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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엇비슷 Nov 19. 2020

초대받지 않은 털뭉치들

네 발로 다니는 고객님들

한적한 오후. 건물 안은 조용하다. 국장님의 키보드 소리와 저 멀리 경운기가 지나가는 소리만 울린다. 진짜 오늘의 나는 월급루팡이다.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 올해 들어 가장 한가한 날이 아닐까. '툭!'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 환기를 위해 열어둔 뒷문 쪽에서 난 소리다. 잘못 들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순간. "와장창!" 건물 뒤편에 살짝 세워놓았던 삽들이 차례로 쏟아지는 소리. 계속 멍하니 계시던 국장님도 깜짝 놀라서 뒷문을 쳐다보고 계신다. 


빠르게 뒷문으로 나가 상태를 살핀다.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고객님.

아니다. 눈들이 많다. 하나, 둘, 저 위에 셋. 넘어진 삽을 세우려고 가까이 다가가니 다 도망쳐 버린다. "정말 저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말과는 다르게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국장님. 우리 우체국은 가끔 특별한 고객님들이 찾아오시곤 한다. 두발이 아니라 네발로 찾아오는 이들. 오늘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시골에 있는 우체국들은 여느 때에 비해 한가해진다. 도심에 있는 우체국이 사시사철 일정한 고객 수를 유지하는 반면에 시골 우체국은 바쁜 계절과 바쁘지 않은 계절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처음 시골 우체국에 발령받았을 때 그래도 그리 사람이 많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며 그 생각을 천천히 지우게 되었다. 


우체국의 뒷문을 열고 나가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뜰이 있고 그 왼편에는 우리가 쓰는 창고가 하나 있다. 창고 안은 오랫동안 쌓인 문서와 선장품들로 가득 차있으며 삽이나 대빗자루 같은 청소 도구는 둘 자리가 따로 없어서 창고 문 옆에 세워놓고 있다. 뜰은 햇볕이 제법 들어오는 편이라 바람이 그리 불지 않는 겨울철에는 따뜻하기까지 하다. 조용한 건 덤이고. 이러한 이유로 우리 뒤뜰은 단잠을 원하는 고양이 고객님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가끔 일이 힘들거나 사람에 지칠 때면 몰래 뒤뜰로 나가보곤 한다. 뒤뜰을 자주 찾아오는 고양이는 세 마리가 있다. 이름은 따로 지어주지 않았지만 털빛을 따라 대충 흰둥이. 노랑이. 얼룩이로 불러주고 있다. 박스 위나 에어컨 실외기 위에서 햇볕을 받으며 노곤노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지치고 힘든 마음도 어느새 풀려있을 때가 많다. 


예전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국장님이 한 분 계셨다. 뒤뜰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가져다 두시고 몇 번 밥을 챙겨주셨다고 한다. 그로 인해 고양이가 조금 더 많아졌고, 고양이 울음소리도 많이 들리게 되고. 고양이 무료 급식소는 민원으로 종료가 되어버렸다. 공무원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시키지도 않은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고, 장문의 글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누군가에겐 좋은 존재가 누구에게는 싫은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좋은 고객님들도 있지만 싫은 고객님들도 물론 우체국을 찾아오신다. 우체국에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다른 곳은 괜찮은데 유독 천장 한 귀퉁이가 누렇게 되어 있었다. 크게 티는 안 나지만 한번 눈에 띄게 되면 계속 신경 쓰이는 법. 누런 천장의 정체를 여쭤보니, 아하, 화장실이라 하신다. 천장 위에 사는 쥐들의 화장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천장 어딘가에서 퉁퉁거리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그 소리의 정체가 바로 쥐들이었던 것. 내 얘기를 들으신 국장님도 갑자기 많이 신경이 쓰이셨는지, 며칠 후 그 부분을 대대적으로 수선하셨다. 그 이후 그곳이 누렇게 변하는 일은 없었지만, 가끔 천장에서 나는 소리로 보아하니 계속 거주는 하시는 것 같다. 


싫은 고객님 그 두 번째. '파리 날린다.' 영업이나 사업 따위가 잘 안 되어 한가하다는 말. 바쁘지 않은 봄철에는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사실 평소에도 파리는 날아다니고 있지만, 바빠서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닐까 싶지만.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꼭 사람 근처에 와서 얼쩡대는 게 사람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가 시험을 하는 것 같다.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걸 참다못해 파리채를 들고 주위를 살피면 그 시끄럽던 녀석들이 어디로 갔는지. 참다못한 국장님은 그다음 주 집에서 직접 전기 파리채를 가져오셨고, 그날 우체국은 벌레 타는 냄새로 진동을 했다. 이 지면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그러게 얼굴로 날아들지 말았어야지.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그렇다. 새도 들어왔었다.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우체국에는 국장님과 나, 그리고 CD기에서 돈을 찾던 이장님 이렇게 세 명이 있었다. 갑자기 천장에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 가끔 큰 파리나 벌이 들어와서 전등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어서 파리채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건 파리나 벌이 아니라 참새였다. LED 전등에 죽을 각오로 부딪히는 참새. 밝은 전등을 보고 아마 창문으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와 국장님 그리고 이장님. 우리 세 명은 뒤뜰에 있던 대빗자루를 들고, 앞문과 뒷문을 활짝 열고, 서로 대열을 유지하며 새를 밖으로 보내보려 했지만. 나는 왜 새대가리를 새대가리라고 부르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10분 정도 사투를 벌인 끝에 앞문으로 나간 참새. 빗자루를 든 우리 네 사람은 드디어 해냈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엄청나게 웃었었다. (중간에 등기를 보내러 오셨던 고객님도 함께 참여하셨다.) 그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이장님은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같은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우리들.




넘어져 있던 삽을 다시 세워 놓고 우체국 안으로 들어온다. 뒤뜰의 고양이 고객님들은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리더니, 그래도 몇 번 얼굴을 봤다고 가끔 눈이 마주치면 야옹거리며 인사도 해준다. 요새는 내 앞으로 다가와 발랑 드러누워서 배를 보여주기도 한다. 밥이랑 물은 전혀 챙겨주지도 않는데 이러는 걸 보면 그냥 붙임성이 좋은 아이들인 것 같기도 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웃음이 나고,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풀리고 위로가 되며, 상대가 누구든 간에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그런 존재. 나도 너희처럼 될 수 있을까.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지만 오늘은 뒤뜰의 세 고양이가 나의 스승이 되어...... “와장창!” 애써 세워 놓았던 삽이 또 쓰러지는 소리. 저놈의 고양이들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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