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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Aug 31. 2023

되돌아가는 물음들 (4)

단편 소설

*

  그해 봄, 목포에 도착한 우리가 삼촌을 본 건 막 자정을 넘어서였다. 원래 중환자실 면회가 안 되는 시간이지만 의료진의 배려를 받았다. 생사를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인 탓이었다. 작은고모는 의식 없는 삼촌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과 발을 만지고, 귓가에 이름이며 다시 일어나라는 말을 계속 속삭였다. 병실까지 오는 동안 복도 벽에 기대듯이 걷던 작은고모였다. 아버지와 다른 친척들은 착잡하고도 쓸쓸한 눈으로 삼촌을 바라봤다. 죽음 곁에 선 삼촌의 호흡은 정말 거칠고 느렸다. 여기선 모든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병실에서 나와서 친척들이 모두 모이니 열댓 명은 족히 넘었다. 아버지 형제간들은 전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터를 잡고 있었다. 삼촌도 서울에서 살다 다시 목포로 내려간 지 일 년도 채 안 됐다. 이 많은 사람이 삼촌 혼자 살던 작은 집에 들어가기는 무리였다. 그렇다고 모텔을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얼마 안 걸으면 커다란 찜질방 하나 있응께, 그리로 가불자.
  맏이인 큰고모였다.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식사도 거르고 중환자실로 갔다. 어젯밤이 큰 고비라던 의료진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말만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삼촌은 지난밤보다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타들어 간 것처럼 몸이 까맣고 앙상했다. 나는 저 안에 이미 들어와 있을 죽음과 삶의 비율을 가늠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도 이렇게 버거운지 문득 궁금해졌다. 멀리 떨어진 자리에 노인 두 명, 삼촌 옆 침상에 어린 환자 한 명이 있었다. 열여섯, 아니면 열다섯 정도일 그 어린 환자는 어젯밤에도 있었다. 하지만 삼촌처럼 힘겨워 보이지는 않았다. 연결된 장치들만 아니라면 누구보다 편안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이는 왜 여기에 있을까. 침대에 붙은 이름표를 보았지만, 당연히도 병명은 적혀있지 않았다. 손유○. 만 14세. 이름 마지막 글자가 원으로 처리된 저 아이는 나이답게 이마에 여드름이 조금 올라온 채였다.
  삼촌을 다시 바라봤다. 이불 밖으로 투박한 발이 드러나 있었다. 엄지발가락에 길고 희미한 흉터가 보였다. 어릴 때 문지방에 잘못 찧어서 크게 다쳤다던 그 상처일까. 울음이 터진 어린 삼촌 옆에서 어린 아버지도 어쩔 줄 모르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아니면 삼촌이 첫 번째 아내와 살던 시기에, 집에서 깨트린 술병을 밟고 여름내 아물지 않아서 고생했다는 흉터일지도 몰랐다.
  중환자실을 나오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생각을 해봤는데, 장례는 치르지 맙시다.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좀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봤다.
  그게 뭔 소리다냐, 오빠야.
  막내 고모가 물었다. 서울말과 전라도 사투리가 묘하게 섞인 말씨였다.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지 않은 놈을 누가 조문하러 와주겠냐고, 우리 지인 중에도 목포까지 내려올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고 했다. 바로 화장하자고 했다. 막내 고모는 무슨 말을 꺼낼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야, 생기지도 않은 일로 벌써부터 그럴 것들 없어야.
  큰고모가 나선 뒤에야 우리는 소독약 냄새가 밴 중환자실 가운을 벗었다.
  아직 면회 시간이 절반쯤 남아 있었다. 우리가 가운과 마스크를 정리하는 동안 갓 중년에 들어섰을 여자 두 명이 면회 들어갈 채비를 했다. 둥근 눈매가 빼닮아서 누가 봐도 자매지간으로 보였다.
  이번 꿈에도 유민이 나왔는가?
  안 나왔어라.
  나는 바로 돌아봤지만, 그들은 이미 마스크를 끼고 중환자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둘 중에 누가 아이의 엄마일까. 그들 뒤로 문이 닫힌 뒤에야 내가 지금껏 그 아이의 이름을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병원에서 나오고 늦은 첫 끼니를 먹었다. 작은고모는 입맛이 없다며 상에서 물러나 앉았다. 어른들은 이런저런 화제를 입에 올렸지만, 대화 사이에 침묵이 자주 끼어들었다. 그런 순간에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어른들은 어떤 담담함을 붙잡고 있었다. 삼촌이 어제 병원에 실려 온 이야기도 나왔다. 동네 정복이 삼촌, 그러니까 어릴 적부터 아버지 형제간들과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내는 그분이 쓰러진 삼촌을 발견해서 구급차를 타고 왔다. 목포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삼촌은 잠깐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알랑 드롱이오.
  삼촌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금방 정신을 잃었다.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몇몇은 허탈하게 웃고, 몇몇은 웃지 않았다. 삼촌이 그간 집요하게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그 미남 배우와 삼촌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삼촌이 이번에 죽으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알랑 드롱이오, 가 되는 걸까.
  큰고모는 그래도 네가 가장잉께, 라면서 아버지에게 검은색 핸드폰 하나를 툭 건넸다. 삼촌의 것이라고 했다. 큰고모는 평생을 유흥업으로 살아온 사람답게 말도 행동도 거리낌 없고 무심한 데가 있었다. 핸드폰을 조금 만지던 아버지는 사진첩에서 한 여인의 사진이 여러 장 있는 걸 봤다. 커트 머리를 한 그 여인은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광대와 턱이 좀 발달한 편이라 삼촌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얼굴이었다. 사진첩을 넘길수록 그 여인의 사진이 더 나왔다. 어딘가를 보고 있거나, 사진을 찍었을 삼촌을 향해 웃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 사진들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어른들은 이렇게 다 모이기도 쉽지 않으니 할아버지 산소라도 찾아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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