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복수는 나의 것
동료 중 한 명이 누군가에 대한 욕을 정신없이 하더니, 갑자기 '애는 착해' 라며 말을 마무리 지은 적이 있다.
일을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지만, 그래도 애는 착하다는 말. 뭘 의미하는 걸까.
그래서 그 사람은 그 동료가 싫다는 걸까 괜찮다는 걸까. 잠깐 고민했었다.
'착하다'라는 말. 어떻게 정의 내리면 될지 모르겠다.
사전적 의미는 '사회, 도덕 규범에 어긋남이 없고 옳고 바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는 피우지만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리는 젊은이는 착한 걸까, 아픈 애인을 위해 음주운전을 해서 애인의 집까지 가는 것은 착한 걸까. 착한 것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다.
박찬욱의 유명한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는 착한 사람들만 등장한다. 단지 상황이 나쁠 뿐이다. 우연하게 나쁜 일들이 벌어지며 얽히고설킨 서로의 관계는 모두를 파국으로 밀어 넣는다.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모두가 착한 사람들인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결국은 나쁜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원래 착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용서받을 수 없는 수준이기에 복수로 이어진다. 복수를 행하는 사람마저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라는 송강호의 대사에서 말하듯이 말이다.
송강호는 신하균을 착한 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죽이려고 한다. 왜냐면 그는 내 딸을 죽인 나쁜 놈이니까. 그 사실은 나쁘지만, 딸을 유괴한 이유는 착한 이유이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런 나쁜 일들이 벌어지는 궁극적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지. 그들에게 벌어진 나쁜 '상황'의 탓을 해야 하는 건지. 딜레마에 빠진다.
박찬욱은 참 그것에 능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깝다. 이 사람도 안타깝고, 저 사람도 안타깝다.
박찬욱이 이야기하는 스토리의 힘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2002년 영화, 그러니까 22년 전 영화이지만 최근 개봉한 그의 신작 '헤어질 결심'도 흥행에 성공하며 아직까지 건재함을 자랑했다. 그만큼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헤어질 결심'이 못 만든 영화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이 뿜어내는 날카로움과 잔혹성은 지금 보아도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잔혹성은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간접적인 방법으로 보여서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물에 빠져 익사하게 된 아이를 보여주는 장면은 청각장애인인 신하균의 뒤에서 흐릿하게 보이며, 전기고문을 당하는 배두나의 고통은 흘러내리는 피가 섞인 소변으로 표현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복수는 나의 것'의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쁜 일들은 내가 보고 있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이 때문에.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비극적인 장면을 보는 내 입장에서도 소름이 돋았겠지.
그렇다. 나는 이 영화를 평가하고 분석할 만큼 영화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평가받아야 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이다. 감독의 의도가 100이라고 한들, 내가 받아들인 10이 만족스러웠다면 그 영화는 나에게 잘 만든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좋다. 영화적 장치는 둘째치고 전체적인 내용이 다루고 있는 모순적임이 좋다.
많은 사람들은 외면한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모순이 없는 세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속 비극적인 장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혹시 이런 비슷한 거 뉴스에서 본 적 없냐고 말이다.
직장을 잃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어 가족들을 죽이고 자살한 가장, 병원비가 없어 가족들에게 부담을 안겨주기 싫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 아이가 실종되어 찾고 찾았으나 결국은 사체로 발견된 이야기.
모든 것들은 비현실적이지 않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안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들은 착한 사람이었는가, 만약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일을 겪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하며 살아왔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박찬욱이 표현하는 노골적인 잔혹함보다 더 잔혹하고 비참하다. 어둡고 칙칙한 영화이기 때문에 마냥 기분 나빠하다가도, 이게 현실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22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2024년의 지금과 비추어 봐도 무서우리만큼 잔인한 영화. 그래서 '복수는 나의 것'은 나의 인생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