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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Oct 12. 2022

진작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요즘 '그 사태'를 두고 오가는 말들을 보면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얘기를 해 보세요. 아,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군요. 뭐가 문제인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짜증만 내지 마시고요. 자,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네?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제가 언제요? 아니,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저는 그런 말을 입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 오늘 가스밸브 잠그고 나왔냐고요? 네, 잠궜죠. 집에서 나올 때 확인했어요.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해요, 갑자기? 


아, 기억났어요. 그렇네요. 제가 그렇게 말했네요. 그거 농담이었어요. 설마 그거 때문에 지금 이러시는 거예요? 


농담이라니까요. 농담도 못하나요?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들면 어떡해요. 뭔 말을 못하겠네요. 네? 듣는 사람이 안 재밌어 하면 농담이 아니라고요? 누가 그런 걸 정했대요? 그러면 듣는 사람 기분에 따라 농담이었던 게 농담이 아니었던 것으로 되기도 하겠네요? ‘어제는 농담이었지만 오늘은 농담이 아니다’ 뭐 이렇게 말이죠. 말도 안 되죠. 가만 보면 말을 뱅뱅 돌리는 버릇이 있는 거 같아요, 당신은.


그나저나,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계시군요. 어이구, 무서운 사람. 


다른 사람들은 다 재밌어 해요. 왜 당신만 그래요? 고마울 때 ‘고맙습니다’, 미안할 때 ‘미안합니다’ 하고 말씀하시죠? 남들처럼 당신도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해요. 그런 상황에서 흔히들 주고받는 농담인 거예요. 요즘 예능에서도 많이 나오잖아요. 문화생활을 좀 하셔야 할 것 같네요. 그런 것 하나하나가 다 거슬린다고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때론 너무 예민할 때가 있어요, 당신은. 혹시,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아니면, 피해의식 같은 거랄까. 자존감을 좀 키워 보시든가요.


그래요. 제 말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그래서 제가 잘못했다 칩시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바로바로 말씀해 주시지, 왜 지금 이러시는 거예요? 그것도 한참 지난 일을 가지고 말이에요. 당신은 늘 이게 문제죠. 평소엔 아무 말도 않다가 이렇게 갑자기 한꺼번에 터뜨리는 거. 그때그때 해결했으면 이럴 일도 없잖아요.


당신이 그동안 참아 왔다는 거, 문제삼지 않으려 애써 왔다는 거 다 이해해요. 그래도 이건 아니죠. 그렇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길에 드러누웠다면서요? 밥상은 또 왜 엎으셨대요? 물론, 저는 괜찮아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화가 났어요. 사람들한테는 날벼락이 따로 없죠, 이게. 좋게 좋게 해결할 수도 있었잖아요. 자기 기분 좀 헤아려 달라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 기분은 헤아리지 않을 수 있나요? 너무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당신 때문에 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쳐 죽었대요.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뭐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죠?


꼭 이래야 했다고요?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요? 지금 듣고 있잖아요. 지금 저는 귀를 닫고 있나요? 그러니까 말씀해 보세요. 차근차근 설명을 해 보시라고요.


뭐라고요? 이게 다 농담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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