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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Oct 19. 2023

해외살이 3년 차 나의 영어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어려워

2021년 6월부터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으니까 계산해 보면 벌써 이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일 년은 외국인과 대화라는 걸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6개월은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간 적이 없고 그다음 6개월 정도는 일주일에 한 번 영어수업 빼고는 다른 외국인을 만날 일이 없었다. 어떻게 해외에 사는데 그럴 수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참 신기하다고 대답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이곳에 아무리 많은 외국인이 있어도 대화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마트를 가건 식당을 가건 영어를 써야 하지만 정말 딱 필요한 영어만 쓸 뿐 그 이상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는 나도 아직 이곳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 나의 영어가 이상하다고 비웃으면 어쩌지 이런 마음이 컸던 거 같다.


2022년 8월 첫째가 국제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어를 쓸 일이 점점 늘어났다. 뭐 든 지 하다 보면 는다고 했던가. 집에서 아무리 미드를 따라 해도 터지지 않던 입이 자꾸 쓰니까 어찌어찌 말을 하게 되었다. 1학기에는 안 들리고 말도 못 해서 답답함과 좌절을 느끼다가 2학기부턴 조금씩 편해졌다. 학교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가다 보니 친해진 외국인 엄마도 생기고 일단 말을 하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알아서 이해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공부는 쭉 꾸준히 했다. 하루에 2시간씩 미드도 보고 해리포터도 읽고 일주일에 한 번 학원도 갔다. 그런데 첫 일 년과 차이점이 있다면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내가 진짜 해야 할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달랐다. 예를 들어 상담이 있으면 선생님과 대화화기 위한 문장들을 만들고 암기했고 엄마들끼리의 모임이 있으면 그때 필요한 문장들을 외웠다.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주 쓰던 말은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2023년 6월 이번 여름에 한국에 잠깐 다녀왔을 때 오픽 테스트를 봤다. 결과는 IH였고 10여 년 전 취업준비 했을 때 보다 두 단계 정도 올라있었다. 결과를 받고 테스트가 꽤 정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을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지만 정말 완벽하게는 할 수없고 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 못하는 나의 실력에 딱 맞는 점수였다.


8월에 새 학기가 시작됐다. 이번 학기엔 나의 영어 스피킹 실력을 확실히 높이고 말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첫째 학교 한국어머니회 활동이 생각보다 엄청 바빴다. 한 달 반을 정말 처음으로 영어공부를 하나도 못했다. 미드건 책이건 하나도 못 보고 외국 엄마들과는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이때는 갑자기 영어를 쓸 일이 생기면 잠깐 멍해졌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어머니회 행사들이 끝나고 한글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다시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한글날 행사를 도서관 사서님과 함께 준비해야 했는데 내가 사서님과의 대화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평소에 외국엄마들 하고 대화하던 것 정도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사서님과 행사와 관련한 대화를 하다 보니 업무의 영역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 다른 엄마들하고는 늘 비슷한 대화를 했었고 서로의 상황을 대충이라도 이해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사서님과 할 필욘 없고 행사와 관련한 정확한 사항들을 이야기해야 했다. 이때 깨달았다. 나의 영어는 대충대충 영어였구나라는 걸. 업무를 하다 보면 대화를 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내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결국 나는 등하교를 하며 하루에도 두세 번씩 만나는 사서님과 메일로 대화를 했다. 사서님은 만날 때마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던 거 같은데 나는 온갖 핑계로 도망갔다. 좋은 사이버 친구가 생겼다며 농담을 하긴 했지만 좀 많이 아쉬웠다. 복직하면 영어로 업무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작은 기대는 택도 없는 걸로 결론이 났다.


올해가 벌써 두 달 밖에 안 남았다. 내가 보기에도 핑계지만 학교 생활이 정말 바쁘다. 이번엔 할로윈을 준비 중이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 앞으론 영어공부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귀국할 때까지 1년 더 하면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잘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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