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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Aug 22. 2017

강한 사람이 카톡 계정을 삭제한다

게시일 : 2017년 8월 22일


여자친구는 그네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다. 모녀가 함께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그도 이런 얼굴을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말고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생머리. 아무 펌기 없는 그런 긴 생머리. 실제로 만나보진 못했지만,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도 같았다. 강한 사람. 다수와 달리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


동남아, 유럽 할 것 없이 해외 관광지 상인들은, 검은 파마머리 한 중년 여성 혹은 장년 여성을 보면 한국 인사말을 건넨다고 하지 않던가. 중장년의 한국 여성은 보통 그런 머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일종의 매너라 생각하는 걸까? 사회적 코드 같은 거 말이다. '그 나이에는 모름지기 검은 파마머리지, 에헴!' 이렇게 보면 강경화 장관은 한국 '국민'이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얗고 짧은 생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대로. 중장년 여성이 검은 파마머리를 하는 것말고도, 젓가락질을 잘 해야 한다던가, 사무직 남성이라면 긴바지를 입고 출근을 해야 한다던가, 탈모가 진행될 대로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몇 안 남은 머리 잘 빚고 다녀야 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사회적 코드를 따른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출근할 때 반바지, 입을 수 있다. 어차피 떨어질 머리, 그냥 시원하게 밀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듯 코드를 따를지 말지는 저마다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혹시 이유가 있어요? 별 뜻은 없고, 그냥 궁금해서요, 헤헤.' 코드를 따를 만한 별다른 이유가 없듯, 그걸 따르지 않을 만한 별다른 이유 역시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상대할 땐 꽤나 많은 힘이 쓰이기 마련이다. 지구력이 좋아야 한달까? 무거운 걸 오랫동안 드는 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면, 그저 코드를 따르는 일이 상책이라 할 수 있다.


'카카오톡'이 내게 하나의 코드로 보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카톡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안 한 건 아니고. 오히려 잘 썼지. 카톡뿐 아니라, 페북, 트위터, 블로그, 뭐 이런 것들도 다 했다. 독일에서 지내던 즈음에 세상은 '스노든 사태'로 떠들썩했다. 경각심이 생겼달까, 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구글에다 검색해 보기로 했다. 이게 웬걸. 구글에서 내 얼굴을 볼 줄이야. 개인정보유출이니, 아니면 스노든 사태처럼 정부 감시니 하는 말은 우스울 수 있겠지만, 그때 난 불쾌, 두려움, 뭐 그런 것들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난 인터넷에 있는 모든 계정을 삭제했다. 이메일 계정 하나만 남겨 놓고 전부 다. 반나절은 걸렸을 것이다. 카톡 계정도 그때 삭제했다. 그래도 그때는 좋았다. 한국이 아니라 그런지, 카톡을 왜 안 하냐는 말에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누구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스마트폰을 가진 한국 사람 거의 모두는 카톡을 이용한다. 지금은 한국 사람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 한국 사람 거의 모두가 카톡을 이용한다고 보면 되겠다. 가히 '국민적 지배력을 갖는 모바일 메신저'라 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SMS로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대하는 일이 좀 우스운 것으로 된 것 같다. 하긴, 문자 어플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뭐…. 문자를 보낼라치면, 이건 어디서 굴러 먹던 반골인가 하는 반응이 나오기 일쑤다. 기분 탓일까? 


귀국 후 한동안은 SMS 문자로 소통했다. 카톡은 안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마지막 학기에 등록했고, 동아리 활동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동아리 모임에서는, 독일의 '선진축구'를 배워 왔다는 바보 같은 말로 나를 환영해 주었다. 그때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처음인 기숙사 생활. 기숙사에 살다 보면 여럿이 의논할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같은 층 단톡방이 그래서 운영된다고도 했다. 이번 회의는 언제 진행한다느니 어디서 진행한다느니, 회의 중 이런이런 것들이 결정되었으니 앞으로 준수해달라느니. 같은 층에 살던 친구 덕에 나는 카톡 계정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네.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스터디가 시작되던 그날, 개중에 가장 말이 많던 녀석이 내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단톡방에 초대하겠다며 이 사람 저 사람 번호를 모으고 있었다. 


"저는 카톡 계정 없는데요."

"하나 만드셔야겠네요."


싫다고 말하면 그건 무슨 심보냐 하기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카톡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원만한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도 카톡 계정은 필요했다. 카톡 계정 만들었단 소식을 듣자 친구는 나를 동아리 단톡방에 초대했다. 연습경기 참석 투표를 하라느니, 언제 어디로 모이라느니. 그래도 카카오톡 송금 기능 덕분에 총무 아이디에다 대고 회비를 부칠 수 있어 편하긴 하였다. 이젠 봇물 터지듯 단톡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졸업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딜 가나 그 세상은 내가 카톡을 잘 쓰는 사람이길 원했다. 왼손이 편해서 왼손으로 먹는 것뿐인데, 꼭 오른손으로 밥을 먹으라 꾸중했던 할아버지가 생각나는군. 이쯤 되면 카톡 역시 하나의 코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카톡이 파마머리, 젓가락질, 긴바지, 대머리, 뭐 이런 것들이랑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카톡은 소통의 편의성이라는, 만질 수 있는 효용을 준다고. 이점이 있어 쓰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런 이점을 염두에 두고 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카톡이 망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그런 사람은 더욱 적어지겠지. 이제 이건 그냥 코드라 할 수 있으니까. 카톡이 사회적 코드로 자리잡은 지금, 그건 단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안 하기 민망하니까, 안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피곤해질 테니까, 그래서 그냥 쓰는 게 상책인 그런 무언가가 되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브루스윌리스처럼 대머리 자체로 멋을 내고, 사무직 남성이 반바지 입고 출근을 하며, 중년 혹은 장년 여성이 긴 생머리를 유지하는 것과 같이, 카톡을 하지 않는 것은 강한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생활 방식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 좁아터진 한국 땅에서는 말이다.


그 사진을 본 지는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그네 어머니는 여전히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못했다. 반면, 나는 강하지 않다는 것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다. 카톡이 뭐야. 지금은 페북, 트위터, 밴드, 다음, 네이버 카페, 뭐 아무튼 다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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