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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Aug 31. 2023

되돌아가는 물음들 (3)

단편 소설

삼촌 상을 당한 첫날, 나는 엄마에게 문자로 부고를 전했을 뿐 예매해두었던 연극도 취소하지 않고 보고 왔다.
  저녁 공연에선 배우 한 명이 연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무대에 나와 있었다. 여덟 시 정각이 되자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어두워졌다. 부산스럽던 관객석이 잦아들고, 배우의 몸도 어둠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다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 생각했다. 저 배우는 매일 짧은 죽음을 겪는 걸까.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대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장 맨 위,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던 책들을 꺼냈다. 아주 예전에 삼촌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스무 권도 더 되는 그 책들은 모두 교도소에서 가져온 거였다. 중간에 팔거나 버렸던 것까지 포함하면 마흔 권은 족히 됐을 거다. 교도소에서 읽던 책을 밖으로 가져오는 게 원칙적으로 가능한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흐릿한 기억과 정황들을 맞춰보면 그랬다. 이 책들은 모두 발행 연도가 90년대 중후반이다. 내가 면회하러 갔던 시기와 얼추 들어맞는다. 전부 누렇게 색이 바랜 책들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이 책들은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 장이 하나같이 말끔하게 잘려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삼촌 책들은 주로 역사와 정치 서적이 많았다.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같은 제목을 단 책도 있었다. 시집도 꽤 여럿이었는데 박노해와 김지하, 피천득, 서정주와 박재삼과 박인환도 보였다. 의외였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삼촌은 시를 좋아했었나.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이라곤 책 읽기뿐이어서 그저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삼촌이 글에 관심이 있었다면, 본격적으로 썼다면 차라리 좋지 않았을까.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술보다는 건강한 방법으로 속에 뭉친 걸 풀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트로트도 그렇게 잘 부르고 달마도 혼자 따라 그렸다고 하니까. 삼촌이 화선지에 그려준 달마가 우리 집에도 한동안 걸려있었다.
  나는 책들을 보면서 오늘 아침에 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작은아빠가 좀 철이 없어서 웃긴 타입이기도 하고. 난 작은아빠가 딱히 싫지 않았어, 저 낡은 책들 때문에도.
  교도소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나는 삼촌이 준 책들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몰아놨었다.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까 봐. 언니는 언젠가 그중 한 권에서 삼촌이 쓴 편지를 봤다. 따로 편지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의 빈 페이지에 쓰인 건데 ‘사랑하는 내 딸 윤서야’로 시작한다고 했다. 삼촌은 첫 번째 결혼에서 딸을 하나 얻었지만, 복역 기간에 이혼했다. 그 뒤로는 전 부인과 딸을 그다지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삼촌의 부고를 전하지도 못했다.
  한 권 한 권 속을 펼쳐봤다. 깔끔하게 잘린 장들과 먼지들, 그리고 이따금 적어놓은 메모만 보일 뿐 편지는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 중고로 책을 팔아버리다 사라진 걸까. 아니면 그 장을 뒤늦게 발견한 엄마가 잘라내기라도 한 걸까.
  대신 다른 편지가 있었다.
  어떤 정치인을 다룬 책의 마지막 장에서였다. 이 책만 삼촌의 이름이 쓰여 있다. 꺾임이 큰 삼촌 특유의 필치로 일부러 큼직하게 쓴 거였다. 책 마지막 장에 ‘윤서 아빠!’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여섯 줄짜리 짧은 편지가 있었다. 파란 펜으로 쓴 그 문장들은 어째서인지 중간 네 줄이 같은 색 펜으로 마구 덧칠해져 읽을 수 없었다. 불빛에도 비춰가며 읽어보려 했지만, 알아볼 수 있는 건 ‘고생되고 춥지?’와 ‘어쩌겠어요’, ‘있으니까, 힘들어도 인내하세요.’가 전부였다. 그 아래 지워지지 않은 두 줄에는 ‘사랑하는 아내 미정’, ‘※딸이 자꾸 방해해서……’라고 쓰여 있었다.
  숙모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항상 딸의 이름을 넣어 ‘윤서 엄마’라고만 가족들 사이에서 불렸으니까. 짧은 글이지만 사랑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는데, 왜 지워진 걸까. 숙모가 한 것인지, 삼촌인지, 아니면 엄마나 다른 누군가가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둘째 날 이른 아침에 아버지는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잠시 집에 들렀다. 그리고 나와 언니에게 오늘 한 시에 입관이니 그 전에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다. 나는 오전에 수업이 있어서 못 간다고 바로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수업이 끝나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예전에 돈놀이할 때도 아버지는 저렇게 무르게 굴었으려나. 젊었을 적에 사채업도 몇 년 하고 큼직한 포커판도 드나든 걸 보면, 꼭 그렇진 않겠지. 내가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일면에 불과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빠지려면야 충분한 사유가 되었겠지만,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왔다. 죽음이 삶보다 더 우글거리며 살아있는 느낌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았다.
  나와 언니는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장례식장에는 친가 사람들만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을 도울 생각으로 왔다가 우리는 멀뚱히 서 있게 됐다. 아버지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리에 앉혔다.
  어제는 손님이 많이 왔다 갔어.
  원래 둘째 날이 제일 바쁘지 않아?
  아버지가 쓸쓸한 빈소를 감추려 둘러대는 걸까 싶었다.
  부고가 아침 일찍 전해졌으니까, 첫날인데도 많이 왔지.
  삼촌 손님은 없고 전부 형제간들 손님이었다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우리 쪽으로 편육이며 떡을 밀어줬다. 나와 언니는 손님처럼 음식을 삼켰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어제 이상할 정도로 삼촌을 그렇게 찾았다고 했다. 뭔가 알아채기라도 한 사람처럼 계속 삼촌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삼촌이 돈 벌러 외국에 간 걸로 얘기를 꾸며냈다. 배를 타고, 아주 멀리 갔다고. 평생 바닷가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스로 회복기에 들어선 참이었다.
  아버지는 삼촌이 할머니를 그렇게 간호해서 살려놓고는 정작 자기가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마치 삼촌이 생명을 할머니에게 주고 대신 떠난 것처럼 여겨진다는 뉘앙스였다. 삼촌의 생명력이 할머니에게 옮겨갔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비슷한 경험을 전에도 했다. 그때도 삼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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