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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Aug 31. 2023

되돌아가는 물음들 (2)

단편 소설

삼촌은 술자리에서 싸우다 칼에 찔려 입원을 한 사람이기도 했고, 교도소에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엄마 손을 잡고 삼촌을 찾아갔던 날이 기억난다. 그게 정확히 구치소였는지 교도소였는지는 모르겠다. 면회하러 가는 길이었는지 돌아오는 길이었는지도 흐릿하다. 하지만 햇살이 아주 밝은 날이었던 건 선명하다. 늦봄이거나 초여름, 아니면 초가을이었다. 나는 근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장난치며 쏟아져 나오는 걸 보았고, 이런 데에도 학교가 있네,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말을 엄마에게 하진 않았다. 나는 기껏해야 네댓 살 정도였을 테지만 삼촌이 있는 데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줄 알고 나만 데리고 갔을 거다. 두 살 많은 언니는 혹시라도 기억할까 봐 옆집에 잠깐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분이 어딘지 평소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보통 때처럼 어디를 가는지 거기엔 뭐가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야외에 친 천막 아래 놓여있던 색색의 등받이 플라스틱 의자, 거길 면회 대기실이라고 누군가 불렀던 것, 왼쪽에 보이던 음료수 자판기, 엄마가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종이와 어수선한 시멘트 바닥, 덥고 적막한 공기, 마이크에서 어떤 말이 들리자 일어난 엄마와, 그 뒤를 일부러 걸음을 조금 늦춰 따라갔던 것, 건물로 들어서자 공기가 아주 조금 시원해진 것, 투명하지만 막혀 있던 벽과 그 뒤에서 위아래가 같은 색 옷을 입고 있던 삼촌.
  어쩌면 나는 삼촌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거기에 있다는 걸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고 미리 이해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린 나에게는 삼촌이 왜 그런 곳에 있는지가 아니라, 그런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삼촌은 아버지 바로 아래 동생이지만 아버지와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어딘지 거친 느낌과 말에 종종 섞이곤 하는 욕들, 어린 나와 언니 앞에서도 서슴없이 담배를 피우던 모습들. 아버지는 우리 앞에선 담배를 잘 피우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지만, 삼촌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자주 취하고, 취하면 자주 화를 냈다. 그런 삼촌에게 아버지는 다시 불같이 화를 냈다. 삼촌과 같이 있을 때만은 아버지도 삼촌과 닮아 보였다. 삼촌이 찾아오기만 하면 집 안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친척들이 이따금 집에 모일 때에는 아버지도 집에서 담배를 피웠다. 엄마는 담배 연기를 피해 어린 우리를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가끔 열리는 방문 너머로 보이는 아버지와 매캐한 냄새는 어딘지 낯설고 무서웠다. 그게 아버지의 본래 모습이었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친척들, 특히 삼촌이 우리 아버지를 나쁘게 물들이는 걸로 보였다.
  그래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까지는 삼촌도 이따금 우리 집에 왔다. 맥주 몇 병을 사 들고, 언제나 조금 헐렁해 보이는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고선. 바지 주머니에는 언젠가부터 로또 용지가 들어있었다. 지갑에 넣어두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에 동전이나 라이터 따위와 뒤섞여 있었다.
  무슨 복권을 그렇게 맨날 사요?
  엄마가 묻자 삼촌은 슬쩍 웃었다.
  이것이 요즘 유일한 취미요, 형수. 이거 말곤 재미가 어디에가 있겄소.
  술 사러 갈 때마다 생각나면 한 장씩 산다고 했다. 삼촌은 늘 부스럭거리면서 주머니를 뒤져서 복권과 천 원짜리들 사이에 엉켜있는 만 원짜리를 내게 용돈으로 줬다. 그럼 나는 구겨진 만 원 한 장을 쭈뼛쭈뼛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라고만 하고는 방으로 틀어박혔다.
  내가 교과서나 뒤적이는 동안 거실에서는 간단한 술상이 차려졌다. 소주도 아니고 꼭 맥주만 마시는 삼촌은 맥주 두어 병을 못 이겨서 금세 혀가 꼬이고 얼굴이 불콰해졌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왜 그리 먹느냐고 아버지가 지나가는 핀잔을 하면 삼촌은 그때까지도 기분 좋게, 아니 취하니까 먹지 안 취할 거면 왜 먹겠느냐고, 형은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웃으면서 받아쳤다. 그럼 아버지도 하긴 그렇지, 하면서 웃었다. 마시는 술잔이 늘수록 삼촌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눈에 독기 비슷한 분노가 서리면서 돌변하는 순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시비를 걸고 화를 내고, 다 지나간 일들을 끌어왔다.
  목포에서 삼촌이 실려 갔던 그 봄에, 우리는 삼촌이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 혼자 살아서 집이 엉망일 거라며 아버지는 우리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만 잠깐 들어갔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 미지근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들어가 보고 싶어?
  언니가 물었다. 언니는 현관문에 붙은 전단을 떼어서 손에 쥐고 있었다.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현관문에 나 있는 흠집을 보면서 대답했다.
  나는 집 내부를 상상해봤다. 빈집은 벌써 주인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며칠째 멈춰있을 것이다. 값싼 안줏거리와 비닐봉지 따위가 아무렇게 있겠지. 그리고 담배꽁초도 있을 거다. 절반도 타지 않은 꽁초들. 기억 속에서 삼촌은 서너 모금쯤 들이마시다 담배를 꺼버렸다. 그리곤 얼마 안 지나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재떨이에는 유난히 길고 수북한 꽁초들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친척들 여럿이 모였다 흩어진 뒤에도 삼촌이 핀 꽁초를 구별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삼촌이 여전히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조금 착잡해진 눈빛으로 나왔다. 그리곤 온통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더라고 말했다. 본 적 없는 십여 년 동안 삼촌은 더 독하고 더 싼 술로 옮겨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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