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하는 빛과 통과하지 않는 빛 (5)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방에서 나와 수돗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큰외삼촌이 방을 더 천천히 둘러보길 기다리면서.
열기가 조금 누그러들긴 했지만 해는 여전히 뜨거웠다.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나는 바로 보이는 농기구 창고를 눈에 담았다. 정확히는 그 구석에 모여 있는 농약병 네다섯 개를. 병에 이름이 쓰여 있긴 하지만, 그 이름도 낯설고 나는 정확히 어떤 용도로 쓰는지도 모른다. 주말에 오는 큰이모와 작은외삼촌이 사용하는 것일 터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엄마의 형제들은 농약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들이 자랄 땐 논과 밭이 꽤 컸고, 복숭아며 수박이며 벼, 정말 많은 것들을 길러 냈다고 했으니까. 덜 여문 손으로 직접 농약을 치는 건 당연한 일과였으니까.
그러니까 엄마와 형제들은 외할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마신 농약이 어떤 종류인지도 아주 잘 알 거였다. 어린 시절의 평범한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히 떠오르는 그 장면들 안에 있던 농약 그리고 그 끝에는 늘 아버지의 죽음이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시선을 거두어 발끝을 내려다봤다. 그림자는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내 그림자와 시멘트 바닥, 그 위를 기어가는 개미를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들자 큰외삼촌이 와 있었다. 기척이 없었지만 어쩐지 곁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큰외삼촌은 별다른 말없이 옆에 앉았다.
나란히 앉아 있지만 그림자는 내 것뿐이었다. 고루 퍼지는 햇빛은 내 몸을 통과하지 못해 나를 닮은 그늘을 남겼고, 큰외삼촌에겐 그렇지 않았다. 큰외삼촌의 자리는 환하게 빛났다.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지금 엄마가 쓰는 전신 거울이 꽤 오래된 거예요. 그 한쪽에는 항상 큰외삼촌 사진이 붙어 있어요. 제 기억으로는, 어릴 적부터 있었어요. 거울을 바꿔도 엄마는 새 거울에 사진을 다시 붙였어요. 사진이 상할까 봐 투명 비닐 안에 넣어서.
큰외삼촌은 묵묵히 들었다.
그 사진들은 두 장인데 하나는 흑백 증명사진이에요. 작은 사각형 안에서 큰외삼촌은 교련복을 입었고 아직 어린 티가 나요. 다른 하나는 컬러 사진이에요. 아마 스물네 살쯤. 친구들과 놀러 간 길이었는지 밀짚모자에 청 멜빵바지를 입었어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고 있어요.
계곡에 놀러 갔던 때일 거야, 스물두 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그 거울 앞에 서 있는 보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제부턴가 궁금해졌어요. 엄마는 지금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걸까 아니면 일찍 죽은 형제의 모습을 보는 걸까.
큰외삼촌을 향해 물었다.
거울에 사진이 있는 거 알고 계셨어요?
지금 큰외삼촌의 표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 엄마가 들려준 적 있었다. 육 남매 중에서도 큰외삼촌이 유독 좋았다고, 형제가 많아도 같은 핏줄이라고 해서 모두와 잘 맞고 좋은 건 아니라고. 큰외삼촌한테 엄마도 그런 형제였을까.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물었다.
그건 알고 계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외갓집에 오면 가끔 산소를 찾아가던 거.
큰외삼촌은 그렇다고 했다.
엄마와 외할머니랑 함께 가서, 큰외삼촌과 외할아버지의 산소에 다 들렀잖아요. 그 앞에서 절을 하고 나면 저는 비석에 있는 이름과 날짜를 뜨문뜨문 속으로 읽어 봤어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물어왔다.
내 비석을 만져 보기도 했었지?
알고 계셨네요. 어른들 몰래 만져 봤어요.
왜 몰래 만졌어? 혼날까 봐 그랬나.
엄마도 외할머니도 비석을 쓰다듬으니까 혼날 행동이 아니란 걸 알았는데, 왜인지 어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걸까요? 한 번도 큰외삼촌을 만난 적이 없잖아요.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한 정적이 곁에 머무는 기분이었다.
나는 괜히 핸드폰을 꺼냈다.
노래, 들으실래요?
그 말을 하면서 슬며시 본 큰외삼촌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한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큰외삼촌은 영상 속 한대수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자그마한 화면 속에서, 이젠 큰외삼촌의 기억보다 훨씬 나이 든 한대수는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행복의 나라’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다른 옛날 노래를, 그리고 큰외삼촌이 떠올리는 노래들을 입력해서 틀고 있었다. 영상이 시작되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큰외삼촌은 어쩌면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뒤로는 젊었을 적에 듣던 그리운 노래를 들을 기회도 잘 없었을 거다. 조금만 적적하면 핸드폰으로 언제든 원하는 음악을 틀 수 있는 나와는 달리.
그런 큰외삼촌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제가 유독 예전 노래를 좋아해요. 이런 7080 노래, 옛날 대학가요제 노래.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노래들. 유튜브로 그렇게 듣다가 〈꿈의 대화〉라는 노래를 우연히 알게 됐는데 좋았어요. 이범용과 한명훈이 80년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노래요. 그래서 듣곤 했는데, 어느 날 집에 찾아온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적적해져서 음악을 틀었어요.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그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딱 첫 두 소절만 멜로디가 나왔는데 엄마가 대번에 <꿈의 대화>인 걸 알아차리더라고요. 나는 엄마가 이 시절의 노래를 자주 듣는지도 몰랐고, 좋아하는 노래인 줄도 전혀 몰랐는데.
그때 생각했어요. 어쩌면 한 번도 유전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던 것들도 유전일지도 모르겠구나.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면면을 내게서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것처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말들을 큰외삼촌에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생각했다.
내가 지금도 걸으면서 음악을 들을 때 이어폰을 꼭 한쪽만 끼는 것도, 운전석에 앉으면 몸이 굳는 것도 전부 큰외삼촌의 영향이었다. 유치원에 다닐 적부터,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출발 직전인 버스 앞까지 따라와 끊임없이 당부하곤 했다. 안전벨트를 꼭 매야 한다고. 차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건널목에서 신호가 깜빡이면 엄마는 절대로 뛰지 못하게 했다. 다음 신호에서 안전하게 건너야 했다. 지금도 나는 운전대를 잡을 때면 언제나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순식간에 파괴할 수도 있다고. 순식간에, 완전히.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