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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엇비슷 Dec 20. 2020

Q.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낚시는?

A. 보이스 피싱!

점심쯤 우체국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큰일 났다! 진짜 어떡해!” 고객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큰일 났다는 말만 반복하신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조금 진정하시고 어떤 일이신지 천천히 말씀해보시라고 부탁드린다.

“내가 그 보이스피싱인가 뭔가 하는 그거에 걸린 거 같은데!”

고객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전화국(?)에서 걸려온 전화. 지금 고객님의 명의가 도용이 되었으며, 도용된 전화로 해외통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왔다고 한다. 그 엄청난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고객님. 당황하는 고객님을 안심시키며 잠시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올 예정이니 꼭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잠시 뒤 거짓말처럼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사실 확인을 위해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물어봤다고.

통화한 사람한테 따로 알려준 게 있으시냐고 여쭤보니 그런 건 없지만 너무 불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고객님. 내 전화번호도 알고 있는데 계좌번호도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니냐, 있는 돈을 다 빼서 가져가 버리지 않을까 염려하시며 우체국으로 직접 오셔서 확인하신다고 한다. 이런 전화가 오늘 벌써 세 번째다.




"고객님! 다... 당황하셨어요?”
보이스 피싱하면 예전에 했던 한 개그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어눌한 목소리와 어색한 한국어로 사기를 쳐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악당들. 그러나 현실은 다른가보다.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48,116명, 2019년 49,597명으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자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범죄에 연루되었다든지,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든지, 산 적이 없는 물건이 결제되었다든지, 가족이나 지인이 핸드폰이 고장 났다며 메신저로 계좌이체를 요구한다든지. 아주 다양한 수법으로 고객님들의 돈을 위협하는 악당들. 우체국에는 큰 액수의 현금이나 수표를 찾아가시거나 다른 곳으로 송금하시는 분에게는 고객님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 돈을 어디에 쓰시려는지, 송금하시려는 곳은 어디인지 여러 번 물어보며 확인을 하고 있다.

여러 문항의 금융사기예방진단표를 작성하고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있노라면 불평하시는 고객님들이 정말 많으시다.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며 짜증을 내시는 고객님. 다른 곳은 안 그러는데 유독 여기만 번거롭다 하시는 고객님. 은행 놈들이 괜히 돈 안 주려고 사람 불편하게 만든다며 손가락질하시는 고객님.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매번 복잡하고 불편하셔도 고객님의 자산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방법이니 양해를 부탁드린다.

월말이면 방문하시는 고객님이 있으시다. 보통 25일 전후로 국민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이 나오는데, 이 고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그 연금만 찾아 가시곤 한다. 또 연금만 찾아가시려나 생각하던 나에게 하시는 말. "이 통장에 있는 돈. 자투리는 빼고 싹 찾아줘요."

그것도 현금으로 찾아달라고 하신다. 통장에는 차곡차곡 모으신 몇 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갑자기 이 큰돈을 찾아서 어디에 쓰시냐고 여쭤보니 내가 알아서 다 쓸데가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고객님. 따로 전화를 받고 그러시는 것은 아닌지 여쭤보니 뭘 그리 캐물어보냐며 화를 내신다.

어찌어찌 이야기가 잘 끝났었던 일이지만 평소에 3, 40만 원 찾아가시던 고객님이 갑자기 몇 백, 몇 천만 원을 찾아가신다고 하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고액 거래 시 확인하는 절차들이 복잡하고 번거로우셔도, 고객님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것이니 믿고 따라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노년층에게만, 또 전화로만 보이스피싱이 오는 건 아니다. 몇 주 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온 적이 있다. '당신이 본 상점에서 주문한 물건이 이미 발송되었으니 찾아보기를' 외국어를 그대로 번역기에 돌린듯한 문장과 함께 정체모를 링크 주소 하나. 링크 주소를 무심코 누르게 되면 악성코드가 설치되어, 소액결제가 되거나 개인정보가 빠져나가는 수법이다. 이런 문자에 누가 속느냐며 친구들과 웃어넘겼지만, 정말 제대로 된 문장이었으면 또 어땠을지.




온 마을에 보이스피싱 소식이 퍼진 모양인지 그날 오후에는 마을 회관 옥상에 달려있는 안내 스피커에서 이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지금 전화국과 경찰서를 사칭하는 사기 전화가 돌고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늦은 오후에 정말 찾아오신 고객님. 아직까지 심장이 벌렁벌렁하신단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고 있으시던 중 어디 경찰서에서 전화를 했냐고 되물으셨는데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고. 그 더듬는 게 영 수상해서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고 하신다. 그거 보이스피싱 맞다고, 침착하게 잘 대응하셨다고 말씀드린다.

하나 사칭으로는 부족해서 둘이나 사칭을 하다니. 남의 돈을 어떻게든 한 번 뺏어보려고 범위도 수법도 점점 다양해지는 보이스피싱. 그런 방법을 생각하는 머리를 좀 다른 데에 쓰면 오죽 좋을까. 복잡하고 번거롭더라도 돈은 한 푼 두 푼 정직하게 벌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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