 이른 나이에 떠난 게 특히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쉰다섯은 한 삶이 끝나기에 이른가, 아닌가. 아버지는 삼촌이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집에 왔던 날 따뜻한 밥이라도 든든히 먹여서 보낼 걸 그랬다고,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몰라서 그랬을 거잖아. 아무도 몰랐잖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침실로 갔다. 나는 아버지가 아무런 꿈도 꾸지 않길 바랐다. 나는 검은 옷을 벗고,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따라서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책장 앞으로 갔다.
어릴 때 읽었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펼쳐봤다. 장례식장에 갈 준비를 하던 어제저녁에 언니가 이 책 얘기를 했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 때, 삼촌이 언니의 소설책 한 권을 빌려 갔다 실수로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삼촌은 그 책 대신에 한창 유행하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나와 있는 권수까지 전부 사줬다. 지금 세어보니 모두 열 권이다. 출소한 뒤로 그럴듯한 직장을 다닐 수도 없던 삼촌에게는 꽤 큰 선물이었을 텐데, 삼촌은 선물을 주면서도 미안해했다. 하지만 이미 삼촌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선물 받은 사실은 그만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삼촌이 잃어버린 책 한 권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봄 목포 이후로 내가 삼촌을 더욱 외면해왔다는 사실도 나는 이제야 알아차렸다. 그동안 나의 수치심이 삼촌을 향한 미움으로 방향을 틀어 자라났다면,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정정할 수 있을까.
교도소에서 나온 책들을 다시 올려다봤다. 일부러 눈길이 닿지 않는 자리로 이십여 년 가까이 밀쳐져 있던 책들.
손을 뻗어서 편지가 있던 책을 다시 꺼냈다. 이제 글자로만 남게 된 이름이 보였다. 이 이름이 독특한 이 필체로 쓰이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나는 교도소 안에서 수의를 입은 삼촌이 조심스럽게 이름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금 더 피부가 하얀 삼촌으로도 상상해봤다.
처음으로 삼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저 편지가 어쩌다 지워진 건지, 그날 내가 금세 떠나고 다시 빈집에 남게 된 삼촌은 무엇을 했는지, 이 책들을 보기도 했는지. 그리고 어릴 때 내가 들었던 그 말, 죗값을 대신 치렀다는 게 무슨 의미였는지.
하지만 삼촌에게 직접 들을 수는 없다. 더 이상 삼촌을 통해서 삼촌을 바라볼 수도 없게 됐다. 정말 끝났으니까.
책 위에 쌓인 먼지를 닦을까 하다가 그대로 책장에 꽂는다. 오래된 책을 제자리로 되돌려놓으면서, 그동안 나는 삼촌을 얼마나 알았던 걸까 생각한다. 조금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삼촌은 더 이상 없다. 이제 없어서 다르게 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다행인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