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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Aug 24. 2023

섬세하고 여린 우리 둘째

임신을 하고 남자아이라는 걸 확인한 후부턴 늘 힘들 거다 각오해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첫째인 딸과는 다를 거라며 겁을 주는 주위의 사람들 말에 걱정스럽긴 했지만 어쩐지 그냥 아이가 순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그렇다.


3살(42개월) 둘째는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처럼 자동차 좋아하고 로봇에 열광하지만 순하고 여리며 섬세하다. 때때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늘이 색깔이 예쁘다거나 구름이 특이하면 여지없이 가족에게 알려준다. 얼마 전엔 어마어마하게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둘째 덕분에 봤다.


"엄마 엄마 하늘 좀 봐봐" 한껏 웃으며 달려오는 둘째 때문에 엉겁결에 하늘을 봤을 때 눈앞에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다. 첫째도 불러서 베란다에서 무지개가 희미해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봤다. 이날 둘째를 고맙다며 얼마나 칭찬해 줬는지 모른다.


난 둘째가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고 예쁜 꽃이 있으면 감탄하는 것도 좋다. 둘째가 가만히 앉아서 주위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 같이 옆에 있으면 나도 같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런데 요즘 아이의 얌전함과 여림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둘째가 남자아이 치고 활동적인 편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누나랑 소꿉놀이하고 블록 만들면서 노니까 정확히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또래 남자애가 없어서 주로 첫째의 친구들인 누나들과 노니까 더 몰랐던 것도 있다.


그러다 얼마 전 둘째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유치원 친구와 키즈카페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 날 우리 둘째가 확실히 활동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둘째보다 5개월 어린 남동생과 1살 형아와 함께 있었지만 같이 놀진 못했다. 우리 둘째가 친구들이 노는 것처럼 뛰어다니며 놀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키즈카페 안을 한 바퀴 돌동안 둘째는 반바퀴는커녕 따라갈 생각도 안 했다. 한쪽에서 블록을 만들던가 볼풀장에서 놀았다. 키즈카페 구석구석 들어가는 걸 무서워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따라가지도 않은 거였다. 그리고 속도도 무척 느려서 같이 놀게 될 때도 시작만 같이 할 뿐이었다.


둘째는 예전에는 자기와 함께 놀던 동생이 이제 자기 말고 다른 형아를 쫓아다니는 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거 같았다. 입이 삐죽 나와서 섭섭해하는 걸 보는데 마음이 어찌나 짠하던지 그동안 운동을 안 시킨 걸 후회했다. 첫째는 딸이라서 겁이 많고 몸이 느려도 딱히 티가 나지 않았는데 둘째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순간 나중에 학교 가서 운동 못한다고 치이거나 하면 어쩌나 싶어 확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날 느낀 걸 남편에게 말해줬다. 남편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둘째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거 같다.


둘째는 한 달 전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혼자였으면 절대 안 들어갔을 텐데 다행히 누나랑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군소리 안 하고 참여하고 있다. 씩씩하게 뛰어다닌 다는 소리는 절대 할 수없고 엄청 느리지만 누나 쫒아서 쫄래쫄래 뛰어다니는 게 참 귀엽다.


얼마 전 둘째가 나한테 결혼을 하자고 하더니 불을 다 끄곤 거실에 있는 은은한 조명을 켰다. 그러더니 그 가운데 서서 나한테 딴~딴~딴~딴 하면서 춤추자고 제안을 했다. 난 둘째의 이런 섬세한 점이 정말 좋다. 사랑스럽다. 그래도 조금만 더 운동은 잘했으면 좋겠고 슬프다고 쉽게 울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씩씩하면서도 섬세하고 사랑스럽게 자라기를 바라면 너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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