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겨냥, MZ세대 공략, 살아남으려면 MZ세대와 소통해야 된다’ 등, 뉴스와 신문에서 단 하루도 ‘MZ세대’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을 날이 없다. 누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뜻을 찾아보니 80년대 초~2000년대까지 출생한 세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MZ세대’라 일컫는다고 했다.
한편, 직장생활을 하면서 ‘MZ세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이렇다.
“이건 제 업무가 아닌데요?” “저는 빠질게요” “아니오!”
선배 눈치나 팀장 눈치 보지 않고 일하고, 쉬고, 퇴근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세대. 승진 보다는 워라밸, 회사에 대한 로열티나 야망이 부족하며, 개인적임을 뛰어넘어 심지어 이기적이라고까지 이야기되는 세대. 모 대학 교수는 MZ세대의 특성을 직장 내, 사회에서의 ‘긍정적 반대자’ 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미나는 MZ세대 팀장이다. 어느덧 직장생활은 10년이 넘었고 팀장도 3년차에 접어든다.
MZ세대스러운 미나의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팀원시절 하고싶은 말 또는 정의감에 넘쳐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말은 꼭 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팀장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 맘고생도 많이 했다. 모든 여직원들에게 한 번씩 추파를 날리던 팀장에게 나는 칼같이 거절하고 잘라냈으며 불편한 내색을 드러냈다. 그러다 계약직 여직원에게 술자리에서 추근덕대던 팀장의 얘기를 듣고는 회장님 비서실, 사장실부터 찾아 올라가는 용감함을 발휘하기도 했던 모습도 그 중 하나다.
그 팀장과는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맞았다. 온 몸과 마음을 다 갈아 넣어 일을 하고 성과를 내서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사내공모에 합격해 다른 부서에 발령 받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팀장이 이를 고꾸라트렸다. 이뿐이던가, 연봉협상 시기에 미나는 본인의 성과와 평가에 상응하는 연봉인상을 받지 못해 팀장에게 장문의 메일을 썼다. 내가 생각하는 합당한 수준, 그 근거와 함께 앞으로의 성장계획까지도. 하지만 애초에 그 팀장과 맞지 않았던 미나는 결국 일한만큼 인정받지 못했고, 밖에서 다른 기회를 찾아야 했다. 당시의 기성세대였던 그 팀장은 다른 팀원 앞에서 미나를 ‘쟤는 싸가지없어서 안돼’ 라고 했다나 뭐라나.
요즘의 ‘MZ세대 답지 않은 미나’를 돌이켜보자면, 나는 사실 인턴, 신입사원 시절부터 회사나 일보다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야근과 회사 일이 자랑스러웠고, 욕심이 많았다. 아침이면 멋진 정장에 반짝이는 얼굴, 당당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그 당시 가장 인정받던 옆 팀의 여성 팀장님이 미나의 롤모델이었다. 그 분처럼 되고 싶었고 그 분 앞에만 가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진짜 원하는 것을 눈앞에 두었을 때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기억하는가? 빨리 커리어우먼이 되고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 많이 하는 것, 야근, 회식, 없어진 주말, 모두 전혀 신경 쓸 거리가 되지 않았다. 남자친구들도 너는 항상 일이 1순위잖아! 라며 서운함을 토로하기 일쑤였다. 회사 동기들은 이런 미나를 보며 ‘야망녀’라 불렀다.
그리고 그 야망녀는 어느날 팀장직을 제안받았다.
미나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은 외국계 광고회사다. 한국 군대, 미국 군대라 불리던 EX-회사들을 뒤로하고 선택한 세 번째 직장이기도 하다. 어느 산업보다도 빠른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일해야 하고 구속을 싫어하며,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모인 이 곳은 대부분 일반 눈에 손쉽게 보이는 재화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무형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곳이다.
20여년 전,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외모의 원빈이 장발을 휘날리며 등장하던 광고쟁이 드라마 ‘광끼’부터 8여년 전 ‘광고천재 이태백’까지. 드라마에도 자주 소재로 등장하던 광고쟁이, 또는 XX대학의 몇몇 광고홍보학과들은 학창시절의 나에게 꽤나 힙하고 멋진 사람들의 ‘핫 플레이스’처럼 보였다. 비록 직접 광고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흥미와 기억과 함께 세 번째 회사는 광고회사를 택하게 되었고 합격통보를 받아, 미나 나름의 광고(회사의 인사)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인사팀의 근무공간은 대표님 바로 옆 공간이었다. 반 년쯤 지나고 나서였을까. 어느 날부터 팀장님이 대표님 보고를 들어가거나 미팅을 할 때마다 미나를 데리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표님과 일하는 스타일이나 성향이 꽤나 다르던 팀장님이, 방패막이로 나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나가 있어야 큰 소리가 안 난 다나 뭐라나. 두 분이 하는 이야기를 열심히 속기사처럼 받아 적고, 또 받아 적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귀로는 들리지만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처음 듣는 광고계의 은어와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받아 적으며 또다시 반 년이 지나갔다.
갑자기 대표님이 팀장님도 없이 둘이 점심을 같이 먹자 하셨다. 그 날, 점심과 연이은 티타임을 3시간 넘게 가졌는데 핵심은 “너 위로 사람 뽑을래, 아니면 아래로 사람 뽑을래?”, “네가 만약 팀을 이끌게 된다면 걱정이 되는 부분이 뭐야?” 와 같은 질문이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내 마음속 문을 두드렸다. 언젠가는 미나도 리더가 되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네! 저 해보고 싶습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선뜻 대답하지 못한 것은 나를 거쳤거나 내가 지켜본 수많은 팀장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까.
결국 미나는 내 위로도, 아래로도 이력서를 받고 모두 면접에 참여하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하다가 잘 안되면 어때? 그래도 해보고 내려오는 게 가만히 팀원으로만 있던 것보다 낫지!’ 그리고 나서는 내가 맡게 될 HR팀의 풍광을 그려 보기 시작했다. 전년도에 주로 팀에서 했던 업무영역과 성과, 잘한 점과 보완할 점은 무엇이며, 내년, 그리고 앞으로 회사 비즈니스에 기여하고자 하는 부분과 과제들은 무엇인지. 내가 걱정되는 부분과 도움받고자 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그 날부터 팀장생활은 시작되었다. 윗사람, 아랫사람, 동료들에게 처음부터 100점짜리 팀장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함께 성장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자' 라는 새로운 야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