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동.
“복동아~! 복동씨~!” 하고 1900년초 초반 태어나신 우리네 할머니들 성함으로 가장 많이 불렸을 법한 이 단어는, 사실 요즘 캐주얼한 채용공고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MZ세대 타깃의 줄임말이다.
기업들은 대부분 수시채용으로 전환해 경력직들을 여기저기서 흡수하고자 너나할 것 없이 최고의 복지,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이게 보이기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취춘생들도 취업이 어렵다지만 선배들에게 들었는 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봤는 지, 막상 기회가 주어져도 예전처럼 앞뒤 안 가리고 Yes! 를 외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다 비교하고 따져보고 Offer를 받아들이는 깍쟁이들도 점점 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채용공고에 자주 등장한다는 줄임말 ‘최복동’, 과연 무슨 뜻일까?
‘최고의 복지는 동료다’ 라는 뜻의 줄임말로, 다른 금전적 보상 또한 좋은 복지가 될 수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복지는 일이 힘들고 고달플 때 같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고, 서로 의지가 되는 “동료”라는 이야기다. 그런 동료가 있다면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다.
미나는 지난 회사생활을 영화 다시보기 처럼 되돌려 보며 ‘나의 최복동’을 떠올려봤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참 힘든 시기가 많았는데 그만두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운 좋게도 좋은 동료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이라는 퀘스트를 깨고 드디어 원하고 바라던 인사팀에서 오퍼를 받아 인사쟁이로 처음 일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팀장님은 교육파트 내 미나의 사수이자 동료로 한 여직원인 지이를 배정해주었다. 입사시기는 거의 비슷했지만 인턴부터 인사팀에서 시작해서 쭉 채용/교육 업무를 담당해오고 인사팀의 모든 히스토리를 잘 알고 일 잘하기로 인정받던 직원이었다.
‘아무리 인사팀에서 먼저 오래 일했다지만 나도 내 방식으로 잘 할 수 있는데…’ 생각해 보면 이제 막 업무를 전환한 주니어 사원에게 처음부터 프로젝트 단위의 일을 맡길 수가 없다는 게 당연했다. 헌데 그때는 미나 앞으로 온전한 일이 주어지지 않고 메일양식이나 엑셀파일, 보고서 양식 하나하나도 모두 그 직원의 것을 참고하고 컨펌을 받고 작성하라는 팀장님의 가이드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던 미나였다. 시기, 질투의 시선으로 그녀를 경계하며 속으로는 내심 그녀가 인정받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사실 지이는 일에 대한 열정도, 내부직원을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즐겁게 만드는 해피 바이러스도 모두 갖춘 뛰어난 인재였다. 중요한 모든 회의, 교육에 속기록을 작성하여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유하는가 하면 교육 참여자들을 위한 간식 하나, 배치 하나도 디테일하게 신경써 교육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했다. 털털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에 상사/동료들 또한 너나할 것 없이 지이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하루, 한 달, 몇 개월, 2~3년을 넘게 가장 가까이서 동료로 일하며 미나는 참 많은 성장을 경험했다. 지이는 더 이상 시기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서로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파트너가 되어있었다.
교육파트에서 만나 전에 없던 리더십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시작한 프로젝트는 단순히 교육을 넘어 채용, 평가까지 큰 임팩트를 가져오는 여러 인사 프로젝트로 확대되었고 항상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가져왔다.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역할, 책임이 따라왔고 고민되는 일, 어려운 일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고자 할 때면 미나와 지이는 이야기를 나누며 발전시키곤 했다. 그리고 나서 팀장님께 가져간 결과는 항상 ok였다. 둘 다 쉽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그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미나에게 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팀플레이어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성취감이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때문에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새벽까지 함께 일할 때도 괴로움 보다는 이 희노애락을 나눌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하지만 임신을 한 후에도 만삭의 몸으로 계속 비슷한 강도로 일하던 그 동료는 결국 미나와 함께 연수원에서 일하던 어느 주말을 마지막으로 6개월간 회사를 휴직해야 했다. 아기의 태동이 멈춘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고도 미나는 오랫동안 지이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날 새벽에 내가 조금만 더 일했더라면… 만삭의 동료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힘든 줄 나는 왜 바로 옆에서 몰랐을까? 어쩌면 내가 가족보다 더 그녀와 많은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산으로 인한 그녀의 휴직기간 동안, 그녀와 함께하던 업무들이 대부분 미나에게 배정된 상황에서 나는 추가 대체인력을 받지 않겠노라 말했다. 그녀의 빈 자리를 내가 최대한 메꾸고 그녀가 원할 때 바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보겠다 다짐했다. 2인분의 일을 혼자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지이의 빈자리는 또 하나의 시련으로 미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덕분에, 그 시간동안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일만 구분해서 일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익힐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이는 아픔을 이겨내고 회사로 복귀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 그 프로젝트를 끝나는 대로, 이제 인사업무가 아닌 해외영업 부서로 이동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이전처럼 같은 업무를 함께 하는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롤 안에서, 그래도 한 팀, 한 회사에서 미나와 지이는 다시 함께였다. 지이는 해외영업 부서로 이동했고, 미나는 그 회사를 떠나 새로운 경력개발의 기회를 찾았다. 그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미나와 지이는 함께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고 지이는 미나에게 편지와 함께 팔찌를 선물해 주었다.
“나의 최고의 동료였던 미나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미나를 가장 많이 성장하게 했던 최고의 동료. 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얼마나 단합/협동을 잘 하느냐를 표현하는 단어인 ‘케미스트리’ 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그녀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당시 팀장님은 이런 ‘케미’를 알고 서로의 최복동이 될 수 있게 붙여주신걸까?
그냥 힘들 때 ‘힘들지?’ 말하는 동료, 같이 상사, 고객 욕 해주고 공감해 주는 동료 말고도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서로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동료가 진정한 ‘최복동’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