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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Feb 26. 2023

내 생일은 아들생일 전날

미역국은 없지만 꽃다발은 받았네

올해도 어김없이 내 생일과 둘째의 생일이 돌아왔다. 작년엔 둘째가 너무 아파서 생일이고 뭐고 아이가 빨리 좋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했다. 그런데 올해 또 둘째가 감기에 걸렸다. 사실 아주 약한 감기라 내 생일날 이미 다 나았는데 그저 다음날 열릴 둘째의 생일파티에 지장을 줄까 봐 조심하느라 집에 있었다. 그동안 친구들 생일파티를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마음 편하게 둘째 껴안고 뒹굴뒹굴 놀고 둘째 생일파티에 보낼 구디백을 만들었다. 구디백이란 유치원에서 하는 생일파티에 축하해 준 아이들에게 보낼 작은 선물이다. 보통 저렴한 장난감과 과자 몇 개를 넣어서 만든다. 미리 사다 논 과자와 장난감으로 후딱 만들었다. 만들 땐 별거 아닌데 다 만들걸 보고 있음 뿌듯하다. 그리고 미역국은 먹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내 생일날 미역국은 먹지 않을 거 같다. 왜냐하면 다음날 먹을 거니까. 아이들이 미역국을 좋아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먹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그러면 한 번에 만들어서 나는 내 생일날 먹고 둘째한테 다음날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아이에게 새로 만든 미역국을 주고 싶다. 그렇다고 이틀 동안 만들고 싶지도 않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도 나는 아마 앞으로도 내 생일날은 미역국을 안 먹을 거 같다.


그래도 올해는 말레이시아에서는 못 먹지 않을까 싶었던 걸 먹었다. 바로 시래기 된장국. 나는 한식을 정말 사랑한다. 이곳에 있으면서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즐기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 꼭 우리 아빠 같은 식습관이다. 특히 배추 전, 시래기 된장국, 감자계란말이를 엄청 좋아한다. 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자주 해주던 거다. 하얀 밥에 시래기 된장국에서 꺼낸 시래기를 넣고 고추장 듬뿍 넣어서 슥슥 비벼 먹는 게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맛있었다.


한국에 있을 땐 엄마랑 시어머님 덕분에 자주 챙겨 먹었는데 여기선 먹기가 힘들다. 배추전이나 계란말이는 내가 해 먹는다고 쳐도 시래기 된장국은 어렵다. 할 줄도 모르고 유튜브 보고 어떻게 해본다고 해도 나만 좋아하는 음식이라 그 정도의 수고까지 들여서 하기도 어렵다. 사실 귀찮다. 나의 시래기 된장국사랑이 겨우 이 정도였구나 싶다. 그런데 이번엔 먹었다. 심지어 생일날 아침에. 근천에 한인 식당이 있는데 사장님이 며칠 전부터 반찬을 매일 조금씩 팔기 시작하셨다.


이번주엔 어쩜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만 파시던지 유모차 끌고 신나게 다녀왔다. 그리고 생일날 아침 아이를 먼저 먹이고 티브이를 틀어주고 나는 나만의 만찬을 가졌다. 정말 좋았다. 나름 즐거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둘째랑 장난감 놀이 실컷 하고 첫째를 데려와서 또 씻기고 먹이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남편 한데 연락이 왔다. 일찍 못 가서 미안하다는 연락이었는데 나는 좀 의아했다.


이틀 연속 칼퇴가 쉬운 건 아니니까 금요일에 일찍 오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그렇게 다 이야기했는데 미안해하니 그저 조용히 있었다. 살짝 삐진 척도 한 거 같다. 남편도 많이 늦는다 했고 특별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하면 아쉬우니 조각케이크 하나 샀다.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에 초를 7개를 꼽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혈을 기울여 초를 꽂고 아이들 해피벌스데이노래도 들었다.


그날 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퇴근을 했다. 진짜 아무 기대도 안 했지만 꽃다발을 보니 솔직히 좋았다. 이런 로맨틱한 면이 있었군 하며 감동받고 있다 안에 있던 카드에 웃음이 빵 터졌다. 카드에는 '생일축하해' 글씨가 누가 봐도 대충 쓴 느낌으로 휘갈겨져 있었다. 이건 분명히 누가 쓰라고 시킨 게 틀림없다. 누가 시키건 어쨌건 편지를 쓰다니 엄청난 발전이다.


남편이랑 애들 노래덕에 충분히 넘치게 생일다웠다.



다음날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미리 주문해 둔 케이크도 무사히 전달하고 저녁땐 가족끼리 생일파티를 했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처음 해본 우리 둘째의 그 행복한 표정과 또 유치원에서 생일파티 하고 싶다던 그 신나는 목소리가 나한텐 최고의 생일선물이다. 벌써 세 돌이라니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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