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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12. 2024

도착하는 삶

토지 5부 3권, 통권 18권

‘시시각각이 절망이다. 시시각각이 무의미하다. 그러나 달래야지. 타일러야지. 우리는 이렇게밖에 갈 수 없고 모두가 다 그렇게 갔다. 일이 보배라 했던가? 돌보아주고 보살펴주고, 그래 일이 보배다. 그런데 여옥이는 어째 그리 평화스럽게 웃을 수 있을까?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 처참한 그 몰골을 하구서.’ 29p.     


사람이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끝끝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선택하는 길은 얼마나 처연한가. 감옥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길여옥과 죽음가까이로 스미듯 숨만 쉬는 임명빈과 산귀신처럼 죽은 조준구를 한꺼번에 떠올렸다. 눈빛만은 살아있던 여옥이 주변의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계절을 지나 아이가 자라듯 생을 향해 천천히 다시 돌아오는 길,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생을 걸고 힘을 내는 임명빈의 걸음, 버린 자식에게 기어들어와 끝내 괴롭히며 자손들의 기꺼운 배웅도 받지 못하는 버러지 같은 조준구의 죽음까지 생은 이토록 다른 선택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과 죽음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상의가 붉은 잉크로 글을 쓰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인식하는 적과 흑. 상의의 불안과 두려움은 거대한 벽 앞에 마주한 우리의 인식과 닿아있다. 생과 사, 이상과 현실, 일제 치하의 고단한 삶과 독립된 나라를 향한 열망   모든 사유는 현실 앞에 선명하게 마주서 도도히 흘러간다.      


“그거는, 그거는 글쎄······ 그거는 아마도 사람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닐까? 믿음의 회복 같은 것.” 99p.      


환경이 어떠하고 시대가 어떠한들 주어진 생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지는 사람의 선택이다.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고 끝내 도착하는 삶은 그 존재만으로 빛난다.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사람이라는 자각,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도리, 그리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고 쌓인다. 길상은 감옥에 수감되고 환국과 서희는 주변을 거두고 살핀다. 만주로 떠난 정석의 아들 성환을 대학을 보내고, 장서방을 보내 홍이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조선에 남은 홍이네 가족들을 살핀다. 표면적인 친일은 수단이다. 너른 품으로 평사리 들을 살피듯 사람들을 품어낸다.      


죄책감과 자기 모멸······  명희는 떠나는 명빈을 위하여 그런 쌓이고 쌓인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분이었다. 하기는 무위하게 보낸 세월이 임명빈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능했던 것도 어디 임명빈만의 몫이겠는가. 조선의 세월 그 자체가 무위했으며 무능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소리 지를 땅은 어디 있었으며 주장한 연단은 어디 있었으며 터전에다 말뚝 박고 줄 쳐서 내 것 만들 권리는 없었다. 129p.   

   

내가 저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차마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덜컥 어깨로 내려앉는다. 담담하게 굽히지 않고 비열하지 않게 내 모습을 지키며 살아낼 수 있었을까. 여옥처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서희처럼 절대고독을 견디며 주변을 안아줄 수 있을까. 송관수나 길상처럼 한 가지 뜻을 이어낼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비루하지 않게 끝내 사람답게 버틸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의 우리는 운명 앞에 어떻게 마주 서야 하는가. 허술하고 나약한 나는 말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간다. 모두가 하나의 방향을 손짓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의심을 거두자. 그래도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내일의 우리는 오늘의 삶을 무한히 되풀이하는 그 마지막이라는 것. 의식하고 돌아보자. 그리고 버텨서 내일의 나에게 뿌리를 건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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