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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Sep 26. 2023

어쩌다 보니 탈춤

한국어머니회 대표라니..

첫째가 8월부터 1학년이 되었고 나는 한국어머니회 대표가 되었다. 한국어머니회 대표라니...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내가 굉장히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 단지 카카오톡 사다리 타기 게임이 나를 뽑았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56 가족의 대표가 되었다.


다행히도 대표는 3명이라 부담은 덜 했다. 언니들이 워낙 잘해줄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빠릿빠릿한 대리 같은 포지션으로 일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딱 하나 내가 주가 되어서 이끌어야 하는 행사가 있었다. 작년에는 참석도 안 한 그저 박수만 열심히 치던 그 행사. 바로 글로벌 빌리지 데이였다. 이름 만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뭔가를 해야만 할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 행사에서 한국아이들 할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34년 동안 남들 앞에서 춤을 춰본 적이 없다. 나는 정말 평범하고 평범한 아이였고 어른이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거 안 좋아하고 클럽도 한번 못 가본 내가 춤이라니.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부담스러웠는데 본격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더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어쩌 어찌 공연할 학년을 정했고 운 좋게도 우리를 도와줄 한국무용을 전공한 어머님도 만나게 되었다.


이 어머님 그러니까 우리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며 의욕에 넘친 나는 어른이 함께 올라가야 무대가 훤씬 예쁘다는 소리에 내가 올라가겠노라 선언하고 말았다. 일단 무대에 서겠다고는 했는데 어른 한 명만 무대에 서는 것은 누가 봐도 부족할 거 같았다. 그래서 같은 반 한국인 엄마에게 함께 하자고 물어봤는데 정말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자고 하셨다. 그때는 이것만으로도 공연이 완성된 거처럼 정말 기뻤다.


하지만 이 기쁨은 첫 연습과 함께 와장창 무너졌다. 예상했던 데로 나는 춤을 못 췄다. 나의 단 하나의 희망이라면 함께하는 한국인 엄마였다. 나는 처음 춰보는 탈춤에 박자도 못 맞추고 동작도 안되고 아주 엉망진창이었는데 이 언니는 정말 잘하는 거였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때 풍물반이었단다. 역시 뭐든지 경험하면 언제나 쓸데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언니에 기대며 둘이서 세 번의 연습을 더 했다.


동작이 얼추 외워지고 언니가 워낙 잘하니까 사실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다른 행사일이 바쁘다는 핑계에다 나는 원래 못하는 사람이니까 라는 핑계까지 더 해졌던 거 같다. 애들 공연에 이 정도면 잘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도 있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한 거 같다. 나는 내가 맡게 된 어떤 일도 대충 하는 성격은 아니다. 뭐든 정말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이건 내가 못하는 거야라고 처음부터 나를 단정 지으니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나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던 상태로 아이들과 선생님과 함께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애들이 동작을 외울 수 있을까 이런 걱정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2시간의 연습동안 가장 많이 지적받은 건 나였다. 내 쪽에 있는 아이들이 나를 보고 따라 했기 때문에 내가 노래에 맞는 춤동작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동안 언니를 보며 쫓아갔던 게 티가 났다.


계속 선생님한테 지적받으니까 한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왜 못해요?"라고 물어보고 함께 연습하고 있던 첫째도 "왜 선생님이 엄마 잡고 뛰어다녔어?"라며 질문을 해댔다. 그때부터 정말 창피해져서 몸이 더 굳었다. 그러니까 더 못하고 지적받고 악순환이었다. 으쌰으쌰 힘내야 할 내가 죽상을 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가만히 음악을 들어봤다. 계속 들으니 음악의 박자가 느껴지고 언제쯤 무슨 동작을 해야 할지도 느껴졌다. 선생님이 말한 음악을 들어봐야 한다는 소리가 이거구나 싶으면서 자연스럽게 춤이 정확하게 외워졌다. 다음 연습까지 남은 일주일을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낮이건 밤이건 시간이 있으면 노래를 틀어놓고 계속 춤을 췄다. 나중에는 둘째도 옆에서 따라 출 정도였다.


다행히 마지막 연습날은 그동안의 노력이 티가 났다. 언제 어느 동작을 들어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외우고 나니 저번 연습 때 못했던 게 더 창피했다. 이렇게 처음부터 노력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역시 뭐든 대충 하면 안 된다.  같이 하는 언니도 이제 딱 맞는다며 칭찬을 해줬는데 그동안 답답했었는데도 말 안 했구나 싶어서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대망의 공연날. 전날 밤 너무 떨려서 거의 잠을 못 잤지만 긴장해서 그런가 피곤하진 않았다. 마지막 순서로 공연을 하는데 아이들도 그렇고 우리들도 그렇고 연습 때보다 훨씬 잘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있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잘해주었다.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기특했다. 내 아이도 함께했지만 엄마와 딸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모든 아이들이 예뻤고 함께한 언니와 선생님이 고마웠다.


학교에서 하는 고작 2분여의 공연이 이렇게나 떨리고 감격스럽고 또 배울게 많을지는 몰랐다. 연습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공연을 또 하느니 차라리 영어단어 천 개를 외우겠노라고 투덜거렸지만 재밌었다.


내년 글로벌 빌리지데이에 기회가 생긴다면.... 또 참여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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