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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Oct 11. 2023

물고기 밥 줘야지

이번엔 물생활

우리 집에 어항도 생겼다. 나무에 물 주고 물고기 밥 주고. 덕분에 아침이 더 바빠졌다.

그런데 난 정말 물고기를 키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매일 물고기 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빠져버렸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난여름방학, 같은 콘도에 알고 지내는 가족이 여행을 간다며 일주일간 물고기를 부탁했다. 유치원에서 선물로 받았다는 빨갛고 작은 물고기는 유치원에서 받은 그 상태 그대로 나에게 맡겨졌다. 그 엄마도 나도 물고기를 키워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대충 들은 정보로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었다. 이틀이 지나고 물고기 키우기 정말 쉽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전날 밤까지 쌩쌩하던 물고기가 아침에 죽어있었다.


참 이상했다. 죽은 물고기를 본 게 처음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매일 보는 건데도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엄청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 물고기도 아니고 심지어 그렇게까지 친한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되다니. 그 집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즐겁게 여행 중인데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하지? 결국 내 답은 '똑같은 물고기를 사주자'였다.


그 길로 수족관으로 갔다. 사장님은 어항이 너무 작았다는 답을 주셨다. 그래서 같은 물고기 2마리를 사고 적당한 사이즈의 플라스틱 어항을 샀다. 그런데 너무 심심해 보여서 바닥재도 사고 플라스틱 수초장식도 샀다. 예뻤다. 알록달록한 어항에 빨간 구피는 내 눈도 사로잡고 아이들의 눈도 사로잡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제 돌려줘야 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너무 아쉬웠다.


이번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수족관으로 나의 어항을 사러 갔다. 비슷한 플라스틱 어항에 플라스틱 수초에 2마리의 구피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물생활은 시작됐다.




내가 뭔가를 키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식물 키우기도 재밌더니 물고기는 더 재밌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어찌나 이쁘던지 멍하니 지켜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다른 사람은 어떤 물고기를 키우나 궁금해져서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에게 멋진 어항과 물고기들을 알아서 보여줬다.


뭐든지 비교가 무서운 거라고 했던가. 점점 내 어항이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수초어항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커다란 유리어항에 아름답게 자란 수초들과 그 사이를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작은 물고기들. 이런 어항 하나만 있어도 집 분위기가 다르겠다. 예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소일, 수초, 이산화탄소, 여과기 등등을 알아보며 어떤 어항을 할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나는 요 몇 달간 너무 바빴다. 특히 탈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서 뭔가를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모든 행사가 끝난 주 주말에 온 가족을 이끌고 수족관으로 출동했다. 이미 남편도 물고기의 매력에 빠져있어서 내가 사자는 데로 군말 없이 물건을 챙겼다. 오히려 남편이 더 좋아했다. 어항도 더 큰 걸로 사게 하고 여과기건 수초건 신나게 골랐다.


어항 공부는 내가 더 많이 했기 때문에 나의 의견에 따라 어항을 세팅했다. 상상과는 다르게 쉽게 수초어항을 만들 수가 없었다. 소일의 분진이 가라앉지 않아서 남편과 둘이 유튜브를 찾으며 다시 공부했다. 부족한 부분을 찾고 다음날 온 가족이 수족관에 또 갔다. 사장님이 전날 필요할 거라고 사라고 했던걸 사면서 멋쩍게 웃었다. 역시 전문가의 말은 잘 들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물이 깨끗해졌다. 이번에 사 온 물고기까지 총 4마리의 구피를 넓은 어항으로 옮겨줬다. 남편과 서로 잔소리를 해가며 위치를 잡은 돌과 유목과 수초들에 조명까지 키니 정말 예뻤다. 아이들의 감탄하는 소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 온갖 도구로 청소를 해야 하고 이끼 낄까 봐 걱정도 해야 하고 생각보다 자라지 않은 수초가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이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항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귀엽다. 내 취미가 내 가족을 즐겁게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그런데 자꾸 다른 것도 키우고 싶다. 해수어도 키워보고 싶다. 복어가 참 예쁘던데.. 물생활에 빠지면 어항이 늘어나는 속도가 물고기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르다더니..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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