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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Jan 30. 2022

팀장의 명절


 한 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인 설날. 추석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로 꼽히는 설날이 되면, 떠오르는 팀장님이 있다. 그리고 그 팀장님을 만난 이후로 앞으로 내가 팀장이 되면, 매년 설, 추석에 꼭 시작해야지. 라고 마음먹은 일이 있다.


 그 사연의 시작은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사회초년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넌 20대 초중반에 아직 젊으니까 기회가 많잖아. 다른 일을 한 번 알아보는 건 어때? 이 일은 너랑 안 맞는 것 같지 않아?"

미나의 첫 팀장님이 어느 날 저녁에 나를 불러 한 이야기다.


 그때의 미나는 일을 열심히 할 줄만 알지 요령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었다. 제약업계에서는 영업을 할 줄 알아야 마케팅도, 인사도 할 수 있고 성공한다는데 영업이 뭔지도, 어떻게 해야 성과 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몰랐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 언니들은 3개월, 6개월도 채 안되어 떠나고 소수의 동기들만 남았다.


 첫 직장에서 일로 인정받고 싶었다. 헌데 첫 팀에서의 얄미운 직속선배는 '일은 많이 하는데.. 너는 일만 많이 한다.' 는 얘기를 했다. 첫 팀장님 또한 열심히 하고 싶은 미나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 보다는 왜 결과가 이것밖에 안되냐. 채근하기 일쑤였다. 점점 자신감을 잃었고 현실 도피를 위해 어떤 날은 퇴근하면 초저녁부터 잠만 자거나 어느 날은 영업을 나가서 고객들 만나러는 안 가고 하루 종일 까페에서 딴 짓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기 싫다는 마음이 있어서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말을 듣고도 마이웨이로 성공하고 말거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일반 제약영업과 방식도 서비스도 달랐던 우리 부서에서 분명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매 분기 우리가 고객들에게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 사례를 공유하고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미나가 1등이었다. 헌데 실적은 비례해서 오르지 않으니 참 애석한 노릇이었다. 그 때의 나는, 사내에서 유일하게 차도 없이 영업하는 뚜벅이였다.


 그러다 새로운 팀장님을 만났다. "야, 너는 왜 차를 안 사냐?" 말하던 이전 팀장님 대신, 새로운 팀장님은 함께 고객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본인 차에 나와 무거운 짐들을 태워가며 이 고객, 저 고객들을 만나러 다녔다. 저녁에 늦게 남아 거래처에서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여자혼자 위험하다며 꼭 함께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셨고 팀원들과 일을 나눠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팀 워크샵이라도 가는 날이면 본인이 직접 차 렌트와 운전은 물론이고 관광 코스와 맛집까지 다 정리해서 팀원들을 '대접'해주셨다.


 이런 팀장님이 "너는 네가 제공하는 서비스 퀄리티에 대한 강점이 있다. 너를 먹여살릴 소수의 고객을 만들자. 너는 분명 잘 될거다. 그리고 후배들도 네가 가르쳐줘." 라고 말씀하시니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몇 년간 마음 여기저기에 났던 생채기가 이 분을 통해 아물고 있었다.


 결국 미나는 후배들에게 내가 잘 하는 영역- 병원의 홍보나 마케팅, 직원관리 매뉴얼 등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힘들어하는 우리 고객들을 도울 방법들을 가르쳐 주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후배라고 해도 다 미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팀장님께서는 철저하게 선임으로 내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잡아 주셨다. 우리 팀이, 팀장님이 자랑스럽고 좋았다.


 그러던 어느날, 지방에 계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XX 님이 너네 팀장님이시니~? 엄청 좋은 굴비세트를 집으로 카드랑 같이 보내주셨네?"

"우리 팀장님 성함은 맞는데... 뭐지?? 엄마 한번 내가 알아볼게~" 전화를 끊고 메신저를 통해 엄마가 보낸 사진을 봤다.

 카드에는 '어머님,아버님, 우리 XX를 잘 키워주시고 저희 팀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XX는 잠재력이 아주 크고 강한, 팀에서 가장 필요한 친구입니다. 앞으로도 XX를 잘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일만 죽어라하고 성과는 못 내는 바보에서 큰 잠재력을 지닌,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있었다.

 미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가능성을 인정해주며,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던 팀장님.

새 팀장님을 만나고 미나의 성과는 쑥쑥 올랐고 더이상 그 누구도 일만 많이 하는 직원으로 미나를 부르지 않았다. 결국 미나가 원래 하고 싶던 일이던 인사팀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공식적으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팀장님과 함께하던 그 시절이 지나갔고 이제 나는 더이상 그 회사에 없지만, 어김없이 명절이 되면 이전에 화려한 단풍나무들이 둘러싼 글램핑장에서 팀원들과 함께 구워먹던 고기가 생각나고, 한겨울에 다함께 팀장님이 모는 차를 타고 가서 구경하던 월정사와 전나무 숲길, 수많은 맛집과 전국 방방곡곡에서 함께한 그 때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미나는 더 이상 제약회사의 직원이 아니고 모두들 그때의 자리가 아닌 다른 팀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매년 적어도 한 번은 이전 멤버들이 모두 모여 술 한잔 기울이며 근황을 나누고 이전을 추억한다. 모두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한 모습이다. 팀장님은 입버릇처럼 "느그들이 계속 더 잘되야 이렇게 계속 만날수 있데이~ 나도 물론이고." 말씀하시곤 했다.


 새로운 팀원을 맞이한 올해, 미나는 어떤 메시지로 우리 팀원의 부모님께 명절맞이 카드를 보내야 좋을지 고민한다.

언젠가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팀장님처럼, 팀원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남을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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