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을 버는 이유

소중한 사람과 행복한 시간 보내기

by 박소이

나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 두분께 따뜻한 밥 한 끼와 과일을 사드렸다. 명절때마다 빈손으로 가선 오히려 용돈을 받고 오니 늘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돈 벌면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과일을 사드려야지!' 할아버지는 달달한 음식을 굉장히 사랑하신다.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나도 마카롱, 케이크, 초콜릿이나 과일같이 단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당뇨병 때문에 드시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드실까. 남은 인생은 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기보다는 맘 편하게 드시고 싶은 것도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과일을 사가지고 갔다.



6살 때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매일 일을 하러 나갔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릴 키워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른 손녀, 손주보다도 유독 우리를 예뻐하신다. 직접 10년 이상 키우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도 명절 때 가면, 나랑 동생만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딱 붙어 있다. 친근한 덕분에 포옹을 비롯한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런 우리가 더 살갑게 느껴지시나 보다. 그런데 요즘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 오래 앓았던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닳아 걸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집을 지을 만큼 건강하고 힘이 넘치던 할아버지였는데 요즘에는 할머니보다 작게 느껴진다.



추석 때 가족이 전체 모이던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울먹이시며 "내가 죽으면..."이라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때, 할아버지의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늘 읽던 성경을 못 읽는 건 물론이고, 손까지 덜덜 떨고 계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내가 잘해드릴 날이 많이 남지 않았구나.' 그동안 바쁘다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집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만 오면 세상 누구보다 반가워하시고 신이 나시는데 말이다.



그 후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생전 최선을 다해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백수여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회사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취업했다고 하니 할머니께서 굉장히 기뻐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할머니는 "네가 돈이 어딨다고 그려! 7천 원짜리 순댓국이나 먹으러 가지, 왜 이런 비싼 곳에 왔어!"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래봤자 일 인당 만원 정도의 한식당이었다. 나는 더 비싼 걸 사드리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고집에 못 이겨 저렴한 식당에 가게 되었다. '그래, 저렴한 거라도 여러 번 사드리면 되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가슴속에 새겨두면 회사를 좀 더 오래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든, 화려하고 멋진 옷을 사고 싶어서든, 나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께 효도하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든 간에 돈을 버는 이유를 만들면 회사에 다니는 게 무의미하진 않을 거다. 정규직 됐다는 말에 기뻐서 활짝 웃으시는 할머니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 이 맛에 돈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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