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엇비슷 Dec 11. 2020

에잇! 나쁜 세금 내러 왔다!

그렇지만 나쁜 말은 안 돼요

"쾅!"

닫혀있던 문이 거칠게 열린다. "생돈 나간다! 생돈 나가!"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우체국에 들어오신 고객님은 창구 앞으로 오셔서 무슨 화투 치듯이 종이를 던지셨다. "아니 정도가 있지 정도가! 14만 원이 애 이름이야?" 마구 구겨진 종이를 펼쳐서 천천히 읽어본다.


'위반사실 통지 및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서'

과태료 14만 원. 신호위반도 신호위반이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신호위반을 하신 모양이다. 큰 소리가 나자 다른 고객님들이 이곳을 쳐다보신다. 시선을 느끼신 모양인지 아까보다는 그나마 조용히 얘기하는 고객님.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어!" 하하.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좋을까.




다른 곳도 다 그렇겠지만 우체국도 유독, 유난히 바쁜 시간들이 있다. 하루 중에는 아침에 문을 연 직후의 시간과 우편차를 보내기 직전의 시간. 일 년 중에는 설날과 추석, 명절 전후로 1~2주 정도의 시기와 가을철 농산물 수확시기. 그리고 한 달 중에는 월말이 가장 바쁘다. 여러 공과금 고지서나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세금, 각종 지로용지들을 가지고 오시는 고객님들로 우체국은 북새통을 이룬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전해서 전기요금이나 전화요금을 낼 때는 통장이나 카드 자동이체, 인터넷이나 앱을 통한 납부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일반화되지 않았던, 지금보다 조금 이전의 시기에는 고지서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요금을 내는 방법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연말이 되면 창고에서 지나간 문서들을 정리하곤 하는데, 보존기간이 남은 문서들은 잘 정리해두고, 기간이 지난 문서들은 따로 분리해서 폐기해야만 한다. 창고 구석에는 몇 년 묵은 고지서들이 있는데, 그걸 정리하기 위해 꺼낼 때마다 그 어마어마한 두께에 놀라곤 한다.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우리 우체국의 것도 어마어마한데, 도심에 있는 우체국의 문서들을 담으려면 그 창고는 얼마나 커야 할까.


아무튼 기술이 발전하고 시간이 지나도 우리 우체국 고객님들의 대다수, 나이가 드신 분들에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을 통한 납부는 말도 안 되고, 자동이체도 복잡하기 짝이 없으시다. 아드님이나 따님이 대신 자동이체를 하셨다고 해도 그 자동이체 영수증을 또 들고 오셔서 돈을 내려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할머니 고객님 두 분이 같이 고지서를 내러 오셨다. 지갑에 넣어두셔서 꼬깃꼬깃한 고지서를 쫙쫙 펼친 뒤 종이마다 적힌 요금들을 계산기에 두드린다. 자, 한 분은 끝났고 다음 분은... 가져오신 고지서들 중에 이미 자동이체가 된 고지서가 섞여 있었다. 친구 분과 담소를 나누고 계시던 할머니께 천천히 자동이체에 대해 설명해드린다. 전화요금이 벌써 통장에서 빠져나가서 또 돈을 내실 필요가 없다, 이 종이는 이미 요금을 냈다는 영수증이다 등등. 곰곰이 생각하시다 빵긋 웃으시는 두 고객님.


"그러면 이거는 돈 줄 필요가 없네?"

"돈 생겼네! 그걸로 저가서 짜장면이나 사 묵자."


깔깔 웃으시면서 근처 중국집으로 향하시는 발걸음. 자동 이체되었던 요금이 만 얼마였으니 두 분이서 간단한 요기는 하실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이야기.

나이 드신 고객님이 고지서들을 꺼내며 짜증을 내신다. 다른 공과금은 싹 다 왔는데 왜 전기요금 고지서는 쏙 빼놓고 배달을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고객님. 같이 배달을 해주면 이렇게 두 번 발걸음을 안 할 거 아니냐며 배달부들한테 다음부터는 모아서 한꺼번에 같이 배달해야 한다 전달하라고 엄포를 놓고 가신다.


참 안타까운 말씀이지만 전기요금 고지서는 집배원이 배달하지 않는다. 전기요금 고지서의 경우 한국전력에서 나온 전기 검침원들이 배달하는데, 너무 깊은 산속이거나 오지에 집이 있는 경우 가끔 검침원들이 우체국에 오셔서 고지서를 접수하시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집배원이 고지서를 배달하게 되는데, 아마 그것과 헷갈리신 게 아닌가 싶다.


다른 공과금은 발급 날짜가 어느 정도 일정하다. 그와 달리 속도, 신호위반 과태료, 그리고 주정차 위반 과태료 고지서는 딱히 날짜에 상관없이 나오지만, 다른 고지서들과 함께 월말에 내시는 분들이 많다. 쌓인 고지서들을 컴퓨터로 처리하다 보면 주정차 위반 과태료의 경우 가끔 ‘고지내용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해당 고지서에 적혀있는 시나 군의 교통과에 전화를 건다.


통화 중. 통화 중. 세 번째로 전화를 거니 담당 공무원이 주눅이 든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이미 다른 전화에 많이 시달린 목소리다. 우체국이라 말하고 사정을 설명하니 조금은 나아진 목소리로 납부번호를 불러달라고 말한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미 돈을 납부하셨는데 기계 오류로 고지서가 잘못 인쇄가 되었다고 안내해주신다. 고객님께 따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씀하신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오신 고객님. 사람이 살다 보면 오류도 생길 수 있다 말씀하시며, 갑자기 돈이 생겼다며 크게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어찌어찌 화가 난 고객님을 진정시켜 보내드리고 다음 고객님을 맞이한다. 그래도 과태료는 내고 가신 걸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뭐, 그래도 나는 고지서에 적힌 요금대로 돈만 받으면 된다지만, 이런 과태료를 직접 담당하는 시군청의 교통과 직원이나 민원담당 경찰은 더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천지에 안 힘든 직업은 세상에 없다지만 욕먹는 게 직업은 아닐 텐데. 사람이 있는 곳에 따라 시선이나 달라진다고, 비슷한 직종이라서 더 그리 느끼는 같기도 하다.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인가.


들어올 때 거칠게 문을 여신 고객님은 나가실 때는 다행스럽게 문을 거칠게 열진 않으셨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시던 다음 고객님.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와. 저 아저씨 목소리 한 번 어마어마하네. 벌금은 목소리만큼 나오는가 보다.”

이전 07화 평생 같이 있자고 해놓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